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필리핀 양국 간 인적 교류 규모는 200만 명에 이른다. 필리핀을 방문한 우리나라 국민이 더 많기는 하지만, 한국을 방문한 필리핀인도 2018년 기준 47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올해는 그 숫자가 급격히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 여행을 꿈꾸는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 19)이 필리핀과 한국 사이의 인적 교류를 막고 있다. 3월 22일, 필리핀 이민국(Bureau of Immigration)은 외국인에 대한 무비자 입국 혜택 및 비자면제협정을 중단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등 비자 면제 특권을 누리고 있는 나라 모두가 대상이다. 이민국에서 비자 발급을 중단한다는 것은 외국인의 입국을 전면 중단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필리핀인과 결혼한 경우나 외교관 비자를 가지고 있는 경우 등 특수한 경우만 입국이 가능할 뿐, 여행이나 취업 등의 이유로는 필리핀 입국이 불가능하다.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출국하기도 쉽지 않다. 3월 18일까지만 해도 출국까지 금지하겠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으나 각국의 강경한 반대에 외국인은 출국이 가능한 것으로 기준을 완화한 상황이다. 필리핀 정부에서는 자국민에 대해서도 엄격한 출입국 제재를 하고 있는데, 해외노동자(overseas Filipino worker)나 해외 거주 필리핀인에게만 출국을 허용하고 있다. 이 출입국 정책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무기한 적용될 예정이라, 한국인이 필리핀 여행을 하거나, 필리핀인이 한국 여행을 하는 일이 언제 다시 시작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국 여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해서 한류 문화에 대한 호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외출이 금지되어 집에서 머무는 동안 한국 드라마를 보고, <런 코리안 위드 BTS(Learn Korean with BTS)>를 통해 한국어를 공부하며, 한국의 라면을 먹는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 지역사회 봉쇄‧격리조치(community quarantine)가 시작된 지 7일째 되던 지난 3월 20일, 필리핀 무역산업부(DTI)에서는 기본 생필품에 대해 구매할 수 있는 수량을 제한했다. 그런데 이 규정을 보면 자국에서 생산된 라면에 대해서만 구매 수량이 제한되어 있어 한국 라면을 찾는 이는 오히려 더 늘어난 듯하다. 후식으로 달고나 커피를 만들어 먹는다는 사람도 많다. 최근 한국의 SNS에서 화제가 되었던 달고나 커피가 필리핀 사람들에게도 사랑받고 있다. 달고나 커피는 <신상 출시 편스토랑>이란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배우 정일우가 레시피 연구차 마카오에 방문하여 마신 커피에서 착안하여 소개한 음료이다. 설탕에 베이킹소다를 넣고 구워 만드는 달고나 사탕과 맛이 비슷하다고 하여 마카오 달고나 커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필리핀에서는 마닐라 봉쇄가 시작되면서부터 온라인 매체나 블로그, 유튜브 등 각종 매체를 통해 레시피가 회자되기 시작했다. 필리핀에서 달고나 커피가 유행하게 된 까닭은 간단하다. 일단 재료가 구하기 쉽다. 요즘 필리핀 루손섬 지역은 대중교통 운행이 모두 중지된 상태이다. 지역별로 통행증을 발급하고 있을 정도로 통행금지가 심하고 장보기도 1가구당 한 사람만 가능하도록 하고 있어서 식료품 구매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달고나 커피의 경우 인스턴트 커피와 설탕, 우유 정도만 있으면 만들 수 있어 누구나 쉽게 따라 해볼 수 있다. 음료 제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 의외의 장점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코로나 19의 확산을 막기 위한 자가 격리 조치 기간 중 집에 머물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색다른 활동이 된 것이다. 간단한 재료로 색다른 음료를 만들 수 있는데, 한국의 최신 유행을 따라가는 기분까지 느낄 수 있으니 달고나 커피를 직접 만들어보려는 필리핀 사람이 늘어났다. SNS에 음료를 만들어 봤다는 인증 글을 올리는 사람도 많은데, 휘핑 커피(Whipped Coffee)라고 소개하는 글도 있지만 대부분 달고나(Dalgona Coffee)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달고나 커피는 카푸치노와 비슷한 커피로 한국에서 크게 유행하는 음료'라고 소개하면서 달고나가 어떤 과자인지까지 세세하게 적어둔 콘텐츠도 많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한류 문화가 필리핀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로 기억되기를 기대해본다.
<비자 발급 중단에 대한 필리핀 정부의 안내문. 필리핀과 한국 사이 인적 교류 규모는 2018년을 기준으로 아래와 같다. (출처 : Philippine Information Agency 의 페이스북 (@pia.gov.ph)>
· 한국 → 필리핀 방문 : 1,587,959명( 필리핀 관광부) · 필리핀 → 한국 방문 : 471,532명 (대한민국 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정책본부) · 한국 내 필리핀인 : 60,139명 (법무부 '출입국자및체류외국인통계') · 필리핀 내 한국인(재외국민) : 85,103명 (외교부) · 필리핀 내 한국인 미등록체류자(불법체류자) : 약 10,000명 (추정치) · 한국 내 필리핀인 미등록체류자(불법체류자) : 13,020명 (법무부) / 약 15,000명(주 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추정치)
<한국의 코로나 19 관련 뉴스는 필리핀 사람들에게도 큰 관심거리이다. 언론에서 주목하는 것은 한국의 코로나 19 검사 수와 성공적인 방역 시스템이다. 휴양지로 유명한 보라카이의 칼리보공항(Kalibo International Airport)에서도 한국이 코로나 19를 잘 방어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 출처 : 칼리보공항 페이스북 (@KaliboInternationa)>
<배우 앤 커티스의 남편이자 여행 및 요리 분야의 유튜버로 유명한 에르완 휴세프(Erwan Heussaff)가 'Korean BBQ Feast at Home'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린 한국 요리 영상이 다른 어떤 영상보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에르완 휴세프는 유튜브에 208만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다. - 출처 :에르완 휴세프 유튜브 채널(@erwanheussaff)>
<필리핀에서는 한국 슈퍼에 가지 않아도 대형마트나 편의점 등에서 한국의 라면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농심 필리핀(Nongshim Philippines)에서는 쇼피(Shopee) 등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서도 라면을 판매하고 있다. - 출처 : 'Shopee' 웹사이트>
<코로나 19로 공연이나 TV 촬영 등의 활동이 모두 중단된 상황이지만, 이 와중에도 한국식의 트레이닝을 받아 탄생한 필리핀인 걸그룹 클로버(Clover)가 데뷔했다. 케이팝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두 번째 아이돌 그룹이다. 이 걸그룹은 한국 연예기획사인 쇼비티 필리핀(Show BT Philippines)에서 만든 필리핀인 아이돌 그룹 SB19가 성공하자 KP엔터테이먼트(KP Entertainment)에 만든 걸그룹으로 지난 3월 20일 금요일에 유튜브를 통해 첫 싱글앨범인 'Kumakabog Kabog'를 공개했다. - 출처 : 클로버 유튜브 채널 (@We are Clover)>
<레스토랑 소개 및 요리방법 안내 등 먹거리에 대한 글을 전문으로 하는 온라인 매체인 Yummy.ph 에 올라온 달코나 커피 관련 글 - 출처 : 'Yummy.ph' 웹사이트>
성명 : 앤 킴(Anne Kim)[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필리핀/마닐라 통신원] e-mail :manila2019@kofice.or.kr 약력 : 프리렌서 작가, 필리핀 정보제공 블로그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