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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쿠프 스워바츠키 극장에서 열린 연극 채식주의자 폴란드 초연

2026-01-13

주요내용

    
2025년 12월 4일, 폴란드 크라쿠프(Kraków) 중심부에 위치한 율리우시 스워바츠키 극장(Juliusza Słowackiego Theatre)에서 특별한 초연이 열렸다. 바로 작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원작으로 한 연극 <채식주의자(Wegetarianka)>의 폴란드 첫 무대이다. 이 공연은 제18회 보스카 코메디아 국제연극제(Międzynarodowy Festiwal Teatralny Boska Komedia)의 개막작으로 상연되며, 한국 문학의 무대화를 넘어 유럽 예술 담론의 중심으로 진입한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된다. 

연출은 파베우 미시키에비치(Paweł Miśkiewicz)가 맡았다. 그는 원작이 지닌 고요한 급진성을 시각과 신체, 이미지와 사운드를 넘나드는 무대로 재탄생시켰다. 육식을 거부하는 선택에서 출발해 점차 사회·가족·신체적인 삶을 포기하고 식물로 존재하기를 갈망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그녀의 침묵은 단순한 회피가 아닌 폭력적인 질서에 대한 급진적 거부로 읽힌다. 연극은 이 갈망을 언어가 무너진 무대 위에서 신체와 이미지로 표현한다. 무대 미술은 바르바라 하니츠카(Barbara Hanicka), 보디 페인팅(body painting)은 크지슈토프 멘지크(Krzysztof Mężyk), 음악은 라파우 마주르(Rafał Mazur), 안무는 안나 옵샨스카(Anna Obszańska)가 맡았다. 이들은 각각의 영역에서 독립적인 예술 언어를 펼치며 전체 공연의 미학을 구성한다. 결과적으로 이 연극은 관객들을 말이 아닌 감각으로 사유하도록 이끈다
 율리우시 스워바츠키 극장에서 열린 연극 ‘채식주의자(Wegetarianka)’ 공연 모습  율리우시 스워바츠키 극장에서 열린 연극 ‘채식주의자(Wegetarianka)’ 공연 모습

< 율리우시 스워바츠키 극장에서 열린 연극 ‘채식주의자(Wegetarianka)’ 공연 모습 – 출처: 율리우시 스워바츠키 극장 페이스북(@TeatrSlowackiego >

이 무대가 펼쳐진 율리우시 스워바츠키 극장은 1893년 개관 이래 폴란드 연극의 중심이자 실험 정신의 산실이었다. “크라쿠프는 민족 예술이다(Kraków to sztuka narodowa)”라는 문구가 새겨진 이 극장은 스타니스와프 비스피안스키(Stanisław Wyspiański), 비트카치(Witkacy), 크리스티안 루파(Krystian Lupa) 등 시대를 대표하는 연출가들이 거쳐 간 공간이다. 전쟁 후 극장은 1945년 2월 19일에 재개관하였고, 1993년에는 개관 100주년을 맞아 구스타프 호루벡(Gustaw Holoubek)의 연출로 기념 공연이 상연되었다. 이후 보그단 후사코프스키(Bogdan Hussakowski) 감독 시기에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Fiodor Dostojewski)의 『보복』, 에두아르도 드 필리포(Eduardo De Filippo)의 『위대한 마술』, 타데우시 스워보지아네크(Tadeusz Słobodzianek)의 『페코시 시민』 등 다양한 현대극들이 해당 극장의 무대에 올랐고, 이 시기에 파베우 미시키에비치, 바르토시 시드워프스키(Bartosz Szydłowski) 등 연출가들이  데뷔했다. 

2025년 <채식주의자(Wegetarianka)>는 제18회 보스카 코메디아(Boska Komedia)의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그 존재감을 확고히 했다. 올해 페스티벌의 주제는 “야만인을 기다리며(Czekając na barbarzyńców)”로,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스(Konstantinos Kawafis)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불확실성과 타자에 대한 불안을 예술로 표현한다. 예술감독 바르토시 시드워프스키는 “예술은 오늘날 마지막 정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존재”라고 밝히며 이번 행사를 ‘예술적 정화’의 장으로 설계했다. 페스티벌은 단테(Dante)의 사후 세계 구조를 모티브로 한 세 가지 섹션으로 구성된다. 지옥(INFERNO)은 사회적인 갈등을 다룬 경쟁 부문이며, 천국(PARADISO)는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 무대이다. <채식주의자>는 실험적인 퍼포먼스, 신체극, 무용 등이 어우러진 연옥(PURGATORIO) 섹션에 포함되어 있으며, 플로렌티나 홀진게르(Florentina Holzinger)의 『여름이 없었던 해』, 리나 라펠리테(Lina Lapelytė), 마그다 슈페흐트(Magda Szpecht), 카타르지나 칼바트(Katarzyna Kalwat) 등의 작품과 함께 소개되었다.

< 율리우시 스워바츠키 극장에서 열린 연극 '채식주의자(Wegetarianka)' 공연 모습 – 출처: 율리우시 스워바츠키 극장 페이스북(@TeatrSlowackiego) >

여기서 연출진은 한강의 소설을 토대로 인간과 폭력, 젠더(gender)와 종(種)이라는 전 지구적 문제를 무대 위에서 깊이 있게 재구성한다. 이는 문화의 단순한 번역과 각색을 넘어선 예술 언어의 재창조라 할 수 있다. 2025년 겨울, 크라쿠프의 고전적인 무대 위에 올라선 연극 <채식주의자>는 한국 문학이 전 세계 관객에게 어떻게 보편성과 급진성을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지를 강하게 증명하고 있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율리우시 스워바츠키 극장 페이스북 계정(@TeatrSlowackiego), https://www.facebook.com/TeatrSlowackie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