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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白夜)의 축제, 문화로 하나 되는 헝가리: '박물관의 밤(Múzeumok Éjszakája)'

2025-07-11

주요내용

가장 긴 낮과 가장 짧은 밤, 예술의 빛으로 도시를 밝히다
지난 6월 21일 일 년 중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다는 하짓날(nyárinapforduló)을 맞아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는 밤늦도록 꺼지지 않는 예술의 빛으로 불야성(不夜城)을 이루었다. 올해로 제23회를 맞이한 헝가리의 대표 문화 축제 '박물관의 밤(Múzeumok Éjszakája)'이 전국적으로 펼쳐진 까닭이다. 문화혁신부가 주최하는 연간 최대 규모의 문화 행사인 올해 축제에는 헝가리 전역의 약 400여 개 문화예술기관이 참여해 2,500개가 넘는 특별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다음 날 새벽까지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았다. 

국민 통합의 구심점, '박물관의 밤'의 지향점
발라즈 항코(Balázs Hankó) 헝가리 문화혁신부 장관은 개회사에서 "박물관의 밤은 단순한 여름밤의 행사가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이 축제가 "우리의 조국과 역사, 그리고 서로를 연결하며 헝가리인들의 영혼의 결속을 기념하는 장"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전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적 통합과 결속을 도모하는 것이 행사의 핵심 목표임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취지는 올해의 특별 주제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2025년은 헝가리 국민 시인으로 추앙받는 모르 요커이(Mór Jókai)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해 축제에 참여한 대다수 기관은 그의 문학 세계와 생애를 조명하는 다채로운 기획 전시, 강연, 공연 등을 마련하며 행사의 구심점을 형성하고 국가적 자긍심을 고취했다.
박물관의 밤(Múzeumok Éjszakája)' 행사 홍보 사진

< '박물관의 밤(Múzeumok Éjszakája)' 행사 홍보 사진 - 출처: 박물관의 밤(Múzeumok Éjszakája) 홈페이지 >

성공 모델의 도입과 현지화, 그리고 양적 성장
'박물관의 밤'은 1997년 독일 베를린에서 시작해 폭발적인 시민 참여를 이끌어낸 성공적인 모델이다. 이후 전 세계 120개국으로 확산됐으며 헝가리는 2003년부터 이를 도입해 매년 성공적으로 개최해왔다. 헝가리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행사는 해를 거듭하며 참여 기관과 방문객 수가 꾸준히 증가하는 뚜렷한 양적 성장을 이뤄냈다. 단 하룻밤의 축제를 위해 수십만 명이 움직이는 국가적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문화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전략이 있다. 성인 기준 3,000포린트(약 1만 1,000원)의 손목 팔찌형 티켓 한 장이면 저녁 6시부터 새벽 2~3시까지 모든 참여 기관의 문턱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부다페스트 현대미술관(Museum of Fine Arts)의 일반 성인 입장료가 5,800포린트(약 2만 3,000원)인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가격이다. 이는 경제적 제약이나 주말 근무 등의 시간적 제약으로 평소 문화생활이 어려웠던 시민들에게 예술 향유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역할을 했다. 주최 측은 주요 동선을 잇는 심야 특별 버스 노선을 새벽 2시 30분까지 운영하는 등 인프라 지원에도 만전을 기하며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성공 이면의 그림자: 미술관 피로와 질적 성장에 대한 과제
그러나 이처럼 성공적인 대중 동원 이면에는 질적 성장에 대한 고민도 제기된다. 하룻밤 동안 최대한 많은 곳을 방문하려는 인파 속에서 미술관 피로(Museum Fatigue)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는 제한된 시간 안에 여러 전시를 주파하듯 관람하는 방식이 과연 깊이 있는 예술적 성찰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일각에서는 관람객 수 증가라는 가시적인 성과에 집중한 나머지 개별 프로그램의 질적 깊이나 관람 환경의 쾌적성이 담보되지 못하는 수박 겉 핥기식 관람을 양산할 수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하룻밤의 뜨거운 열기가 일회성 이벤트로 소진되는 것을 넘어 '박물관의 밤'이 창출한 대중적 관심을 어떻게 지속적인 문화 향유 인구 저변 확대로 연결할 것인가는 주최 측에 남겨진 중요한 과제다. 그럼에도 '박물관의 밤'은 문화가 어떻게 한 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시민을 결속하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가장 짧은 밤을 예술로 채우는 이 특별한 경험은 헝가리인들에게 단순한 관람을 넘어 문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유대감을 확인하는 소중한 연례 의식으로 기능하고 있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박물관의 밤(Múzeumok Éjszakája) 홈페이지, https://muzej.hu/hir/2019-05-31/elso-ejszakazoknak
- 《Magyar Múzeumok》 (2025. 6. 18). Ünnep az ünnepben – 2025. június 21-én MúzeumokÉjszakája!, https://www.magyarmuzeumok.hu/cikk/unnep-az-unnepben-2025-junius-21-en-muzeumok-ejszakaja

통신원 정보

성명 : 유희정[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헝가리/부다페스트 통신원]
약력 : 『한국 영화 속 주변부 여성과 미시 권력』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