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소리·몸짓 더해져 완전히 새로운 예술…
"K팝 아니라 K아트"
송고시간 : 2024-10-17 11:02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의 'K-팝 원론'…"지구상에 없었던 새로운 형태"
뮤직비디오 속 표현·의미 분석…언어학 시각서 본 노랫말 특징 눈길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새로운 곡이 발표되자 국내는 물론, 글로벌 음악 차트가 요동친다. 유튜브로 공개된 뮤직비디오 영상에는 각국 언어로 응원하는 댓글이 달린다.
공식적인 첫 무대는 미국의 인기 토크쇼. 영어 인터뷰도 문제없다.
세계적인 음악 축제의 간판 출연자(헤드라이너)로 나서는 것도 놀랍지 않다. 국적과 언어를 초월해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오늘날 K-팝(pop)의 모습이다.
모두가 열광하는 K-팝은 무엇이며,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BTS 제이홉 전역 기다리는 브라질 팬
(원주=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17일 강원 원주시 육군 36사단 신병교육대 앞에서 브라질 팬이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제이홉의 전역을 기다리고 있다. 2024.10.17 yangdoo@yna.co.kr
최근 출간된 책 'K-팝 원론'(연립서가)은 이런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일종의 안내서다.
일본국제교양대학 객원 교수, 메이지가쿠인대학 객원 교수·특명 교수 등을 지낸 노마 히데키(野間秀樹) 씨가 1970년대부터 반세기 가까이 차곡차곡 쌓아온 그만의 K-팝 이야기를 풀어냈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K-팝에 대해 "'음악'이라는 테두리를 훌쩍 넘어서 지금까지 지구상에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700쪽이 넘는 책은 그간의 K-팝 담론과는 다른 점이 돋보인다.
미디어나 저널리즘, 연예계, 마케팅 등 주변부를 다루는 게 아니라 철저히 작품을 비춘다. 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뮤직비디오를 비롯한 각종 동영상이다.
도쿄돔서 뉴진스 굿즈 사진 찍는 사람들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27일 뉴진스의 첫 일본 단독 공연이자 팬미팅 '버니즈 캠프 2024 도쿄돔'이 열린 일본 도쿄돔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팬들이 뉴진스 굿즈를 손에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24.6.27 psh59@yna.co.kr
노마 히데키 씨는 "K-팝은 음악의 한 장르로 분류됐으나 이제는 뮤직비디오를 중심으로 그 테두리를 넘어선 아트(art·예술)가 됐다"고 의미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말, 소리, 빛, 신체성이 어우러진 21세기형 종합 예술"이라고 정의했다.
노마 히데키 씨는 독자들에게 책을 어떻게 소개하겠냐는 말에 "K-팝을 새롭게, 그리고 확실하게 K아트로 자리매김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K-팝을 단순히 음악의 한 유파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양식도, 표현 양식도 20세기까지 지구상에 없었던 아트라는 점을 선명하게 그려냈다고 할까요?"
일본 학자가 지적 호기심에서 K-팝을 들여다본 게 아닐까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책은 K-팝 뮤직비디오를 분초 단위로 분석하고, 그 안에 담긴 표현 방법이나 의미를 설명한다.
노마 히데키 씨가 그린 제니 그림
[연립서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예를 들어 블랙핑크의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 안무 영상에서 가장 부각되는 점으로 '신체성'을 꼽으며 "21세기의 오늘이 요구하는 존재의 형태"라고 짚는다.
K-팝의 언어, 즉 노랫말을 분석한 부분에서는 그의 시선을 특히 주목할 만하다.
사실 노마 히데키 씨는 언어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과 일본 양쪽의 피를 이어받은 그는 도쿄외국어대에서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에서 연구하기도 했다.
특히 한글을 '지'(知)의 관점에서 조명한 책 '한글의 탄생'은 2012년 한글학회가 주관하는 주시경학술상을 받았으며, 언어학 연구자들에게 필독서로 꼽힌다.
'K-팝 원론' 책을 쓴 학자 노마 히데키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K-팝 원론' 책을 쓴 학자 노마 히데키 전 메이지가쿠인대학 특명 교수가 14일 서울 종로의 한 호텔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2024.10.17 yes@yna.co.kr
그는 세계 각국의 팬들이 왜 한국어 목소리와 랩에 '꽂히는지'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해준다.
그룹 스트레이 키즈의 히트곡 '마니악'(MANIAC) 가사를 어떻게 발음하는지 하나하나 짚으며 한국어 음절 끝에 오는 자음이 폐쇄되는 '비개방성'을 알려주는 게 하나의 예시다.
그는 "지구촌 사람들이 한국어에 열광하는 비밀 중 하나가 바로 이 음절 끝 자음의 비개방처럼 날카롭고 멋지게 리듬을 끊어 내는 성격에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2022년 일본에서 먼저 나온 책은 현지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다.
도쿄의 한국어책 전문 서점 '책거리'가 기획한 강연을 모아 낸 책에는 K팝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유튜브 영상으로 연결되는 정보무늬(QR코드)를 실어 주목받았다.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K-팝 원론' 책을 쓴 학자 노마 히데키 전 메이지가쿠인대학 특명 교수가 14일 서울 종로의 한 호텔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2024.10.17 yes@yna.co.kr
이번에 한국어판을 내면서는 직접 그린 그림을 더하고 QR코드도 150개에서 400개 이상으로 대폭 늘렸다. 번역이 아니라 아예 새로 쓰기 시작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부터 오늘날 5세대 아이돌로 불리는 아티스트에 이르기까지의 계보, 상황별 추천 뮤직비디오 영상 843편도 실어 'K-팝 가이드' 역할을 부각했다.
학자로서, 또 K-팝 팬으로서 그의 다음 여정은 무엇일까. 그는 새로운 변화와 시도가 계속되길 바랐다.
"이게 최고 작품이다 싶으면 또 다른 작품이 나오더라고요. K-팝의 세계는 끝나지 않아요. 앞으로도 그럴 테니 계속 글을 쓰면서 따라가는 것도 괜찮겠네요?" (웃음)
712쪽.
책 표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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