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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탈 이야기, 뮤지컬 <탈이 빛나는 밤에>

2025-11-04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시드니에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다. 잔뜩 움츠려 있던 숲과 공원의 나뭇가지에 파란 새순이 돋고, 따사로운 햇살이 거리를 채우면서 도시는 한층 활기를 되찾았다. 공원과 해변에는 산책하며 거니는 사람들, 피크닉을 즐기는 가족들이 늘어났다. 이 같은 계절의 변화와 함께 시드니 한인 사회에도 문화의 새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다. 그 중심에는 창작예술 작품 활동으로 주목받는 단체, 이유 극단(EU Theatre & Productions, 감독 강해연)이 있다. 

2010년 설립된 이유 극단은 연극과 뮤지컬을 중심으로 호주 한인 사회에 공연 예술을 선보이는 단체다. 여러 해를 거듭하는 동안 이유 극단은 한국적 소재에 이민자들의 삶을 녹여낸 작품들을 무대 위에 올리며 관객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단순한 단체 공연을 넘어 지역 사회와 한국 이민 사회의 문화를 잇는 가교의 역할을 해 왔다. 지난해 선보인 창작 연극 <오 마이 블루스>는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희망과 위로를 찾아가는 스토리텔링으로 많은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그리고 2025년 이유 극단은 또 다른 도전을 통해 관객들과 만났다. 이번 무대는 창작 뮤지컬 <탈이 빛나는 밤에(NIGHT OF THE SHINING MASKS)>다.
뮤지컬 '탈이 빛나는 밤에' 홍보 포스터 \

< 뮤지컬 '탈이 빛나는 밤에' 홍보 포스터 - 출처: 이유 극단(EU Theatre & Productions) >

이번 작품은 한국 전통문화의 상징 중 하나인 탈을 중심 소재로 삼았다. 서양 관객들에게 탈은 흔히 가면무도회에서 얼굴을 가리기 위한 소품 정도로 인식된다. 그러나 한국에서 탈은 단순한 가림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정서를 드러내고 사회를 풍자하며 공동체적 웃음을 이끌어 내는 상징적 존재라 할 수 있다. <탈이 빛나는 밤에>는 작은 탈 공방을 배경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 소녀, 그녀를 지켜주는 탈 장인 어머니 그리고 두 명의 서툰 도둑이 얽히며 탈에 깃든 감정과 잊힌 기억을 깨워내는 내용이다. 인간 내면의 상처와 치유, 그리고 관계 속에서 다시 발견되는 삶의 의미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뮤지컬 <탈이 빛나는 밤에>는 지난 9월 26일부터 28일까지 시드니 채스우드 소재 더 콘코스(The Concourse) 더 라운지(The Lounge)에서 총 4회에 걸쳐 무대에 올랐다. 시작 전부터 공연장은 관객들의 설렘으로 가득했다. 우연히 작품 소개를 접하고 예매했다는 한 관객은 "한국의 전통 소재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무대가 궁금했다."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막이 오르고 무대가 펼쳐지자 관객들은 어느새 전통 탈이 전하는 감정의 흐름에 빨려 들어갔다.
뮤지컬 '탈이 빛 나는 밤에'의 한 장면

< 뮤지컬 '탈이 빛 나는 밤에'의 한 장면 - 출처: 통신원 촬영 >

특히 이번 작품은 탈의 상징성을 통해 한국 전통 서사의 정수를 떠올리게 했다. 심청가의 효와 희생, 춘향전의 사랑과 저항 같은 판소리 서사가 은근히 녹아 있어 단순히 한 가족의 이야기나 소품이란 소재의 벽을 넘어선 깊이를 선사했다. 소녀와 어머니의 관계는 심청가 속 심청과 아버지의 서사를 떠올리게 했고, 불의에 맞서는 인간의 의지는 춘향전의 기개를 연상시켰다. 이는 전통 서사의 정신이 현대 무대 속에서 새롭게 살아 숨 쉰 순간이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연출 강해연 감독, 음악감독 임형선, 안무가 안준영이 함께했고 배우들과 약 6개월의 준비 과정을 거쳐 완성됐다. 커뮤니티 극단이라는 특성상 배우 섭외와 연습 일정 조율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오히려 그 과정이 배우들의 집중력과 팀워크를 강화시켰다. 무대 위 배우들은 각자의 개성과 재능을 발휘하면서도 서로의 호흡을 맞추며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특히 음악과 안무, 연출이 조화를 이루며 관객들로 하여금 한국 전통과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새로운 무대를 경험하게 했다.
공연 후 무대 위에 오른 배우들

< 공연 후 무대 위에 오른 배우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무대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탈의 상징성과 전통 서사의 정수를 담아낸 서사, 그리고 배우들의 혼신의 연기가 더해져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남겼다. 공연장을 찾은 한 현지 관객은 "탈이 단순히 가면이 아니라 인간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는 장치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라고 말하며 공연의 여운을 전했다. 뮤지컬 <탈이 빛나는 밤에>는 시드니의 봄날처럼 따뜻하면서도 생명력이 넘쳤다. 한국적 정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현지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낸 이번 공연은 한인 사회를 넘어 호주 다문화 사회 속에서 한인 예술의 가치를 다시금 확인시켰다. 탈이 전해준 여운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관객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이유 극단의 이번 무대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문화와 서사가 세계와 만나는 특별한 순간이었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이유 극단(EU Theatre & Productions)

통신원 정보

성명 : 김민하[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호주/시드니 통신원]
약력 : CMRC(Community Migrant Resource Centre) 가족 서비스 프로젝트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