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에서 만난 한국 옻칠의 ‘기척’
- 유남권 작가 초청전 <기척>, 주스페인 한국문화원에서 개막… 작가와의 만남에 현지 관객 질문 이어져 -
9월 17일 저녁, 스페인 마드리드(Madrid) 주스페인 한국문화원 갤러리 ‘한울’에 한국 전통 옻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온 유남권 작가가 스페인 현지 관객들을 만났다. 이날 문화원에서는 유남권 작가 초청전 <기척>의 개막식과 함께 ‘작가와의 만남’이 열렸다. 작가와의 만남에서는 전시 작품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한국의 전통 옻칠이 어떤 재료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전통적인 기법을 어떻게 현대적인 작업으로 발전시켰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특히 작가의 설명이 끝난 뒤에도 현지 관객들의 질문이 계속되면서 한국 옻칠에 대한 관심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관객들은 작품의 표면과 재료뿐 아니라 옻칠을 여러 차례 반복해 바르고 건조하고 연마하는 과정, 작가가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표현을 시도하게 된 계기 등에 대해 질문했다. 전통공예를 완성된 결과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간 기술과 시간, 작가의 작업 방식까지 이해하려는 모습이었다. 마드리드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게 된 것에 대해 유남권 작가는 “기쁘고 영광스럽다”는 소감을 전했다. 특히 이번 전시 소식에 한국에 있는 친구들도 매우 부러워했다며 해외에서 자신의 작품을 소개할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말했다. 작가는 과거에는 한국의 전통 옻칠 작업을 해외 관객에게 직접 소개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문화원을 비롯한 여러 기관의 노력으로 해외에서 한국의 전통문화와 공예를 소개하고 현지 관객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있는 점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작가의 바람이 실제 현장에서 구현되는 자리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이어온 옻칠 작업이 마드리드의 전시장으로 옮겨와 현지 관객과 직접 만나고, 관객들은 작가에게 질문하며 작품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유남권 작가는 전통적인 옻칠의 제작 과정도 관객들에게 상세하게 소개했다. 옻칠은 한 번 바르고 끝나는 작업이 아니다. 목재에 옻칠을 한 뒤 표면의 기공을 메우고, 건조한 후 다시 연마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이러한 과정은 약 7~8회에 걸쳐 진행되기도 한다. 전통 옻칠에서 중요한 것은 균일하고 매끄러운 표면을 만드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전통적인 과정을 충실히 배운 뒤, 점차 옻칠 자체가 만드는 흐름과 우연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지와 닥종이에 옻칠을 적용하면서 작업의 방향이 크게 변화했다. 옻이 종이에 스며드는 모습을 보며 동양화에서 먹이 종이에 흡수되면서 만들어내는 농담을 떠올렸고, 이후 종이와 옻칠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탐구했다. 작가는 전통적인 옻칠처럼 표면을 완전히 균일하게 만드는 대신 옻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두는 실험도 진행했다. 옻칠의 두께와 농도에 따라 표면의 광택과 색이 달라지고, 한 작품 안에서도 서로 다른 질감이 나타나도록 한 것이다. 그의 작업은 전통기법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익힌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작가는 전통을 보존하는 것은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동시에 전통적인 기술을 자신의 방식으로 실험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유남권 작가의 실험은 회화와 조형 작품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옻칠을 활용한 생활용품 브랜드를 운영하며 전통공예를 현대인의 일상으로 가져오는 작업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의 디자인 스튜디오 힌지(Studio Hinge)와 협업한 작품도 선보인다. 남원 지역의 전통 옻칠 목기에서 출발해 현대적인 테이블웨어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전통적인 제작 방식과 현대 디자인이 결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는 다른 분야의 디자이너들과 협업하면서 자신이 익숙하게 사용해 온 옻칠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통공예의 기술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형태와 쓰임을 결합함으로써 옻칠이 오늘날에도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시장에는 신작을 비롯해 협업 작품과 옻칠 막걸리잔, 색잔 등이 함께 소개됐다. 또한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도 전시해 관객들이 완성된 작품뿐 아니라 그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까지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작가와의 만남에 이어 진행된 개막식에는 신재광 주스페인 한국문화원장과 유남권 작가가 참석해 관객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문화원장과 작가는 이번 전시의 취지와 작품 세계를 소개했으며, 작가는 전시장에 설치된 작품을 직접 설명하며 관객들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관객들은 작가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의 표면과 색, 형태를 가까이에서 살펴봤다. 특히 옻칠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광택과 질감은 일반적인 회화나 공예 작품과 다른 시각적 경험을 제공했다. 개막식에서는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추첨 행사도 마련됐다. 추첨이 시작되자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현장 분위기가 한층 활기를 띠었다. 작품을 감상하고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관객들이 직접 행사에 참여하면서 전시가 친근한 문화교류의 자리로 이어졌다. 이번 전시에서 눈에 띄는 점은 작품 자체에 대한 관심과 함께 ‘옻칠’이라는 한국의 전통기술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는 점이다. 관객들은 완성된 작품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옻칠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 왜 작가가 전통적인 방식과 다른 표현을 시도하는지 등을 물으며 작품의 배경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려 했다. ‘기척’이라는 전시 제목은 작품을 직접 만지거나 모든 것을 명확하게 보지 않아도 먼저 감지되는 존재의 낌새를 의미한다. 작가가 옻칠을 통해 만든 표면의 미세한 차이와 시간의 흔적은 이러한 ‘기척’이라는 개념과 연결된다. 수 차례의 건조와 연마, 반복되는 옻칠을 통해 만들어지는 표면에는 작업에 투입된 시간이 남는다. 작가는 이를 완벽하게 지워 균일한 표면을 만드는 대신 때로는 옻의 흐름과 우연성을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마드리드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한국의 전통 옻칠을 단순히 과거의 공예기술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전통을 익힌 한 작가가 이를 현대적인 표현으로 확장하는 과정을 현지 관객에게 직접 보여주고, 관객들은 작가에게 질문하며 한국의 전통공예를 보다 가까이에서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해외 전시 기회가 많지 않았던 과거를 지나 한국문화원을 비롯한 기관들의 지원과 교류를 통해 현지 관객과 직접 만나는 기회가 확대되고 있다는 작가의 이야기는 이번 전시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한국의 옻칠이 만드는 빛과 질감, 그리고 그 안에 축적된 시간. 유남권 작가의 ‘기척’은 그 보이지 않는 흔적을 마드리드의 관객들에게 전하며 한국 전통공예가 동시대의 문화적 언어로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유남권 작가 초청전 ‘기척’은 11월 13일까지 주스페인 한국문화원 갤러리 ‘한울’에서 계속된다.
사진 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