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한인 2세 신해섭 감독이 선보이는 영화 반달
2026-03-17주요내용
스위스에서 제작되는 영화들은 규모 면에서는 크지 않지만, 독특한 작품 세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스위스 영화는 상업성을 앞세우기보다는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를 중심으로 제작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거나, 자연을 배경으로 한 조용하면서도 철학적인 분위기를 담아낸 작품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대형 상업 영화 중심의 글로벌 영화 산업과 차별화되는 지점으로 평가되며, 스위스 영화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 입양인의 내용을 담은 신해섭 감독의 영화 '반달'- 출처: 신해섭 감독 >
지난 2022년 우연한 계기로 통신원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활동하는 한인 2세 감독 신해섭 씨를 만나 인터뷰할 기회를 가졌다. 신 감독은 2017년 취리히 종합예술대학 재학 시절 블랙코미디 형식의 10분짜리 단편 영화 ‘요리’를 제작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해당 작품은 2018년 <졸로툰 영화제(Solothurner Filmtage)>와 <주쿠 영화제(Zuger Filmtage)>에 상영되며 개성 있는 연출 스타일을 선보였고, 스위스의 젊은 신예 감독으로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의 작품에는 한국과 스위스 두 문화를 함께 지닌 감독의 정체성과 배경이 자연스럽게 반영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신 감독은 18분 분량의 단편 영화 ‘안나동무’를 제작해 평창국제평화영화제(2021)와 디아스포라 영화제에 초청되며 활동을 이어갔다. 이어 2021년에 발표한 ‘잊혀진 익숙함’은 2022년 부산국제단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올해 1월 말 열린 제61회 졸로툰 영화제에서는 신작 단편 영화 ‘반달(Ban Dal)’이 초청돼 첫 상영을 가졌다. 22분 분량의 이 작품은 스위스로 입양된 입양인이 양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찾아 친어머니를 만나며 겪는 감정을 그린 영화다. 작품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 속에서 서로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쉽게 가까워지지 못하는 미묘한 감정과 아쉬움을 조용하면서도 애잔한 분위기로 풀어낸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감독은 직접 입양인 역할을 맡아 연기하며 이야기의 현실감을 더했다. 또한 ‘반달’은 스위스 독일어권 공영방송(Schweizer Radio und Fernsehen)의 제작 지원을 받아 완성됐다.

<영화의 한 장면, 입양인은 신해섭 감독, 양어머니역의 랄레 야배스 배우, 친어머니 역의 신은정 배우와 극중 통역사역을 맡은 안미나 배우- 출처: 신해섭 감독 >
다음은 통신원이 신 감독과 영화 <반달>에 관해 전화 인터뷰 한 내용이다. 1. 영화 <반달>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신 감독은 이번 작품의 출발점에 대해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취리히 예술대학 학사 졸업 당시 스위스 방송에서 북한에서 스위스로 입양된 여섯 살 아이가 스위스를 방문한 친모와 재회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며 “그 장면에서 아이의 심리보다 두 어머니가 느끼는 감정이 더 궁금해졌고, 그 순간이 머릿속에 깊이 남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후 석사 졸업 작품 아이디어를 찾던 중 해당 장면이 다시 떠올랐고, 이를 계기로 이번 작품의 초고가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해외입양이라는 소재의 민감성을 고려해 충분한 사전 조사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신 감독은 “해외입양은 매우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주제이기 때문에 스위스와 독일 등지에 거주하는 입양인들과 입양 단체 전 직원, 양부모들을 인터뷰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접했다”며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작품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영화를 제작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2. 영화 제목을 <반달>로 선정한 이유? 그는 “‘반달’이라는 제목은 동요 ‘반달’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가사와 그 정서가 작품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느껴 제목으로 선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 제작 과정에서 ‘반달’이라는 이미지가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지닌 상징으로 확장됐다고 밝혔다. 신 감독은 “반달을 단순히 두 어머니를 흑백논리로 나누는 상징으로 볼 수도 있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극 중 입양된 아들 조엘의 내면을 반달의 이미지에 빗대어 해석했다. “조엘의 마음은 마치 반달처럼 한편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로 살아왔을 것”이라며 “양모 아네트가 많은 사랑을 주었더라도, 친모에게 버려졌다는 감정은 깊은 상처로 남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점에서 반달은 받지 못했거나, 혹은 받을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았던 모성애를 상징한다고 느꼈다”고 덧붙였다. 또한 친모 민정의 감정 역시 작품의 중요한 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재회한 상황에서 눈앞의 청년은 낯설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결국 반달은 영화 속 인물들이 각자 품고 있는 결핍과 갈망을 담아내는 이미지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3. 영화를 준비하시면서 입양인 관련 조사를 꽤 하셨을듯 싶은데, 그 이야기를 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신 감독은 작품 제작 과정에서 다양한 입양인들과의 인터뷰가 영화의 중요한 토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러 입양동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정말 다양한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며 “친가족과 재회에 성공한 분들도 있었고, 아직 용기를 내지 못한 분들, 끝내 재회하지 못한 분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친부모와 양부모에 대해 느끼는 감정 역시 사람마다 매우 달랐다”고 덧붙였다. 또한 입양인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신 감독은 “많은 입양인들이 비교적 늦은 시기에 자신의 뿌리를 찾기 시작한다”며 “오랜 시간 입양된 나라의 사회와 문화 속에서 살아오며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적응해 왔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다시 받아들이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고, 그 과정 또한 길고 복잡한 여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친가족을 찾는 과정에서의 현실적인 어려움도 언급했다. 그는 “입양 관련 서류의 정보가 부정확하거나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친가족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과거 입양 시스템에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었고, 한때 입양이 하나의 ‘사업’처럼 운영되던 시기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직접 인터뷰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 감독은 “이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작품 속 인물인 조엘이라는 청년을 통해 입양인들이 겪는 감정과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담아내고자 했다”며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4. 스위스와 한국의 양부모들의 입장은 좀 다른 듯 합니다. 스위스 양부모들은 입양아들이 친부모 찾기에 지지와 관심을 보이는 듯 한데 감독님은 어떻게 느끼셨나요? 신 감독은 입양 과정에서 양부모가 경험하는 복합적인 감정 역시 작품의 중요한 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다수의 스위스 양부모들도 입양 자녀가 자신의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강한 불안감과 상실감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라며 “심리적으로는 최선을 다해 키운 자녀가 결국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친부모 찾기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가정에서는 ‘한국’이라는 단어 자체를 거의 언급하지 않거나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모든 양부모가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니며, 한국 입양인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녀의 뿌리를 존중하려는 양부모들도 분명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은 작품 속 양어머니 아네트의 캐릭터를 통해 표현됐다. 신 감독은 “아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아네트가 불안을 감추기 위해 과하게 밝게 행동하거나 농담을 던지는 모습은 양부모가 느끼는 심리적 불안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설정”이라고 설명했다. 5. 이번 영화제에서 감독과 관객들의 만남의 시간을 가지셨는데 스위스 인들의 시각도 궁금합니다. 신 감독은 스위스 사회 내 해외입양에 대한 인식 변화도 최근 중요한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 스위스인들은 일반적으로 자국의 해외입양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최근 몇 년 사이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에는 스위스 정부 차원에서 해외입양 제도를 전면 금지하려는 시도도 있었다”며 “이는 과거 입양 과정에서 발생했던 여러 문제들을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면 금지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현재 입양 절차와 규정은 더욱 엄격해지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제가 만난 입양인들 역시 대부분 해외입양 제도를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방향에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고 전했다.

< 2022년 영화 '잊혀진 익숙함'부터 함께 해 온 스태프들과 신해섭 감독- 출처: 신해섭 감독>
6. 이번 영화에서 입양인 조엘의 역할을 감독님이 직접 하셨는데 어떠셨나요 ? 그는 “스위스 독일어와 한국어를 모두 유창하게 구사하면서 외형적으로도 역할에 적합한 배우를 찾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며 “결국 제가 직접 연기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에서 작가와 감독, 배우, 통역까지 1인 4역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연출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이번 작품 역시 전작 ‘잊혀진 익숙함’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촬영이 진행됐다. 신 감독은 “이전에 함께 작업했던 촬영감독과 PD, 카메라·조명팀, 색보정 기사까지 모두 참여해 바쁜 일정 속에서도 호흡이 잘 맞았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아네트 역을 맡은 랄레 야바스 배우와 한국 어머니 역의 신은정 배우, 그리고 통역사 역할을 맡은 안미나 배우 모두가 촬영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끈끈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덧붙였다. 7. 입양 동포들도 영화를 보셨나요 ? 그 분들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신 감독은 작품 완성 과정에서 입양동포 사회의 도움이 컸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화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많은 입양동포들의 도움을 받았다”며 “프랑스 한글학교에서 첫 상영을 진행했고,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대형 행사에서도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작업 과정에서 존중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당사자들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긴장을 많이 했다”며 “다행히 많은 공감과 격려를 보내주고 제 진심을 이해해 주셔서 감사했다”고 전했다. 코펜하겐 상영 이후에는 여러 입양 단체로부터 초청을 받으며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신 감독은 “이 인연을 통해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등지의 행사에도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며 “영화제를 통해 다양한 관객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도 가능한 한 많은 입양동포들에게 작품을 보여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신 감독은 끝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무엇보다 ‘이야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천 년 전부터 스토리텔링은 존재해 왔고 이야기는 인간과 늘 함께해 왔습니다. 스위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인 2세로서, 영화라는 예술을 통해 제 정체성을 계속 탐색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유럽의 문화와 사회를 동시에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 제게 큰 자산이며, 두 문화를 충돌시키거나 연대하게 만드는 것이 제 작업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신감독은 영화 <반달>이 오는 5월 개최되는 제 2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라며 한국 관객들의 반응도 많이 기다려진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신해섭 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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