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인권 영화제에 비친 한국의 자화상, <애국소녀>
2025-12-16주요내용
제22회 베르지오 영화제 '한국 포커스' 신설… 사적인 일기장으로 풀어낸 공적인 역사 올해로 22회를 맞은 헝가리 베르지오 국제 인권 다큐멘터리 영화제(Verzió International Human Rights Documentary Film Festival)가 주 헝가리 한국 문화원(원장 유혜령)의 후원으로 올해 처음 '한국 포커스(KoreanFocus)' 섹션을 신설하며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집중 조명했다. 이는 한국 콘텐츠의 영향력이 상업 영화와 드라마를 넘어, 이제는 유럽의 권위 있는 인권 영화제에서도 주목할 만큼 중요한 사회적, 예술적 담론을 형성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 중심에 선 장편 다큐멘터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졸업 작품인 남아름 감독의 <애국소녀(K-Family Affair)>는 가장 사적인 가족사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가장 공적인 질문을 던지며 현지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나의 아버지'와 '국가의 아버지' 사이, 불안한 소녀의 목소리 <애국소녀(K-Family Affair)>는 감독 자신의 가족사를 다루는 매우 사적인 영역에서 시작한다. 영화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열정으로 만난 386세대 부모님의 연애 시절부터, 성차별 속에서 경력이 단절된 페미니스트 활동가 어머니와 고위 공무원으로 승승장구하는 아버지의 삶을 어린 딸의 시선으로 따라간다. 영화의 전환점은 세월호 참사 직후, 뒷수습을 위해 해양 수산부로 파견된 아버지를 보며 감독이 느낀 균열이다. 국가 시스템의 부재가 낳은 비극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함에 분노하며, 그녀가 믿어왔던 아버지의 세계는 송두리째 흔들린다. 이때부터 영화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그는 여전히 존경하는 '나의 아버지'인가, 아니면 시민으로서 비판해야 할 '국가의 실패'를 상징하는 인물인가? 영화는 감독 자신의 목소리로 진행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내레이션을 주요 형식으로 차용한다. 하지만 이 목소리는 역설적으로 사건의 전말과 미래를 모두 아는 신적인 권위를 탈피한다. 오히려 불안하고 미성숙하게 떨리는 감독의 목소리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의 취약함에 깊이 공감하게 하고 복잡한 한국의 정치사를 마치 자신의 일처럼 감정적으로 따라가게만드는 효과적인 영화적 장치로 기능한다. 현지 관객과의 대화, 그리고 '광장'의 의미 영화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는 헝가리 관객들이 한국 사회를 얼마나 깊이 있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묘사된 한국 사회의 성차별은 여전한가?","영화에 등장하는 한국의 집회(protesting) 문화는 매우 적극적이면서도 평화로워 보인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 한국 사회의 구체적인 현안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졌다. 한 관객은 "주인공인 감독이 집안(가족 관계)에서는 수동적인 주체로 보이지만, 학교나 집회 현장(사회)에서는 능동적인 주체로 보인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영화의 핵심 주제인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정확히 짚어내기도 했다. 감독은 이러한 질문들에 진솔하게 답하며, 영화가 담고 있는 한국의 복잡한 사회상을 현지 관객들과 함께 풀어나갔다.

< 애국소녀(K-Family Affair) 상영 후, 남아름 감독이 현지 관객들의 질문에 답하며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헝가리 관객들에게 더욱 미묘하고 복잡한 울림을 주었다. 1956년 혁명과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진 공산 정권, 그리고 1989년 체제 전환이라는 격동의 현대사를 거쳐온 헝가리 역시 부모 세대가 겪었던 역사적 트라우마와 그들이 만든 국가 시스템의 유산이 현재 젊은 세대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386세대 아버지를 바라보는 감독의 복잡한 시선은, 이곳 헝가리의 젊은 관객들에게 자신들의 부모 세대와 그들이 겪어온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다만 인권 영화제라는 특수한 맥락을 고려할 때, 영화의 시선이 감독 개인의 서사와 상처에 깊이 몰두하면서 '세월호 참사'가 제기하는 국가 시스템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더 넓은 인권 문제의 본질이 희석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이 비극을 통해 어떤 구체적인 인권 문제를 논의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목소리가 감독의 섬세한 개인사 뒤에서 힘을 잃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용감한 첫 목소리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로 나아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통신원 정보
성명 : 유희정[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헝가리/부다페스트 통신원] 약력 : 『한국 영화 속 주변부 여성과 미시 권력』 저자
- 해당장르 :
- 영화
- 해당국가 :
- Hunga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