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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여름과 페기 구(Peggy Gou)

2025-09-04

주요내용

  
중동 국가에서는 더운 여름을 피하는 휴가 기간이 길다. 이집트 상류층은 더위가 시작되면 몇 달 동안 생활의 기반을 북부 지중해 연안의 노스 코스트(North Coast)로 옮기기도 한다. 노스 코스트에 여름 별장으로 옮기는 사람들의 필요에 맞춰 병원, 상점, 레스토랑 등도 여름 임시 오픈을 한다. 몇 해 전부터 노스 코스트는 단순한 휴양지를 넘어 상류층의 사교 네트워크와 마케팅, 문화 소비가 집중되는 무대로 자리 잡았다. 여름 내내 머무는 이들은 별장에서 케이터링 서비스를 즐기고 하우스 파티와 비치 파티 같은 사적 모임을 이어간다. 신생 브랜드나 라이프스타일, 식음료 기업은 이 환경을 전략적 기회로 삼아 럭셔리 이벤트를 열며 마케팅을 벌인다.

주말이 되면 이곳에서는 큰 규모의 페스티벌이나 콘서트 등이 열리는데 이들이 향유하는 여름 콘서트는 일반 대중 행사와는 다른 결을 지니고 있다. 현지 가수뿐만 아니라 해외 아티스트도 초청되며 티켓 가격은 현지 물가 대비 상당히 높은 편이다. 또한 몇 해 전 한 콘서트에서 '히잡 착용자는 입장 불가'라는 규정이 논란이 있었던 바와 같이 무슬림이 주류인 대중문화와는 다른 양상을 띠기도 한다. 그래서 노스 코스트는 마치 이집트 내의 또 다른 국가 같은 모습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소비 및 서비스 수준이 높은 것과, 대부분의 현지 여성들이 비치에서 자유롭게 비키니를 착용하고 있는 것이 또 다른 예다. 마치 유럽의 국가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지난 8월 7일 베를린 기반의 한국인 DJ이자 프로듀서 페기 구(Peggy Gou)가 노스 코스트 디-베이(D-bay)에서 열린 무대에 올랐다. 그는 이미 네 차례 이집트에서 공연한 바 있으며 마지막 공연은 2년 전 홍해의 휴양지 엘 구나에서 열렸다. 이번 공연이 지중해 노스 코스트에서 진행된 것은 이집트 상류층 여름 트렌드의 변화를 반영한다. 팬들의 기대는 컸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점은 이집트 케이팝 팬들 사이에서 가장 인지도 있는 BTS를 잘 모르는 이집트 상류층도 페기 구에 대해서는 거의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유럽과 미국 문화에 익숙한 이들에게 케이팝이라는 특정 장르보다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가 더 친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디제잉이라는 장르는 이집트에서 매우 친근하다. 크고 작은 행사마다 DJ가 빠지지 않고, 심지어 어린이 생일파티에도 DJ가 초대되며 결혼식에서는 필수 요소다. 이집트 대중은 이미 테크노사운드에 익숙하고 그 음악에 맞춰 축제의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 매우 익숙하다. 이런 문화적 토양 위에서 하우스·테크노사운드에 글로벌 감각을 더한 페기 구의 무대는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 현장은 틱톡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되기도 했다.
페기 구 공연 홍보 포스터

< 페기 구 공연 홍보 포스터 - 출처: 인스타그램 계정(@amaken.misr) >

이번 공연을 통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문화적 분석 포인트를 제시한다. 첫째, 이집트 상류층의 글로벌 음악 소비 패턴이다. 상류층 사이에서 케이팝은 여전히 대중적 인지도가 낮지만 유럽 클럽 씬에서 활동하며 패션과 라이프스타일까지 아우르는 페기 구는 상류층 문화 코드와 쉽게 맞닿는다. 그의 음악은 언더그라운드 감성을 유지하면서도 브랜드 마케팅에 적합한 세련된 이미지를 갖춰 현지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시장에서 높은 수용도를 보인다.

둘째, 노스 코스트 이벤트산업의 구조다.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브랜드 후원, 부동산 개발사, 라이프스타일 기획사가 협력 구조를 이루며 '콘텐츠-공간-소비'를 하나로 묶는다. 이번 공연 역시 부동산 기업이 공간을 제공하고, 통신사가 후원을 맡았으며, 전문 이벤트 기획사가 실행을 담당했다. 이는 공연 자체뿐만 아니라 부가적 소비와 이미지 구축에 더 큰 경제적 가치를 두는 방식이다. 실제로 중동에서는 사막 부지나 해안 연안 신규 개발 지역의 주거 단지 오픈 전에 유명 아티스트의 공연을 개최해 상류층을 끌어모으는 전략이 마케팅에서 자주 활용되고 있다. 

셋째, 문화 교류의 잠재력이다. 이번 사례는 한국인 아티스트가 이집트 상류층이 선호하는 글로벌 음악 무대의 중심에 섰다는 점에서 한국 대중문화 교류의 새로운 경로를 보여준다. 케이팝 확산과는 다른 방식, 즉 '글로벌 EDM과 패션 아이콘'이라는 매개를 통해 한국 아티스트가 현지 문화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중동에서 한국문화의 인지도를 확장하고 협업 기회를 넓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이번 공연은 이집트 상류층의 소비 패턴과 글로벌 음악 트렌드, 그리고 한국 아티스트의 문화적 입지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이는 문화교류가 특정 장르나 아이콘의 확장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층위의 다각적 접근을 통해 더욱더 풍성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사진출처    
- 인스타그램 계정(@amaken.misr), https://www.instagram.com/amaken.misr/

통신원 정보

성명 : 손은옥[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이집트/카이로 통신원]
약력 : ANE(Artist Network of Egypt) 대표, 한국문화공간 The NAMU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