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국영방송 《VTV》가 1월 4일 저녁 8시 10분(현지 시간)부터 한 시간 동안 새해 첫 스페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박항서 감독 이야기>를 방송했다. <박항서 감독 이야기>는 박 감독의 선수 시절부터 선수 은퇴 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 시절,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현재까지 그의 축구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다. 베트남 국영방송 《VTV》가 한국인에 대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기획·제작하고 방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부임 후, 베트남 축구 역사가 바뀌었고 베트남 정부가 2000년부터 야심 차게 추진해 온 ‘축구 프로젝트’를 그대로 실행에 옮겨 큰 성공을 거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다큐멘터리 ‘박항서 감독 이야기’ 예고편 – 출처 : VTV >
개통신원이 이전 기사에서도 몇 차례 언급했듯,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통한다. 히딩크 감독이 2002년 당시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4강 신화를 창조하였을 때에도 히딩크 감독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영웅이라 불렸다. 당시 서울시는 히딩크 감독에게 서울 명예 시민증을 수여하며 그의 공로에 대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박항서 감독은 히딩크 감독과 유사한 인물이다. 베트남 축구 역사를 새롭게 쓴 장본인이자, 베트남 축구의 오랜 염원을 실현한 국민적 영웅인 것이다. 박항서 감독의 인기는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창조한 거스 히딩크 감독의 인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박항서 감독의 인기로 베트남 내 한류 열풍은 더 거세졌다. 한류의 주역이 박항서 감독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한국 드라마, 한국영화 배우, K-Pop 아티스트들의 영향력도 대단하지만, 특정 연령층에서 인기가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박항서는 베트남 국민이라면 다양한 연령층을 아우르며 두루 사랑받고 있다. 베트남에서도 축구는 ‘국민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29일, 하노이에서는 자선 미술품 경매가 열렸다. 베트남의 유명 화가 트란 더 빈 (Tran The Vinh)은 박항서 감독의 초상화로 경매에 참여했다. 낙찰가는 2억 7,870만 동(한화 약 1,400만원)이었다. 해당 초상화는 이미 1년 전 2018년 자선 경매에서도 2억 4,360만동(한화 약 1,200만원)에 응우옌 쑤언끄엉(전 베트남 국영 TV 《VTV》 사장)이 구입했는데, 이번에 다시 자선 경매에 내놓은 것이다. 자선 경매에 박 감독의 초상화를 내놓으며 “박 감독의 초상화는 이미 공공자산이 됐다. 동남아시안게임(SEA Game) 결승전에서 60년 만에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이 그림을 경매에 내놓겠다는 결심을 했다”며 소감을 밝혔다. 그는 2018년 낙찰 금액 중 절반은 심장병 환자를 돕는 곳에, 나머지는 예술적 재능이 있는 젊은이들을 돕는 곳에 기부했다. 한편, 이번 경매에서는 박 감독의 초상화를 낙찰받은 사람은 바오닌 투자사의 응우옌 판 휘 코이(Nguyen Phan Huy Khoi) 회장이다. 코이 회장도 이번 낙찰 금액에 자신의 개인 돈을 더 보태어 5억동(한화 약 2,500만원)을 심장병 환자 지원 재단에 기부했다. 박항서 감독의 초상화는 매년 기부 선행을 이끌고 있다.
<2019년 말, 하노이에서 열린 자선 미술품 경매 현장>
《VTV》가 방영한 다큐멘터리는 박항서 감독의 현역선수 시절 이야기로 시작된다. 박 감독은 축구를 늦게 시작해 현역선수 시절은 매우 짧다. 1981년 제일은행 축구단에 프로선수로 첫 입단, 군대를 다녀온 후, 1984년 지금의 FC 서울 전신인 럭키금성 황소 축구단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다시 시작한다. 럭키금성 선수 시절에는 1985년 리그 우승을 하였고, 1986년 팀 주장을 맡아 리그 준우승까지 한다. 그러나 현역선수 시절 박 감독의 대한민국 국가대표 경기 출장은 1경기 밖에 없었다. 1981년 한일전에서 교체로 73분을 뛴 것이 전부라고 한다. 1989년 선수 은퇴 후 박항서 감독은 자신이 뛰었던 럭키금성에서 코치로 활동하면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4년에는 월드컵 대표팀 트레이너를 하였고,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수원 삼성 블루윙즈 코치를 맡았으며, 2000년 11월부터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활약해 2002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룩하는 데도 크게 공헌했다. 2002 한일 월드컵이 끝난 후, 대한민국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을 맡게됐지만 부진한 팀 성적의 책임을 지고 석 달 만에 경질됐다. 이후 경남 FC, 전남 드래곤즈, 창원 시청 등 여러 팀의 감독을 맡다가 2017년부터 베트남 국가대표팀과 U-23(23세 이하) 대표팀 감독을 지금까지 맡고 있다. 박항서 감독은 다큐멘터리의 인터뷰 장면에서 “처음 베트남 국가대표 감독 제의가 들어왔을 때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 당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은 외국 감독들의 무덤이었고, 평균 임기가 8개월이었다. 하지만 아내가 내게 해보라고 권유했고, 내 결정에 힘이 되어 주었다. 지도자로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베트남에 와서 최선을 다했다.”라 전했다. 또이어 박 감독은 “베트남에서 내 축구 인생을 마감할 계획이다. 그리고 앞으로 베트남에서 해 보고 싶은 일이 한 가지 있는데, 베트남 유소년 축구 선수들을 관리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라고 말해 베트남 축구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하였다.
< VTV 스페셜 다큐멘터리 ‘박항서 감독 이야기’ 방송 장면 >
《VTV》 다큐멘터리 <박항서 감독 이야기>를 시청하면서 ‘우여곡절’, ‘희로애락’, ‘인생역전’ 등 수많은 단어가 떠올랐다. 박항서 감독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고난과 좌절, 역경을 딛고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열정, 아버지처럼 선수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지도자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순히 국가대표팀 성적만으로 ‘박항서 매직과 신드롬’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박 감독의 인격과 성품, 열정, 실력은 신드롬 형성의 토대가 된 듯하다. 2020년 새해에도 박항서 감독의 한류 열기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베트남은 60년 만에 동남아시안게임 우승을 차지했다.>
성명 : 천석경[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베트남/호치민 통신원] 약력 : 호치민시토요한글학교 교사 전) 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