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문화의 전파자로 나서는 외국인이 등장하고 있다. 비행기를 타고 아시아를 누비며 한국 음식에 빠진 전직 에미레이트 항공 승무원이 두바이에 한국식 카페를 열어 현지에서 가장 사랑받는 카페 중 하나로 키워낸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 5월 22일 아랍에미리트 대표 일간지 《Gulf News(걸프뉴스)》는 "하늘에서 주방으로: 전직 승무원이 두바이에서 가장 사랑받는 한국식 카페를 만들기까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식 카페 '가토(Gato)'의 창업 스토리를 상세히 조명했다.
하늘에서 만난 한국, 주방으로 옮겨오다
카페 가토의 창업자 제니퍼 수(Jennifer Hsu)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태어나 17세에 호주 시드니로 건너가 대학에서 제과를 전공한 정식 파티시에다. 2014년 에미레이트 항공에 입사해 두바이로 이주한 그는 아시아 각국 노선을 오가며 여러 나라의 음식을 맛봤는데, 그중에서도 한국 음식 문화에 깊이 매료됐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한국과 직접적인 연고가 없는 비한국인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인 교민이나 한국 기업이 아니라, 한류 트렌드에 빠진 한 외국인이 두바이 한복판에 한국식 카페를 차린 것이다.
제니퍼는 자신의 카페가 한국 트렌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분명히 밝혔다. 그는 "틱톡과 인스타그램 릴스를 많이 보기 때문에 무엇이 트렌드인지 잘 안다. 사람들이 먼 곳까지 가지 않아도 그것을 맛볼 수 있도록 여기에 가져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지를 직접 방문해 쌓은 미식 경험과 소셜미디어로 한국의 최신 유행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습관이 가토의 출발점이었던 셈이다.
< 항공 승무원이었던 두바이 한국식 카페 '가토(Gato)'의 창업자 - 출처: Gulf News >
한국 카페 트렌드를 두바이로
가토가 본격적으로 문을 연 것은 코로나19 시기였다. 2019년 항공사를 퇴사한 뒤 팬데믹으로 비행이 멈추자 제니퍼는 자택 주방에서 베이킹을 시작했다. 때마침 전 세계적으로 '한국식 미니멀 케이크(Korean minimalist cake)' 트렌드가 유행하던 시기였고, 정식 제과 교육을 받은 그는 이 한국발 트렌드를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 기술로 완성도 있게 구현해냈다. 2020년 홈베이킹으로 시작한 가토는 2021년 첫 매장을 열었고 현재 두바이에 두 곳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가토의 메뉴는 제니퍼가 한국 카페 트렌드에 얼마나 밀착해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국 카페에서 인기를 끈 소금빵(salt bread)은 창업 첫날부터 지금까지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고, 가벼운 시트에 크림치즈 프로스팅을 올린 딸기 케이크 역시 한국식 케이크 스타일을 그대로 살린 시그니처 메뉴다. 말차 딸기 케이크 등 다른 메뉴들도 한국과 아시아 카페의 유행을 두바이 현지 입맛에 맞게 풀어낸 구성이다.
< 가토의 베스트셀러 소금빵 - 출처: Gulf News >
한국서 유행하면 두바이도 유행한다
가토가 한국 트렌드의 중동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두쫀쿠(Dubai Chewy Cookie)'다. 올해 초 한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두쫀쿠가 UAE에 상륙했을 때 가토는 두바이의 주요 판매처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걸프뉴스는 기자가 직접 두 번이나 방문했지만 매번 품절로 구하지 못했다고 보도할 만큼 그 인기가 뜨거웠다. 한국에서 유행한 디저트가 시차를 두고 두바이에서도 화제가 되고, 그 트렌드를 가장 먼저 현지 메뉴로 구현한 곳이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운영하는 카페였다는 점은 한류 확산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준다.
< 한국식 카페 '가토(Gato)' 매장 전경 - 출처: Gulf News >
비한국인이 전파하는 한류 의미
이번 걸프뉴스의 보도가 주목할 만한 이유는 한류의 확산 경로가 한층 다양해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K-푸드의 해외 진출은 한국 기업의 직접 수출이나 한국 교민의 현지 창업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제니퍼의 사례는 그 틀을 벗어난다. 한국과 직접적인 연고가 없는 외국인이 한류 트렌드에 매료돼 스스로 한국식 카페를 창업하고, 한국의 유행을 현지에 실시간으로 옮겨오는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이는 한류가 K-드라마와 K-팝의 소비 단계를 넘어 비한국인이 한국 문화의 능동적 전파자로 나서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시사한다.
특히 소셜미디어가 이러한 변화를 가속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한국에서 미니멀 케이크가 유행하면 가토에 등장하고, 한국에서 두쫀쿠가 화제가 되면 두바이 매장에서도 판매가 시작되는 식이다. 과거 한류 콘텐츠가 방송이나 정식 수출 경로를 통해 비교적 느리게 전파됐다면, 이제는 틱톡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한국의 최신 트렌드가 거의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공유되고, 이를 현지에서 사업으로 구현하는 주체도 다변화되고 있다. UAE 언론이 가토를 단순한 맛집이 아닌 한 편의 창업 스토리로 조명한 것도 이러한 흐름을 포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 두바이에 위치한 한국식 카페 '가토(Gato)'의 창업자 제니퍼 수를 조명한 UAE 언론 - 출처: Gulf News >
이 사례는 한국의 한류 전략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동안 K-푸드의 해외 진출 논의는 주로 '한국 기업이 어떻게 직접 현지에 들어갈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가토의 사례는 현지에 이미 뿌리내린 비한국인 사업자가 한국 트렌드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여 전파하는 또 다른 경로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이들은 현지 언어와 소비 감각, 유통망을 갖추고 있어 한국 기업이 단기간에 확보하기 어려운 현지화 역량을 이미 갖춘 강점을 갖고 있다.
다만 이러한 비한국인 전파자가 늘어날수록 한국 트렌드가 현지에서 본래 맥락과 다르게 변형·소비되거나, '한국'이라는 이름만 내걸 뿐 품질이 담보되지 않는 경우가 생길 우려도 있다 . 따라서 우리나라는 이들을 단순한 모방자로 볼 것이 아니라 잠재적 협업 파트너로 인식하고, 정확한 정보와 정식 제휴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한류의 외연을 건강하게 넓혀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가토의 이야기는 중동에서 한국 문화가 더욱 다양한 얼굴로, 그리고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확산을 어떻게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끌어갈 것인가라는 과제를 함께 던지고 있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Gulf News》 (2026. 5. 22). From the skies to the kitchen: How a former cabin crew member built one of Dubai's favourite Korean cafés, https://gulfnews.com/lifestyle/from-the-skies-to-the-kitchen-how-a-former-cabin-crew-member-built-one-of-dubais-favourite-korean-caf%C3%A9s-1.500548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