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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분석] 한국의 대중문화: 대안적 세계화의 성공적 모델

2025-11-17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를 비롯한 다양한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프랑스에서도 한국문화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는 기사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글은 특정 장르에만 초점을 맞추거나 상업성을 비난하는 성격이 강했다. 그 가운데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의 흥행으로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보며 한류를 분석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프랑스 문화부 소속 연구자 실비 옥토브르(Sylvie Octobre)와 파리 시테대학교 사회학 부교수 빈첸조 치켈리(Vincenzo Cicchelli)가 작성한 글은 주목할 만하다. 해당 기사는 프랑스 주요 대학 및 연구기관과 협력하고 학계 전문가들이 작성한 글을 전문 기자들이 편집해 제공하는 비영리 온라인 미디어인 《The Conversation France(더 콩베르사시옹 프랑스)》에 10월 13일 게재됐는데, 한류 전체를 문화 및 사회적 관점에서 폭넓게 분석했다. 

해당 기사 역시 한국 콘텐츠를 다루는 다른 글들과 마찬가지로 한류의 정의를 간단히 짚으며 시작했다. 케이팝, K-드라마, 영화, 게임, 패션, 뷰티 등으로 구성된 한국의 대중문화는 1990년대 중반부터 해외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한류의 성장 배경으로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확산을 꼽았다. 그러면서 한국적 특수성이 돋보이는 콘텐츠와 보편성이 강조된 콘텐츠의 사례로 <오징어 게임>과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제시했다. 

2021년 공개된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 190개국에서 2억 6,600만 명이 시청하며 한국 콘텐츠 열풍의 출발점이 됐고,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2025년 8월 공개 이후 2억 3,600만 명이 시청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영화의 주제곡 은 스포티파이에서 5억 회 이상의 스트리밍을 기록하며 한류의 영향력을 다시금 입증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두 작품의 성공이 단순한 흥행을 넘어 한류가 지닌 다양성과 다층성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오징어 게임>이 자본주의와 불평등을 비판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라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판타지와 음악, 여성 중심의 서사를 결합한 대중적, 오락적인 작품이다. 이처럼 한류는 단일한 장르나 메시지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주제와 형식을 포괄하는 열린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기사는 한류의 세계적 인기를 지리적 인접성(proximité)이나 문화적 이국성(exotisme)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프랑스로 예를 들면 프랑스는 한국과 지리적으로 멀고, 역사적 연관성도 거의 없으며, 프랑스 내 한인의 비율도 소수에 불과하다. 또한 유교 문화적 배경을 지닌 한국은 프랑스와 문화적으로도 접점이 적기 때문에 한류의 성공을 '지리적, 문화적 가까움'으로 설명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국성'으로도 한류의 인기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한국은 단순히 낯설거나 신비한 나라로 인식되기보다는 경제, 교육, 기술 등 여러 측면에서 오히려 현대적이고 세련된 국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또한 한류 콘텐츠는 이국적인 색채보다는 보편적 감수성과 현대적 매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관객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한류의 세계적 인기를 이끄는 요인은 무엇일까?
한국의 대중문화: 세계적으로 성공한 이유들-케이팝데몬헌터스 장면

< "한국의 대중문화: 세계적으로 성공한 이유들" - 출처: 'The Conversation France'>

독특한 현대성, 한류의 세계적 인기요인
두 연구자는 그 답을 '차이의 소비(la consommation de la différence) 즉, 다름을 적극적으로 즐기고 소비하려는 문화적 욕망으로 보았다.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다른 것'을 경험하고자 하는 취향이 현대 소비문화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았으며, 한류는 바로 이러한 욕망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 콘텐츠가 보여주는 독특한 현대성의 방식 역시 주목할 만하다."고 언급한다.  

한류의 현대성은 단순히 인종, 언어, 풍경 등 외형적인 차이에 그치지 않고 비판적이지만 희망적인 세계관,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를 모색하는 서사 속에서 드러난다고 분석한 것이다. 서구 콘텐츠가 개인과 사회의 대립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면, 한국 콘텐츠는 그 긴장을 조화롭게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점이 한류가 가진 차이라고 보았다. 그 예시로는 사극을 들고 있다. 사극은 역사적 배경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나 노동 계급의 역할 등 현대적 주제도 함께 다루고 있다. 이처럼 한국 콘텐츠는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한편으로 한국 대중문화가 서구의 냉소적 관점이나 중국과 일본의 국가 중심적 관점과는 다른 비판적이면서도 인간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 같은 점이 세계인들이 한류를 소비할 때 느끼는 가장 큰 매력, 한국문화만의 차별화된 힘이라고 강조한다. 

'스위트파워', 한류가 가져온 문화 다양성
기사는 한류를 단순한 '소프트파워(soft power)'가 아닌 '스위트파워(sweet power)'의 사례로 분류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며 한류가 다른 문화적 유행과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다. 기존의 많은 기사들과 분석들은 한류를 '소프트파워'의 대표적 예로 제시해 왔지만 해당 기사는 "특히 미국문화의 흐름과 비교했을 때 한류가 근본적으로 다른 양상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한류 이전 전 세계에 가장 인기 있었던 대중문화는 바로 미국의 것이다. 그러나 미국 대중문화의 확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막강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글로벌 브랜드의 진출과 함께 일방적인 문화 전파로 이루어졌다. 반면 한국은 군사 강국임에도 군사력의 뒷받침 없이 순수한 문화적 매력만으로 세계적 영향력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고 보았다. 또한 일본의 일부 문화 콘텐츠가 제국주의적, 식민주의적 기억을 자극한다면 과거 침략과 지배 대상이었던 한국의 콘텐츠는 그러한 역사적 상처를 재현하거나 도구화하지 않는다는 점도 대조적으로 제시한다. K-콘텐츠는 오히려 과거의 아픈 기억을 넘어선 현대적 감수성과 다양성을 통해 세계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은 한류를 지정학적 영향력 확보나 경제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외교적 도구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차별화된다고 언급한다. 한류의 성공 이후 중국에서는 한한령이, 미국과 일본에서도 각종 반(反)한류 움직임이 일어났음에도 한국은 이를 정치적 우위나 외교적 수단으로 활용하려 하지 않았다. 이러한 비도구적이고 자율적인 문화 확산 방식이야말로 한류를 전통적 '소프트파워'가 아닌 '스위트파워'로 분류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한다. 

한류의 보편성, 독일까 약일까?
그러나 한류의 세계적 확산은 한국문화가 보편성에 희석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글로벌 자본과 산업과 협업이 활발해질수록 전 세계가 좋아할 수 있도록 보편성과 상업성이 강조되고, 그 결과 한류가 가지고 있던 문화적 정체성이 옅어질 가능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미 한류 콘텐츠, 특히 음악과 영상 콘텐츠에서 이러한 변화가 보이고 있다. 한류의 'K-'가 세계 시장의 보편적 취향 속에 들어가면서 점차 한국적 맥락이나 정서와 같은 특수성이 사라지고 단순히 브랜드로만 소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기사는 한류를 기존의 서구 중심적이고 일방적인 문화 세계화와 구별되는 현상으로 보았다. 각 지역이 모자이크처럼 고유한 문화를 내세우는 다원적, 다극적 세계화로 세계화의 양상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한류를 대안적 세계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했다.  

이제 한류는 성공적인 세계화를 넘어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다시 정의해야 하는 전환점에 서있다. 한류 콘텐츠 제작자 및 산업 관계자들도 단순히 상업성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한국적 정체성을 유지할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한류가 앞으로도 지속적인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계적 보편성과 한국적 특수성을 어떻게 균형 있게 결합할지가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사진 출처 및 참고자료    
- 《The Conversation France》 (2025. 10. 13). Pop culture sud-coréenne : les raisons d'un succès mondial, https://theconversation.com/pop-culture-sud-coreenne-les-raisons-dun-succes-mondial-265774

통신원 정보

성명 : 김명선[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프랑스/파리 통신원]
약력 :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아시아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