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은 19세기 후반까지 세계 4위의 커피 수출국이었으나, 1890년대 커피 녹병(Coffee Rust) 대규모 감염으로 인해 산업이 급락하면서 120년이 넘게 그 위상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필리핀 정부가 커피 산업 로드맵을 수립하여 부활을 추진 중이지만, 농가 인구 감소와 기후 변화 등으로 생산량은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커피 생산량은 국내 소비를 충당하기에 여전히 부족하지만, 필리핀 내 커피 소비는 계속해서 성장 중에 있다. 필리핀 커피 수요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관련하여 「미국 농무부(USDA)」 보고서를 보면 2025-2026 마케팅 연도(2025년 7월 ~ 2026년 6월) 기준으로 필리핀 커피 수입량은 378,000톤(MT)으로 전년 344,400톤(MT) 대비 9.76%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커피 시장은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필리핀 내 소비는 연평균 6.82% 증가했으며, 2025년 전체 커피 시장 규모는 약 7.49억 달러로, 2015년 대비 연평균 13.74%라는 고속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필리핀 국내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으며, 특히 인스턴트 커피 소비가 지배적이다. 이제 필리핀에서 카페는 단순 음료 소비처를 넘어 사회적 공간으로 진화했으며, 도시 중산층과 밀레니얼, 제트(Z)세대를 중심으로 카페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다양한 해외 커피 브랜드가 필리핀에 진출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특히 소비량이 가파르게 늘면서 필리핀은 유럽연합(EU),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의 커피 수입국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 필리핀 카페 시장에서 절대 강자는 스타벅스다. 1997년 마닐라 진출 이후 2025년 기준 400개를 넘는 매장을 보유한 스타벅스는 브랜드 인지도, 입지, 상품 구성, 회원 혜택 등 모든 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위는 필리핀 졸리비 그룹이 인수한 커피빈(Coffee Bean & Tea Leaf)이 자리하고 있으며, 맥도널드 맥카페(McCafé)도 패스트푸드와 결합된 형태로 상당한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 필리핀에서 시작된 브랜드 중에서는 1996년 창업한 보스 커피(Bo's Coffee)가 ‘필리핀 원두’ 사용을 내세우면서 약 140개 지점을 운영 중에 있다.


< (좌)픽업 커피 외부, (우)픽업 커피 내부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러한 시장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업체들도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2012년 필리핀에 진출한 하이랜드 커피(Highlands Coffee)는 현재 5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 중에 있다. 졸리비는 하이랜드 커피 지분 60%를 인수한 후 필리핀 내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말레이시아 주스 커피(ZUS Coffee)는 2025년 상반기까지 120개가 넘는 매장 문을 열어 스타벅스에 도전하고 있다. 주스 커피는 필리핀을 말레이시아 외 가장 중요한 전략 시장으로 보고 있으며, 향후 수년 내에 필리핀 내 매장 수를 500개 이상으로 확대할 전망이다. 필리핀 브랜드 역시 이러한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특히 픽업 커피(PickUp Coffee) 출현은 필리핀 커피 시장에 지각변동을 초래했다. 픽업 커피는 2022년 창업 이후 불과 3년 만인 2025년 8월 기준 420개 이상 매장을 확보했으며, 50만명이 넘는 앱 사용자를 두고 있다. 픽업 커피는 50페소라는 저가 정책으로 스타벅스(165페소) 대비 1/3도 되지 않는 가격에 아메리카노를 판매하고 있다. 픽업 커피는 ‘단순히 저가가 아니라 모두가 언제 어디서나 빠르고 맛있게(UPlift everyone with fast, delicious, and surprisingly affordable beverages, everywhere)’ 커피를 즐길 수 있다는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또한 픽업 커피는 2024년 기준 전체 매출 가운데 앱 기반 주문이 60%를 차지할 정도로 차세대 주력 소비자인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스페인식 라떼인 ‘카페 카스틸라(Kape Kastila)’와 흑설탕 라떼인 ‘카페 메스티조(Kape Mestizo)’와 같이 필리핀 역사·언어·문화를 직접 반영한 음료로 필리핀 소비자들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여기에 더해 세부에 문을 연 프리미엄 매장 픽업 프라임(PickUp Prime)에서는 현대 건축과 필리핀 예술을 결합하며, 망고 코코 밀크, 우베 코코 밀크 같은 지역화된 프리미엄 음료를 선보이고 있다. 필리핀 커피 시장은 수입 의존도가 높고 한참 성장 중에 있는 시장이고, 동시에 한류 소비가 활발한 국가라는 점에서 한국 카페 프랜차이즈에게 매우 매력적인 무대가 되고 있다. 한국 카페 브랜드들은 아직 전체 시장에서 미미한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한류 인기 및 현지화 전략을 통해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는 단계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카페 프랜차이즈는 후발 주자이지만, 차별화된 콘셉트와 한류 이미지, 합리적 가격대를 앞세워 ‘틈새 + 성장’ 영역을 공략하고 있다. 필리핀에 가장 먼저 선을 보인 한국 커피 프랜차이즈는 2011년에 진출한 할리스 커피다. 할리스 커피에 이어 2012년 카페베네도 필리핀에 진출했다. 2015년 진출한 탐앤탐스는 약 15개 지점을 운영하며 필리핀에서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는 한국 카페 프랜차이즈로 평가된다.


< (좌)1000cc 커피 매장 외부, (우)1000cc 커피에서 판매 중인 음료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러한 여러 한국 브랜드 중에서 특히 주목할 업체는 1000cc 커피다. 한국 저가형 대용량 커피 브랜드인 1000cc는 2024년 8월 필리핀 법인을 설립한 후 2025년 초부터 본격 진출했다. 2026년 1월 말 기준으로 필리핀 수도권 및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앙헬레스 등에서 15개 매장을 운영 중에 있으며, 향후 지점을 100곳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이다. 1000cc 커피는 ‘양이 많은 맛있는 커피를 저렴하게 제공한다(Big Size, Nice Price, and Good Taste!)’는 문구를 앞세워서 필리핀 시장을 공략 중에 있다. 여기에 필리핀 소비자를 위해 무제한 밥과 국물 그리고 계란 등이 포함된 식사류를 제공하고 있어 커피와 식사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1000cc 커피와 픽업 커피는 가성비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유사해 보이나 이들이 내세운 전략은 사뭇 다르다. 픽업 커피가 ‘초저가’와 ‘디지털 편의성’을 무기로 출퇴근길 직장인과 학생층을 노린다면, 1000cc 커피는 ‘대용량 커피와 저렴한 식사’를 통해 카페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중산층과 가족 단위 고객 소비를 노리고 있다. 픽업 커피와 비교할 때 1000cc 커피는 인지도가 낮고, 사업 확장 속도도 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필리핀 한류 열풍은 한국 카페 브랜드들에게 강력한 후광 효과를 제공하며, 이는 기존 현지 브랜드나 글로벌 체인이 갖지 못한 독보적인 마케팅 자산이 되고 있다. 드라마 속에서 보던 세련된 인테리어 및 1000cc 커피와 같이 ‘대용량 커피와 저렴한 식사’를 결합한 실용성은 필리핀 젊은 세대에게 거부감 없이 스며들고 있다. 하지만 강력한 한류 이미지도 결국 탄탄한 현지화 전략과 결합될 때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 픽업 커피와 같은 현지 강자들이 초저가와 디지털 편의성을 무기로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브랜드들은 단순한 ‘한국산’임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필리핀인 입맛과 지불 능력을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이라는 경쟁력에 현지 문화적 색채를 입히고, 한류 콘텐츠와 유기적인 연결을 강화한다면 필리핀 커피 시장에서 한국 카페 프랜차이즈가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Lifestyle Asia》 (2025. 4. 10). A Shot of Disruption: An Interview with the Minds Behind PICKUP COFFEE, https://lifestyleasia-onemega.com/people/a-shot-of-disruption-an-interview-with-the-minds-behind-pickup-coffee/ - 《Bloomberg》 (2025. 4. 24). ZUS Coffee to Add 200 Southeast Asia Stores in Starbucks Duel, 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25-04-23/zus-coffee-to-add-200-southeast-asia-stores-in-starbucks-duel?embedded-checkout=true - 《Philstar》 (2025. 6. 27). Philippine coffee market sees surge in homegrown innovation, https://www.philstar.com/the-freeman/cebu-business/2025/06/27/2453710/philippine-coffee-market-sees-surge-homegrown-innovation - 픽업커피 홈페이지, https://pickup-coffee.com/about-us/ - 1000cc 커피 페이스북(@deoksupalace), https://www.facebook.com/deoksupal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