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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에서 찾은 뿌리- 송현숙 작가 개인전

2022-04-12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디아스포라적 삶은 뿌리를 갈구하기 마련이다. 뿌리를 내리려는 힘은 강하다.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영혼의 뿌리를 그리워하는 것이 디아스포라의 운명일 것이다. 독일에 자리 잡은 많은 파독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간호사로서 의무 계약이 끝난 이후에도 많은 이들이 이곳에 남았다. 간호사로, 예술가로, 활동가로, 사업가로 삶을 꾸렸다. 그러면서 여전히 한국과 고향을 그리워하며 연결점을 찾는다. 송현숙 작가의 작품은 디아스포라적 삶의 표상이다. 수십 년 간 독일에 살면서 새겨진 그리움이 그림이 되었다. 송현숙 작가의 그림에는 떠나온 한국이 있지만, 지금 발 붙이고 선 독일도 담겨져 있다. 완전히 동양적이지도 않고, 완전히 서양적이지도 않다. 그 자체로 새로운 공간이다. 디아스포라의 공간.

베를린 슈프뤼트 마거스 갤러리에서 열린 송현숙 개인전

<베를린 슈프뤼트 마거스 갤러리에서 열린 송현숙 개인전>


지난 3월 23일, 분주한 베를린 중심가. 햇볕이 내리쬐는 공원에 자유로이 몸을 기대고 있는 베를리너들을 지나 새로 지어진 현대적인 건물로 들어선다. 송현숙 작가의 첫 베를린 개인전이 열리는 슈프뤼트 마거스(Sprüth Magers) 갤러리다. 1972년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온 그는 병원에서 미술 치료를 하는 것을 보고 미술을 시작했다고 한다. 함부르크 대학에서 미술과 조형 예술을 공부하면서 중세 서양 회화에 쓰이던 템페라(달걀과 염료를 섞은 재료) 물감을 사용한 독창적인 회화 기법을 발전시켰다.

크지 않은 갤러리에 송현숙 작가의 작품 7점이 반듯하게 걸려 있다. 어둡고 차분한 배경. 단단한나무 막대에 휘감겨 있는 얇고 하얀 천. 어릴 때 본 모시 같기도 하고, 병원에서 본 붕대 같기도 하다. 어둠 속에 차분이 늘어진 그것을 보면서 작가의 몸짓을 떠올린다. 온 몸을 움직여 그었을 한 획을 따라가다 보면 고요함 속에 단단히 뭉친 집념과 그것을 내려놓은 해방감이 전해진다. 어두움과 밝음이 공존하고, 긴장감과 여유가 공존하며, 팽팽함과 흐드러짐이 공존한다. 작품을 따라갈수록 캔버스의 어둠은 하얀 천으로 가볍게 밝혀진다. 갤러리의 어두운 바닥과 하얀 벽까지 작품의 일부가 되는 듯 조화롭다.

송현숙 작가 '3획'

<송현숙 작가 '3획'>


송현숙 작가 '12획'

<송현숙 작가 '12획'>


송현숙 작가는 한 획으로 한 번의 붓질을 마무리한다. 캔버스에 붓이 닿는 순간부터 떼어낼 때까지 멈추지 않고, 덧칠도 하지 않는다. 한 획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붓질 하나 하나에 고도의 집중력과 정확한 계산이 필요하며, 정확한 지점에서 붓을 떼어내는 그 순간까지 작가의 예술적 행위다. 슈프뤼트 마거스 갤러리 측은 “그리는 행위는 고도의 집중력과 명상의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퍼포먼스적인 체험“이라고 설명한다. 이어 “(송현숙의 작품은) 붓질과 색채로 그리움을 전하며,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조국의 추억을 형상화 한다. 이러한 감정들은 형식을 절제하고 집중하는 그녀의 작품을 독특하고 표현적인 그림 공간으로 만든다“고 덧붙였다.

강렬한 '붓질'의 의미는 작품의 제목에도 드러난다. '1획 위에 5획', '12획' 이렇게 붓질의 횟수가 곧 제목이다. 독일의 건축 디자인 및 예술 매거진 AD Magazin는 '절제된 조형 언어로 표현된 작가의 붓질은 그 자체로 독창적인 움직임이며 예술가 내면을 기록하고 있다. 송현숙은 미술을 하나의 행위로 보면서, 고도의 집중력과 성찰 상태에 이른다'면서 '붓질 하나 하나가 모두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동작이다. 송현숙의 작품을 보면 마음이 고요해지는데, 이는 거의 명상에 가깝다'고 소개했다. 이어 '송현숙은 동양적이고 서양적 영향, 집중과 내려놓음, 순간과 영원, 들숨과 날숨 사이를 오간다. 이러한 모순적인 것들의 조화로운 균형에서 작품의 강렬함과 매력이 나온다'고 밝혔다.

송현숙 작가의 삶과 작품에 대해 다룬 책 '집에서-그리거나 혹은 죽거나'

<<송현숙 작가의 삶과 작품에 대해 다룬 책 '집에서-그리거나 혹은 죽거나'>


송현숙 작가의 작품에는 거의 빠짐없이 나무 막대가 그려져 있다. 나무를 깎아 만든 것 같은 막대는 어디부터인가 시작되어 말뚝처럼 꼿꼿하게 서 있기도 하고, 기울여져 있기도, 어디에 기대 있기도 하다. 그래서 작품의 감상은 늘 이 막대에서 시작된다. 막대를 휘감거나 막대를 가만히 덮는 붓질을 보면 이 막대가 작가인 듯 작가의 삶인 듯 느껴진다. 그림 속 이 단단한 막대가 디아스포라적 삶에서 찾은 뿌리는 아닐까.   

※ 사진 출처: 통신원 촬영

※ 참고자료
https://spruethmagers.com/exhibitions/hyun-sook-song-berlin/
https://www.berlin.de/ausstellungen/archiv/7316648-3238788-hyun-sook-song-sprueth-magers.html
https://www.ad-magazin.de/artikel/hyun-sook-songs-erste-solo-show-in-berlin

통신원 정보

성명 : 이유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독일/베를린 통신원]
약력 : 전)2010-2012 세계일보 기자 라이프치히 대학원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