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콘텐츠뉴스(언론보도)

'병맛' 일본 B급 대가, K드라마 연출..."공격적인 한국 창작자들과 일하고 싶어"
  • 2022-07-26 | 방송


'병맛' 일본 B급 대가, K드라마 연출...
"공격적인 한국 창작자들과 일하고 싶어"

입력 2022.07.12 11:00
 

슬레이트를 들고 있는 사람 손

 

그의 영화는 괴이하다. 개성이라는 단어로는 형용할 수 없다. 스케이트 날에 사지가 반으로 쪼개지는 장면(영화 ‘이치 더 킬러’)이 등장하거나 바퀴벌레 인간(영화 ‘테라포마스’)이 나온다. 오싹한 공포를 전하거나 극한의 액션을 빚어내다가도 때로는 실실 웃게 만드는 코미디를 선보인다. 상식 밖, 병맛, 악취미라는 수식이 따르나 2013년 ‘짚의 방패’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대표작 ‘오디션’(1999)은 최고 공포 영화로 종종 꼽힌다. 할리우드 악동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규정할 수 없다’란 표현으로 규정할 만한 일본 감독 미이케 다카시(62)가 제26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았다. 9일 오후 경기 부천시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세로로 주름이 여럿 잡힌 검은색 상하의에 포도 크기 구슬로 장식된 팔찌를 차고 나타났다. 그다운 행색이었다.

미이케 감독은 부천영화제에서 ‘두더지의 노래 파이널’(2021)을 선보였다. 야쿠자 조직에 잠입해 두목을 잡으려는 형사 레이지(이쿠타 도마)의 좌충우돌 활약상을 그린 코미디 영화다. 동명 원작 만화를 밑그림 삼았다. 여자 친구에게 밀애를 들킨 레이지가 비 오듯 땀을 흘리는 장면 등 만화적 상상이 릴레이로 이어진다. ‘무슨 이런 황당한 영화가 있냐’고 의문을 가지면서도 시간을 뺏기게 된다. 미이케 감독은 “원작자의 의도에 충실하게 만들려고 만화처럼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아무리 영화를 잘 만들어서 관객들이 만족해도 원작자가 ‘내 작품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의미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미이케 감독은 드라마 ‘커넥트’ 연출을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주로 한국에 머물고 있다. ‘커넥트’는 CJ ENM 계열사 스튜디오 드래곤이 제작하는 드라마로 국내 동명 웹툰(작가 신대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장기 밀매업자에게 눈을 빼앗긴 주인공이 눈을 이식한 사람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서 펼쳐지는 복수극을 그리고 있다. 정해인과 고경표, 김혜준이 출연한다. 지난해 12월 시작한 촬영은 3월 마쳤고 후반 작업 중이다.

일본 감독이 한국 드라마를 연출하는 건 미이케 감독이 최초다. 스튜디오 드래곤 관계자는 “‘커넥트’를 기획하며 미이케 감독이 적임자라 판단해 연출 제의를 했다”며 “미이케 감독과 각색 단계부터 작업을 함께하고 있다”고 밝혔다. ‘커넥트’는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일본 영화 간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한국 영화 ‘브로커’로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것에 비견할 만한 사례다.

미이케 감독이 한국에서 드라마를 연출하게 된 건 “새로운 시도” 때문이다. 그는 “일본에선 제작자나 감독이 수비적인 태도를 굉장히 강하게 취하는데 한국 제작자 등은 아주 공격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에서 ‘커넥트’를 연출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미이케 감독은 “캐스팅 경쟁이 뜨거웠고 괜찮은 배우들이 너무 많아 출연자 선정이 정말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미이케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100편이 넘는다. 그는 1991년 비디오 판매와 대여를 겨냥한 비디오 영화인 ‘브이(V)시네마’로 연출 이력을 시작해 주류 영화계로 넘어왔다. 왕성한 창작력으로 2년(2000~2001년) 동안 영화 12편을 선보이기도 했다. 지금도 1년에 1, 2편꼴로 신작을 내고 있다. 미이케 감독은 “다작이라는 개념 자체를 생각하지 않는다”며 “조감독으로 1년 내내 영화 일만 했던 때와 비교하면 지금 압도적으로 일이 많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부극과 SF, 사무라이 영화, 심지어 뮤지컬 영화까지 선보였지만 미이케 감독의 장기는 역시 공포 영화다. 그는 “중학생 시절 머리가 잘려 나가는 장면이 담긴 공포 영화를 보고선 무서우면서도 자유와 해방감을 느꼈고 (창작 활동에) 큰 자극이 됐다”고 했다. 그는 “솔직히 공포 영화 팬이라고 할 수 없으나 공포 영화 촬영 현장은 굉장히 재미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 wender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