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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도시 페치, '제3회 로카르트(LOKART) 현대미술 비엔날레'로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묻다

2025-08-13

주요내용

  
'나의 몸은 나의 요새'라는 화두, 60여 작가의 시선으로 탐구한 정체성과 신체 정치학
부다페스트에서 남서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헝가리 제2의 도시 페치(Pécs)가 다시 한번 현대미술의 수도로 변신했다. 지난 6월 26일 막을 올려 9월 21일까지 이어지는 제3회 로카르트(LOKART) 현대미술 비엔날레는 헝가리 현대미술의 흐름을 조망하고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 비엔날레는 '나의 몸은 나의 요새(az én testem az én váram)'라는 이 시대에 더욱 유효한 화두를 던지며 정체성, 감각, 그리고 신체 정치학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헝가리 현대미술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그 생생한 현장을 직접 찾았다.
전시장(m21Galéria) 초입에 설치된 제3회 로카르트(LOKART) 현대미술 비엔날레 포스터

< 전시장(m21Galéria) 초입에 설치된 제3회 로카르트(LOKART) 현대미술 비엔날레 포스터 - 출처: 통신원 촬영 >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은 로카르트 비엔날레는 페치 시내 6개의 주요 갤러리(m21 갤러리, 페치 갤러리 등)에서 동시에 개최됐다. 헝가리 작가들을 주축으로 터키, 세르비아 등에서 온 작가를 포함해 총 60여 명이 참여해 그 규모와 깊이를 더했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인 '나의 몸은 나의 요새'는 사회가 파편화되고 소셜미디어가 현실 인식을 중재하는 시대에 개인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서의 '몸'에 주목한다. 전시장에 펼쳐진 작품들은 몸이 어떻게 가장 원초적인 소통의 표면이자 상징과 이야기의 매개체가 되는지를 각기 다른 시선으로 탐구하며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가리 현대미술 계보를 잇는 약 36명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 헝가리 현대미술 계보를 잇는 약 36명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

게스트 큐레이터 아론 페니베시(Fenyvesi Áron)가 "세대 간 예술적 대화를 통해 헝가리 현대미술의 연결점을 찾고자 했다."고 밝힌 기획 의도는 전시 구성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헝가리 현대미술의 세대별 흐름을 따라 걸으며 그 역동적인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 출발점에는 신체를 이용한 급진적 퍼포먼스로 페미니즘 미술의 지평을 연 카탈린 라디크(Ladik Katalin)와 오르솔랴 드로즈디크(Drozdik Orsolya) 같은 거장들이 자리했다. 이들은 몸을 정치, 사회적 저항의 장이자 개인 서사의 근원으로 삼았던 1세대 작가들이다. 여기에 신화적 세계관 속에서 독창적으로 정체성을 탐구했던 故 엘 카조프스키(El Kazovszkij)의 작품으로 전시의 역사적 깊이를 더했다.
헝가리 현대미술 계보를 잇는 약 36명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 헝가리 현대미술 계보를 잇는 약 36명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들 거장의 작품은 역사적인 '페치 워크숍' 그룹의 계보를 잇는 중견 작가들,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신체와 정체성을 탐구하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호흡했다. 과거 세대가 아날로그적 신체를 통해 정체성의 본질을 탐구했다면, 현재 세대는 소셜미디어 환경 속에서 파편화되고 재구성되는 신체의 의미를 되묻는 양상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비엔날레는 이처럼 세대 간 미묘한 차이와 계승의 지점을 탁월하게 병치하며 헝가리 현대미술의 입체적인 흐름을 조망하는 장을 성공적으로 마련했다.
제3회 로카르트(LOKART) 현대미술 비엔날레 전시장, 페치 갤러리

< 제3회 로카르트(LOKART) 현대미술 비엔날레 전시장, 페치 갤러리(Pécsi Galéria) - 출처: 통신원 촬영 >

로카르트 비엔날레는 수도 부다페스트에 집중된 예술계의 지평을 페치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페치는 단순히 헝가리 제2의 도시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예술의 수도'다. 세계적인 옵 아트(Op Art)의 창시자 빅토르 버셔렐리(Victor Vasarely)와 20세기 가장 중요한 예술 학교 바우하우스(Bauhaus)를 대표하는 건축가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가 바로 이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또한 국민 화가 티버더르 촌트바리 코스트커(Tivadar Csontváry Kosztka)의 걸작을 품은 촌트바리 미술관이 있는 곳도 페치다. 이처럼 페치는 세계 미술사에 획을 그은 예술가들을 배출하고 그 유산을 지켜온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다.

로카르트 비엔날레는 바로 이 깊고 풍부한 예술사적 맥락 위에서 그 정통성을 이어간다. 페치라는 도시의 저력을 바탕으로 헝가리 현대미술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점검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난 6월 26일 개막식에서는 트란케르 커터(Tranker Kata) 작가가 로카르트 대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심사위원단은 작가의 개인적 경험을 보편적 조형 언어로 풀어내는 독창성을 높이 평가하며 "비엔날레의 주제를 가장 깊이 있게 해석하고 개인의 서사를 공동체의 이야기로 확장하는 설득력 있는 작품을 선보였다."고 수여 이유를 밝혔다. 이는 로카르트가 과거의 유산을 계승할 뿐만 아니라 현재 헝가리 미술을 이끌 새로운 목소리를 발굴하고 있음을 명확히 증명하는 대목이다. 제3회 로카르트 현대미술 비엔날레는 대규모 미술 행사를 넘어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발 딛고 설 '현실'과 '자아'에 대해 예술이 던질 수 있는 근원적인 질문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사진출처    
- 통신원 촬영

참고자료    
- https://lokart.hu/

통신원 정보

성명 : 유희정[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헝가리/부다페스트 통신원]
약력 : 『한국 영화 속 주변부 여성과 미시 권력』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