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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영화산업의 침체와 새로운 기회

2025-11-19

주요내용

    
최근 말레이시아 문화산업계가 새로운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는 소수의 흥행작에 의존하는 국내 영화산업의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말레이시아 영화진흥위원회(Finas)에 따르면 2024년 말레이시아 영화 관객수는 3,257만 명으로 역대 최고였던 2019년(7,778만 명)의 절반 수준인 41.87%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처럼 말레이시아 영화산업이 부진한 이유는 관객들이 극장을 블록버스터 영화 감상용 공간으로 인식하는 경향 때문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다양한 유통 플랫폼이 확산되면서 관객들은 웅장한 음향과 대형 스크린 등 OTT로는 경험할 수 없는 요소를 즐기기 위해서만 극장을 찾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지난 20일 기준 박스오피스 상위 3위권을 차지한 영화는 액션 영화 <블러드 브라더스(Blood Brothers)>, 애니메이션 영화 <에젠 알리: 더 무비 2(Ejen Ali The Movie 2)>, 범죄/액션물 <머니 게임(Money Games)>으로 모두 특수효과를 앞세운 블록버스터다. 이 세 편의 매출 합계는 1억 4,140만 링깃(약 474억 5,700만 원)으로 2025년 전체 국내 영화 매출의 83.63%를 차지한다.
019년~2025년 말레이시아 영화 매출 현황

< 2019년~2025년 말레이시아 영화 매출 현황 - 출처: 'Malay Mail' >

관객들이 극장만의 특별한 경험을 기대하며 영화관을 찾는 경향이 뚜렷해지자 극장가도 단순한 상영 공간을 넘어 복합문화공간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말레이시아 최대 영화관 체인인 GSC 시네마는 지난해 더 익스체인지 TRX 지점에 세 개의 대형 스크린을 갖춘 CJ 4DPLEX를 도입해 몰입형 상영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연령층별 맞춤 행사도 운영 중이다. 지난 8월부터는 55세 이상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영화 할인과 함께 무료 음료, 혈압 및 심박수 측정 등 간단한 건강 검진을 제공하는 '시니어스 앳 더 무비스(Seniors at the Movies)' 프로그램을 매달 진행하고 있다.

두 번째 규모의 체인인 TGV 시네마는 영화와 이벤트를 결합한 테마형 마케팅을 선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히어로 블록버스터 개봉 시 '홈 오브 히어로즈(Home of Heroes)' 행사를 열어 코스프레, 포토존, 굿즈 판매 등 다양한 체험을 제공한다. 한편 말레이시아에서 운영하는 중국의 멀티플렉스 다디 시네마는 영화관에서 다채로운 식문화 체험을 제공하고 있는 가운데, 마라탕 전문 체인 슈다샤(Shu Daxia)와 협업해 마라탕을 제공하는 이색 서비스까지 선보이겠다고 발표하며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다양한 음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디 시네마

< 다양한 음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디 시네마' - 출처: 'Says' >

이처럼 말레이시아 영화관들이 극장을 새로운 경험의 공간으로 확장하고 있다면 또 한편에서는 지식재산(IP)을 영화관과 OTT 플랫폼으로 진출시킬 수 있는 새로운 IP으로 확장하는 흐름도 주목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말레이시아 대표 영화 제작사 아스트로 쇼(Astro Shaw)다. 아스트로 쇼는 탄탄한 팬층과 매력적인 줄거리를 기반으로 흥행 안정성을 확보하고자 올해부터 자사 IP의 다각화 전략을 본격화했다. 자체 콘텐츠를 활용해 강력한 팬덤을 구축하는 '아스트로 쇼 시네마틱 유니버스(Astro Shaw Cinematic Universe, ASCU)'를 선보이고 있다. 

아스트로 쇼의 IP 다각화 신호탄은 1998년~2005년 방영된 동명 애니메이션을 실사 영화로 각색한 슈퍼히어로 영화 <클루앙 맨(Keluang Man)>이었다. 지난 5월 29일 개봉한 해당 작품은 378만 링깃(약 12억 7,7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말레이시아형 히어로물'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 다른 핵심 IP는 범죄/액션 시리즈 <폴리스 에보>다. 2015년과 2018년에 개봉한 1, 2편은 각각 역대 국내 박스오피스 13위와 11위를 기록했으며, 2023년 개봉한 3편은 개봉 일주일 만에 2,500만 링깃(약 84억 5,600만 원)의 수익으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인기 IP다. 이 같은 흥행을 바탕으로 아스트로 쇼는 세계관을 확장한 후속 프로젝트를 잇달아 준비 중이다. <폴리스 에보> 4편을 비롯해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TV 시리즈 <에보 아카데미(Evo Academy)>가 제작되고 있으며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한 스핀오프도 기획되고 있다. 예컨대 <폴리스 에보 3>의 악역을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영화 <레자(Reza)>는 2026년 개봉을 목표로 2025년부터 촬영에 들어간다. 또한 지난 9월에는 시리즈 인기 캐릭터 '맛얌(Mat Yam)'을 주인공으로 한 TV 시리즈 <에보: 맛얌(Evo: Mat Yam)>의 제작 계획이 발표되기도 했다.
동명 애니메이션을 실사 영화로 각색한 말레이시아 슈퍼히어로 영화 '클루앙 맨(Keluang Man)'

< 동명 애니메이션을 실사 영화로 각색한 말레이시아 슈퍼히어로 영화 '클루앙 맨(Keluang Man)'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 밖에도 2023년 방영된 학원 액션 TV 시리즈 <프로젝: 하이 카운슬> 역시 프리퀄 TV 시리즈 <쿠드랏 1968(Kudrat 1968)>로 제작될 예정이다. <프로젝: 하이 카운슬>은 주인공이 학교 내 비밀 폭력조직 하이 카운슬에 맞서는 서사를 담은 작품으로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높은 호평을 받았다. 이후 개봉한 프리퀄 영화 <카하르: 카플라 하이 카운슬(Kahar: Kapla High Council)>은 2024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에서 총 1,300만 링깃(약 44억 원)의 흥행을 기록했고, 이를 기반으로 프리퀄 TV 시리즈 <쿠드랏 1968(Kudrat 1968)> 제작이 확정됐다. 

아스트로 쇼의 이러한 IP 확장 전략은 단순한 국내 시장 대응을 넘어 말레이시아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을 담은 콘텐츠를 해외 시장에 선보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이는 국가 브랜드 가치 제고는 물론 장기적으로 글로벌 콘텐츠 생산 허브로의 도약을 목표로 한다. 업계 관계자와 학계에서도 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샤민 유소프(Shamin Yusof) 스콥 프로덕션(Skop Production) 대표는 "OTT 플랫폼의 부상은 말레이시아 콘텐츠를 전 세계에 소개할 기회"라고 언급했으며 프레마 포누두라이(Prema Ponnudurai) 테일러스대학교(Taylor’s University) 커뮤네이션학과 학과장은 "OTT로 세계 시장에서 자국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이 커졌다."고 평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발맞춰 정부도 정책적 지원에 나서고 있다. 지난 9월 파흐미 파질(Fahmi Fadzil) 통신부 장관은 "국내 영화·애니메이션 IP의 아세안 시장 진출을 지원하고자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주요 국가와의 협력 논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시장에 여러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말레이시아 영화산업이 전반적으로 침체되는 가운데 블록버스터급 확장이 가능한 영화 IP로는 기존의 말레이시아 애니메이션이나 인기 IP가 중심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클루앙 맨>과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물론 영화관에서는 식음료 서비스 강화나 특정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행사 등 여러 시도를 하고 있지만, 산업 전반의 주요 관심은 여전히 블록버스터급 콘텐츠 제작과 상영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영화 시장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OTT 콘텐츠 시장이 더욱 커질 가능성도 크다. 특히 말레이시아는 콘텐츠 제작 역량 강화를 위해 한국과의 협업을 꾸준히 희망해왔다는 점에서 향후 양국 간 협력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나아가 말레이시아가 국내 시장에 머물지 않고 아세안 시장을 주요 무대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콘텐츠 업계는 말레이시아를 아세안 콘텐츠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다른 국가와의 새로운 협력 논의로도 이어질 잠재력을 지닌다. 이는 결국 말레이시아 영화산업의 침체가 한국의 콘텐츠산업에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영화의 현지 개봉 및 배급은 감소할 수 있으나 콘텐츠 협업과 시장 확장의 측면에서는 오히려 더 큰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진 출처 및 참고자료    
- 《Malay Mail》 (2025. 6. 3). Is the Malaysian film industry at its peak? Despite milestones and new box office records, the best is yet to come, https://www.malaymail.com/news/showbiz/2025/06/03/is-the-malaysian-film-industry-at-its-peak-despite-milestones-and-new-box-office-records-the-best-is-yet-to-come/174241
- 《Malay Mail》 (2025. 4. 13). Could a Malaysian ‘cinematic universe’ make bank — or kill creativity? Here’s what filmmakers think, https://www.malaymail.com/news/showbiz/2025/04/13/could-a-malaysian-cinematic-universe-make-bank-or-kill-creativity-heres-what-filmmakers-think/171223
- 《Malay Mail》 (2025. 5. 25). The evolving film culture in Malaysia: From cinematic experiences to film clubs and critiques, https://www.malaymail.com/news/showbiz/2025/05/25/the-evolving-film-culture-in-malaysia-from-cinematic-experiences-to-film-clubs-and-critiques/176690
- 《New Straits Times》 (2025. 8. 14). Govt pushes local intellectual property into regional markets, https://www.nst.com.my/news/nation/2025/08/1260188/govt-pushes-local-intellectual-property-regional-markets
- 《Bernama》 (2025. 8. 14). Malaysia Eyes Regional Expansion For Local Films And Animation IPs – Fahmi, https://www.bernama.com/en/news.php?id=2456674
- 《The Malaysian Reserve》 (2024. 7. 18). The evolution of cinemas: From standalone boxes to immersive multiplexes, https://themalaysianreserve.com/2024/07/18/the-evolution-of-cinemas-from-standalone-boxes-to-immersive-multiplexes/
- 《Says》 (2024. 8. 26). Malaysia's First Hot Pot Experience At Dadi Cinema Is Coming Soon, https://says.com/my/entertainment/malaysia-first-hot-pot-cinema-is-coming-soon
- 말레이시아 영화진흥위원회(Finas) 홈페이지, https://www.finas.gov.my/
- 아스트로 쇼(Astro Shaw) 인스타그램 계정(@astroshaw), https://www.instagram.com/astroshaw/

통신원 정보

성명 : 홍성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말레이시아/쿠알라룸푸르 통신원]
약력 : USM(Universiti Sains Malaysia) 전략적 인적자원관리(SHRM)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