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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이슈] 북유럽 최대 규모 도서 행사, 예테보리 도서전에 가다

2025-11-05

주요내용

지난 9월 25일부터 28일까지 스웨덴 제2의 도시 예테보리에서 북유럽 최대 규모의 도서 축제 <예테보리 도서전(Gothenburg Book Fair, Bokmässan)>이 열렸다. 행사가 진행된 4일 동안 총 95,706명이 방문하며 전시장, 무대, 세미나장에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가득 찼다. 이번 도서전에는 3,750개의 프로그램, 320개의 세미나, 35개국에서 온 775개의 출판사가 참여했고, 그중 151명의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도 자리를 빛냈다. 그중에는 한국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댄 브라운(Dan Brown), 줄리아 퀸(Julia Quinn), 프레드릭 백만(Fredrik Backman) 등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 도서전의 핵심 주제는 ‘사랑과 욕망’ 그리고 ‘드라마’였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로맨스 장르의 도서들이 그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받았다. 도서전에서 가장 이색적인 공간 중 하나는 바로 ‘사랑과 욕망 도서관(Kärlek och lust-biblioteket)’ 코너였다. 이곳에서는 성과 사랑, 관계에 대한 다양한 도서들을 만나볼 수 있었고, 독자들이 자유롭게 휴식하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올해 도서전에선 주제에 맞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진행됐다. 스웨덴 작가이자 공인 혼례 주례자인 비욘 라넬리드(Björn Ranelid)가 행사장 한복판에서 하루에 다섯 쌍씩 공개 결혼을 진행하는 이벤트를 열어 올해의 주제를 몸소 기념했다.
전시회장 사진 사랑과 욕망 도서관 사진

< 전시회장(좌), 사랑과 욕망 도서관(우) - 출처: 통신원 촬영 >

특히 눈에 띈 건 <스웨덴 성교육 협회(RFSU)>의 부스였다. 부스 한가운데에는 과감하게 여성 성기를 형상화한 조각상을 전시해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또한 는 무료 콘돔과 성교육 자료들을 배포하여 누구나 자연스럽게 성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전시된 책들은 대부분 실용적인 성교육 도서와 잡지였고, 특히 쉬운 스웨덴어로 된 성교육 교재도 마련되어 스웨덴어가 서툰 이민자나 청소년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RFSU 부스 사진 성교육 교재

< RFSU 부스(좌), 성교육 교재(우) - 출처: 통신원 촬영 >

올해 도서전에는 파리사 릴예스트란드(Parisa Liljestrand) 스웨덴 문화부 장관, 로타 에드홀름(Lotta Edholm) 고등·대학교육 및 연구 담당 장관, 시모나 모함손(Simona Mohamsson) 교육 및 통합 담당 장관 등 주요 정부 인사들이 참석했다. <예테보리 도서전>은 단순한 도서 박람회를 넘어 정부에서 지원하고 문화, 교육, 시사적 담론을 나누는 중요한 행사다. <스웨덴 교사 협회(Sveriges Lärare)> 부스 무대에서는 교육계의 현안을 다루는 강연과 대담이 쉴 새 없이 진행됐다. 다양한 학령기에 맞춘 교과서와 학습 자료를 판매하는 출판사 부스들도 눈에 띄었다. 
스웨덴 교사 협회 특별 무대 유치원용 교재

< 스웨덴 교사 협회 특별 무대(좌), 유치원용 교재(우) - 출처: 통신원 촬영 >

<예테보리 도서전>은 교육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장이기도 하다. 수화 교재, 사진과 그림, 상징을 활용한 쉬운 읽기 자료 등 다양한 교재들을 판매하는 특수 교육 전문 교재 출판사들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소수 언어와 문화 존중의 가치를 드러내는 부스들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그 예로 북극권 소수 민족인 '사미족'을 위한 <사미 학교 위원회(Sameskolstyrelsen)>는 사미어 교재와 아동도서를 전시하며 사미 언어와 학교, 문화 보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도서전은 다문화적이고 포용적인 교육 환경을 실천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수 교육 교재 사미 학교 위원회 부스 강연

< 특수 교육 교재(좌), 사미 학교 위원회 부스 강연(우) - 출처: 통신원 촬영 >

작가 사인회 도서 아울렛

< 작가 사인회(좌), 도서 아울렛(우) - 출처: 통신원 촬영 >

전시회장은 그야말로 다채로운 볼거리와 즐길 거리로 가득했다. 문학, 예술, 아동 도서부터 실용서까지 출판사마다 준비한 프로그램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아동 도서 코너는 아이들과 부모들로 붐볐는데, 작가들이 직접 책에 사인을 해주고 즉석에서 귀여운 일러스트까지 그려주는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인형탈을 쓴 캐릭터들과 사진을 찍는 이벤트도 이어지며 마치 작은 축제에 온 듯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한편 책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아웃렛 구역도 큰 인기를 끌었다. 박스째 쌓인 책들 사이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눈빛은 반짝였고 책 냄새와 사람들의 설렘이 뒤섞인 공간은 작은 도서관 같기도 하고 벼룩시장 같기도 했다. 

이번 <예테보리 도서전>에서는 한국 문학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출판사 트라난(Tranan)의 부스에서는 정보라 작가의 소설 『저주 토끼』의 스웨덴어 번역본 『Förbannad kanin』, 박상영 작가의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의 스웨덴어 번역본 『Kärlek i Seoul』 등이 전시·판매되고 있었다. 트라난은 스웨덴의 대표적인 해외 문학 전문 출판사로, 지금까지 75개국 750명 이상의 작가가 쓴 400권 이상의 책을 출판했다. 번역 언어는 40개가 넘으며 약 230명의 번역가와 협업해 다양한 문화권의 문학을 스웨덴 독자들에게 소개해왔다. 이번 도서전에서는 정보라 작가와 김주혜 작가가 세미나와 토크 프로그램에 참여해 작품 세계와 창작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인회를 통해 현장을 찾은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 해외 문학 번역 전문 출판사 트라난 부스 - 출처: 통신원 촬영 >

올해 도서전에서는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Chimamanda Ngozi Adichie)가 작년에 새로 제정된 문학상인 '인어상(Sjöjungfrun)'을 수상했다. 인어상은 도서전의 로고인 인어에서 유래된 상으로, 스웨덴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작가에게 수여된다. 도서전 측은 선정 이유로 '2003년 데뷔 이후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는 정체성, 페미니즘, 소속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현대 문학에 도입해 왔다. 개인적인 이야기와 정치적인 주제를 결합하며 권력, 젠더, 이주, 탈식민주의를 형상화한다'라고 밝혔다. 이번 도서전의 또 다른 눈길을 끈 변화는 ‘큰 정원(Den stora trädgården)’ 구역이었다. 소규모 출판사와 잡지들이 한자리에 모여 책과 무대, 카페가 함께하는 독특한 공간이었다. 방문객들은 책을 둘러보고 공연을 즐기며, 커피 한 잔의 여유까지 누릴 수 있었다. '드라마'라는 올해 주제에 따라 희곡 낭독, 극작가 워크숍, 공연 예술 관련 행사도 증가했다. 내년 도서전에서는 퀘벡(Québec)이 주빈국으로 초청되고, '민중교육(Folkbildning)'과 '게임'이 주요 주제가 될 예정이다. 벌써부터 어떤 행사와 프로그램으로 도서전이 꾸며질지 기대된다.
전시회 도서 판매 부스 전시회 도서 판매 부스

< 전시회 도서 판매 부스 - 출처: 통신원 촬영>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벨기에 한인 입양 협회 제공

통신원 정보

성명 : 오수빈[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스웨덴/스톡홀름 통신원]
약력 : 현) 프리랜서 번역가, 통역사, 공공기관 조사연구원 전) 재스웨덴한국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