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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국민 서점 내셔널 북 스토어(National Book Store), 한국 문학 전진기지로

2025-09-05

주요내용

  
필리핀 최대이자 가장 상징적인 서점 체인인 내셔널 북 스토어(National Book Store)가 한국 대중문화와 함께 한국 문학 보급의 중심 무대로 떠오르고 있다. 1942년 일제강점기 직전 자본금 211페소로 마닐라 산타크루즈 에스콜타 다리 아래 작은 모자 가게 구석에서 시작한 내셔널 북 스토어는 단순한 서점에 그치지 않고 필리핀 출판·교육·문화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전쟁과 태풍, 경제 위기를 버티며 꾸준히 확장해온 이 서점은 이제 필리핀에서 약 230여 개 매장을 운영하며 필리핀 서점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독보적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마닐라 소재 내셔널 북 스토어 매장 내셔널 북 스토어 매장 내부

< (좌)마닐라 소재 내셔널 북 스토어 매장, (우)내셔널 북 스토어 매장 내부 - 출처: 통신원 촬영 >

내셔널 북 스토어 역사는 필리핀 현대사와 궤를 같이한다. 1945년 일본과 벌인 마닐라 전투 때 첫 매장이 소실됐지만 이후 학기 시작에 맞춰 곧바로 영업을 재개했다. 교과서를 비롯해 사탕, 비누, 슬리퍼 같은 생활 필수품까지 판매했다는 당시 기록은 전쟁 속에서도 학생을 위한 교육을 멈추지 않으려 했던 초창기 경영자 철학을 보여준다. 1948년 태풍 진(Gene) 때문에 서점이 파괴되기도 했지만 이들은 곧바로 복구에 나서 새로운 2층 매장을 신축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는 미국 주요 출판사와 협력하며 교육, 전문 서적 시장까지 넓혔다. 1963년 준공된 9층 규모 알버서 빌딩은 내셔널 북 스토어 도약과 문화적 상징성을 보여주는 공간이 됐다. 

최근 내셔널 북 스토어는 한국 문학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현지 독자들과 새로운 접점을 만들어가고 있다. 필리핀에서 케이팝, 한국 드라마 그리고 한식 등은 이미 일상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 역시 높아지고 있으며 특히 2024년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더욱 뜨거워졌다. 내셔널 북 스토어는 이러한 흐름을 즉각 포착해 매장 한편에 특별 코너 'K-Reads'를 운영하며 번역된 한국 베스트셀러들을 전면 배치하고 있다. 『82년생 김지영』, 『대도시의 사랑법』, 『저주토끼』,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등 사회심리적 담론을 담은 책들이 인기다. 한강, 박상영, 백세희 등 작가들 책은 현지 독자들에게 자기 성찰과 사회 비판의 거울로 읽히고 있다. 

내셔널 북 스토어는 단순한 판매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최근 몇 년간 이곳은 '문화 경험의 장'으로 변모하며 다양한 행사를 주최했다. 2024년 9월 내셔널 북 스토어가 주필리핀한국문화원과 협력해 연 행사를 통해 『대도시의 사랑법』 작가 박상영이 직접 마닐라를 찾아 독자들과 만났다. 북토크와 사인회가 열린 당일 수백 명의 독자들이 몰리며 서점은 가히 축제 분위기였다. 내셔널 북 스토어는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도서 축제 '술릿 독서 박람회(Sulit Reads Fair)'에서도 한국 작품을 별도 부스에서 선보이고 있으며, 소셜미디어 채널을 통해서는 'K-Reads' 콘텐츠를 꾸준히 홍보하고 있다. 특히 저자 인터뷰, 특별 추천 도서, 한국 문구류와 연계한 이벤트 등은 젊은 세대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방법 중 하나다.
내셔널 북 스토어에 진열된 다양한 책들 내셔널 북 스토어에 자리한 한국 소설

< (좌)내셔널 북 스토어에 진열된 다양한 책들, (우)내셔널 북 스토어에 자리한 한국 소설 - 출처: 통신원 촬영 >

현지 독자들이 한국 문학에 매력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공감 가능성'이다. 필리핀 역시 가족 중심 가치와 세대 갈등, 사회적 압력이라는 과제를 지니고 있어 한국 소설 속 인물의 고민이 곧 자신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는 평가다. 서점에서 만난 한 직장인 여성은 "한국 소설 속 가족 관계와 사회적 기대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고 전했다. 또 다른 대학생 독자는 "한국 문학을 통해 단순히 한국만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필리핀국립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관계자는 "한국 문학은 단순 번역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청년 세대 사고와 정체성 형성 과정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 같은 교류는 장기적으로 두 나라가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내셔널 북 스토어는 이미 서점 운영을 넘어 복합 문화기업으로 변모했다. 출판 전문 자회사인 안빌 퍼블리싱(Anvil Publishing), 전문 서점 파워북스(Powerbooks), 예술·공예 전문점 아트 바(Art Bar), 문구 전문점 노트워디(Noteworthy) 등 다양한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도서 산업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 2017년에는 케손 애비뉴 본사 건물에 NBS 대학(NBS College)를 설립해 회계학, 관광경영학 등 실용 중심 학위를 제공하며 교육 분야로까지 확장했다. 이러한 다각화는 내셔널 북 스토어가 단순 서점 체인을 넘어 출판, 교육, 문화, 라이프스타일을 아우르는 종합 플랫폼임을 보여준다. 

내셔널 북 스토어는 오늘날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다. 필리핀 독자들에게 새로운 문화 경험을 제공하는 동시에 해외 문학을 수용 및 확산하는 문화적 인프라로 기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한국 문학은 다른 어느 세계 문학 못지않게 빠르게 자리 잡으며 가족, 사회, 정체성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매개로 필리핀 독자들의 자아 성찰과 토론을 이끌어 내고 있다. 필리핀 대표 서점 책장에서 만나는 한국 문학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두 나라를 이어주는 문화의 다리가 되고 있다. 이는 한국과 필리핀이 문학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토대를 강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내셔널 북 스토어 책장에 꽂힌 한국 문학은 양국 문화교류 상징이 되고 있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Manila Bulletin》 (2023. 9. 25). An intimate conversation with 'I Decided to Live as Me' author Soo-Hyun Kim, https://mb.com.ph/2023/9/25/an-intimate-conversation-with-i-decided-to-live-as-me-author-soo-hyun-kim
- 내셔널 북 스토어(National Book Store) 홈페이지, https://www.nationalbookstore.com/
- 주필리핀한국문화원 홈페이지, https://phil.korean-culture.org/ko

통신원 정보

성명 : 조상우[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필리핀/앙헬레스 통신원]
약력 : 필리핀 중부루손 한인회 부회장/미디어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