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자료] 튀르키예에서 숨겨진 영화가 된 <퇴마록>
2025-07-03주요내용
2025년 4월 튀르키예 극장가에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한국의 오컬트 애니메이션 <퇴마록>이 극장판으로 개봉한 것이다. <퇴마록>은 2010년대 한국 문학계를 강타한 이우혁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1,000만 부 이상의 누적 판매량 대기록을 달성해 오컬트 어반 판타지 소설의 대작으로 꼽힌다. 1994년 1월 첫 단행본이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쾌거를 거두었다. 이후 『국내편』과 『세계편』, 『혼세편』, 『말세편』으로 이어지며 한 번의 개정 작업을 통해 14권의 본편과 2권의 외전으로 완간하는 동안 1,000만 부를 돌파하며 한국 판타지 소설의 대가로 우뚝 선 명작이다. 그렇게 31년의 시간이 흘러 <퇴마록>이 3D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해 극장가에서 관객들 앞에 서게 됐다. 제작은 국내 대표 3D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로커스 스튜디오에서 맡았다. 원작자 이우혁 작가가 크리에이터로 참여하면서 소설로 접했던 강렬한 퇴마 판타지가 재현될 것으로 기대가 됐다. 애니메이션 영화 <퇴마록> 역시 원작 소설의 인기와 다르지 않았다. 영화가 공식 개봉하기 전부터 세계 3대 장르 영화제로 불리는 시체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를 비롯해 애니메이션계의 칸 영화제로 불리는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초청되는 등 해외 9개국 유수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며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올해 튀르키예에서는 지난 4월 공식 극장판으로 개봉했다. 그러나 반가운 마음도 잠시, 결과부터 말하면 흥행에는 대실패했다. 극장 개봉 성적은 가히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누적관객수 516명으로, 개봉 후 첫 주말 관객수 293명, 매출액 $1,954(₺76,770)로 충격의 결과를 보였다. 박스오피스 개봉 주말 성적은 20위에 그쳤다. 30여 년 동안 세계적인 걸작으로 만들어져 온 작품 <퇴마록>이 튀르키예에서는 흥행 대실패 한 것에 대해 통신원조차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애니메이션 영화 <퇴마록>의 흥행 실패 요인에 대해 현지 영화 평론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로 모아진다.

< 애니메이션 영화 '퇴마록' 개봉 첫 주말 관객수 및 매출 - 출처: 튀르키예 박스오피스 >
홍보와 마케팅의 부재 영화에 대한 소셜미디어 홍보나 마케팅 전략이 거의 부재했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영화에 대한 정보나 홍보가 없는데도 관람객들이 스스로 상영관을 찾아오진 않는다. 특히 외화보다 로컬 영화를 더 많이 선호하는 튀르키예인을 대상으로는 스크린에 설 영화에 대한 홍보와 마케팅 전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 리서치 기관 조사에 따르면 튀르키예 Z세대 중 87%가 영화를 선택할 때 인플루언서들의 추천을 참고해서 결정한다. 그러나 <퇴마록>이 개봉되는 과정에서 시민들이 그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영화에 대한 홍보나 마케팅이 미흡했다. 영화와 관객 사이 문화적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작업의 부재 현지 전문가들은 현지 관객의 문화적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사전 작업이 부재했다고 말한다. 튀르키예가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 비해 종교적 색채가 비교적 자유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99%의 국민들이 이슬람 종교를 가지고 있는 점을 고려해야 했다. 샤머니즘과 오컬트적 요소가 강한 <퇴마록>에 대한 이해는 기대하지 못하더라도 영화를 만나기 전 배경을 이해하고 최소한의 문화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현지 관람객들을 위한 특별한 마케팅 전략이 필요했다고 지적한다. 영화의 스토리나 주제를 현지 문화에 맞게 수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담는 형식에 대한 별도의 마케팅 전략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퇴마록>은 한국적 샤머니즘과 서양 오컬트를 결합한 독창적인 작품으로 이슬람 문화라는 또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튀르키예 관객들에게는 문화적 거리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배경 아래 있는 이들에게 문화적 거리감을 좁힐 수 있는 방법은 상대와 나 사이, 문화적 공통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차이점을 좁히기 위한 시도로 상대 속에서 문화적 공통점을 찾아내 홍보와 맞춤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2013년 개봉된 후 6편까지 인기를 끌었던 튀르키예 대표 오컬트 영화 'Dabbe' - 출처: 유튜브 >
튀르키예 영화 중에도 큰 흥행을 일으킨 오컬트 장르 영화가 있다. 2012년에 개봉된 오컬트 영화다. 튀르키예 대표 오컬트 영화로 꼽히는 는 쿠란 구절을 사용해 퇴마 의식을 묘사하며 2012년 개봉 후 6편 시리즈로 제작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은 작품이다. 같은 오컬트 장르 영화임에도 <퇴마록>이 얻지 못한 현지 대중들의 인기를 가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문화적 공감대를 현지 대중들에게서 충분히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퇴마록>은 한국적 샤머니즘과 서구 엑소시즘을 결합했지만 튀르키예 관객들은 이슬람적 코드가 반영된 로컬 오컬트 장르를 더 친숙하게 여긴다. 만약 이슬람적 코드를 반영해 <퇴마록>을 홍보하는 일에 조금만 고민하고 관심을 기울였다면 튀르키예는 물론 그 외 이슬람 종교를 가진 국가 대중들에게도 더 큰 관심을 받았을 것이다. 《Hdfilmcehennemi》는 <퇴마록>에 대해 "서구의 퇴마 의식과 동양의 신비한 주술을 흥미롭게 결합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었으나 이슬람적 코드를 기반으로 한 현지 오컬트 장르물(Dabbe)을 낯설게 느끼게 했다."고 평했다. 제한된 배급과 접근성 마지막 흥행 실패 요인은 불과 40개관이라는 제한된 배급과 접근성 문제에 대한 것이다. 영화 평론가 알페르 튀르크는 "40개 극장 한정 개봉은 좋은 작품을 보기 위해 상영관을 찾게 될 튀르키예 관객들의 접근성을 원천 차단한 것이다. CGV(CGV MARS DAĞITIM)의 보수적 전략이 한국 영화 <퇴마록>의 잠재적 관객들을 과소평가한 결과다."고 분석한다. 2024년 튀르키예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극장수는 2,776개인데 이번에 애니메이션 영화 <퇴마록>이 상영된 스크린수는 40개다. 이는 전체 극장수의 1.4%에 해당한다. 튀르키예의 배급 시장은 소수 대기업이 독점하는 구조이며 더욱이 외화는 한정적으로 배급된다. 문제는 영화 상영수도 제한적인데 <퇴마록> 같은 경우에는 홍보와 마케팅 부재 속에서 정작 시민들마저 영화가 존재하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분석한다. 튀르키예에서 애니메이션 영화 <퇴마록>의 흥행 실패는 문화적 공감각 없는 글로벌화의 전형적 사례로 정리하고 싶다. 한류의 세계화는 단일 문화의 일방적 수출이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의 대화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튀르키예 시장은 유럽과 아시아, 중동으로까지 뻗어나가는 한류의 허브다. 이번 실패를 거울삼아 앞으로 문화적 깊이를 갖춘 차기 작품이 등장하게 될 때는 한국 영화가 현지 관객들 문화 속으로 들어가 더 깊이 호흡하며 공감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도록 홍보와 마케팅 전략에도 더 신경을 써 주기를 기대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튀르키예 박스오피스, https://boxofficeturkiye.com/film/exorcism-chronicles-baslangic--2017837/box-office - 《Hdfilmcehennemi》 (2025. 4. 7). Exorcism Chronicles: Baslangic, https://www.hdfilmcehennemi.gen.tr/exorcism-chronicles-baslangic/ - 《ekşi sözlük》 (2025. 4. 4). exorcism chronicles baslangic, https://eksisozluk.com/exorcism-chronicles-baslangic--7955575
통신원 정보
성명 : 임병인[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튀르키예/이스탄불 통신원] 약력 : YTN world 해외 리포터, 민주평통 남유럽협의회 튀르키예 지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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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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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urki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