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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이슈] 여름의 끝자락의 빨간 맛 - 스페인 부뇰 '토마티나' 축제

2018-09-03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지난 29일 부뇰에서 열린 '토마티나' 축제 - 출처 : El Mundo>

 

여름의 끝자락, 한낮 온도가 40도에 이르는 날씨 때문에 야외활동이 잠잠한 8, 스페인 지방 도시에서는 여름의 끝자락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축제들이 열린다. 그중 스페인 남부 발렌시아 지방의 작은 소도시 부뇰에서 열리는 토마티나는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모이는 큰 축제다. 8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열리는 이 축제는 한국의 매체들과 여행 책자들에 여러 번 소개되어 한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축제 기간, 인구 9천 명의 조용한 도시 부뇰은 12일 동안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찬 열광의 도가니로 변신한다.

 

인구의 3, 4배가 넘는 관광객들이 찾은 이 세계적인 축제의 시작은 우연에서 비롯되었다. 1945년 마을 광장에서 열리는 거인 인형 퍼레이드(Desfile de Gigante)에서 청년들은 대중들의 화를 돋구는 한 참가자에게 가까운 채소가게에 진열된 토마토를 집어 던졌고, 그 다음 해부터는 직접 자신의 집에서 토마토를 가져와 던진 것이 축제의 기원이다. 하지만 1950년에 금지되면서 역사로 남을 뻔하다가 주민들이 요청으로 1957년 다시 축제를 이어갔다. 이후 축제는 또다시 취소 명령을 받았고, 이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토마토를 매장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그 이벤트가 큰 성공을 거둠으로 토마티나는 비로소 시의 공식축제가 되었다.

 

토마티나축제는 3단계로 나누어 진행되는데, 기름칠 된 기둥에 올라 꼭대기에달린 하몽(돼지 뒷다리를 말린 스페인 식 햄)을 떨어트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오전 11, 145천 킬로그램의 토마토를 실은 트럭들이 골목들을 지나고 트럭 위의 토마토가 뿌려진다. 1시간 동안 사람들은 거리의 토마토들을 으깨서 상대방에게 던지며 토마토 전투를 벌인다. 거리와 사람들은 으깬 토마토로 빨갛게 물든다. 12시 호각이 올리면 토마토를 던지는 것을 멈춰야 하며 곧바로 청소차들이 청소를 시작하며 행사는 끝이 난다.

 

토마티나에는 해마다 엄청난 관광객들이 몰린다. 2012년에는 5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으면서 안전문제가 대두됐다. 이에 부뇰 시청은 2014년부터 22천 장의 입장권만 사전 판매해 인원수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몰리는 데다가 주민들이 일상의 자리에서 행사가 진행되는 만큼, 행사 참가자들이 지켜야 할 규칙들이 있는데, 축제의 끝을 알리는 호각에는 토마토 던지는 것을 그만 두어야 하며, 토마토를 던지기 전, 상대방이 다치지 않도록 토마토는 꼭 으깨야만 한다. 마을 전체는 아니지만, 행사가 진행되는 구역에는 유리병과 같이 해가 될 수 있는 물건의 휴대가 금지되어 있다.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모여 함께 즐기는 축제 '토마티나' - 출처 : 통신원 촬영>

 

필수는 아니지만, 축제를 즐겁게 즐기기 위해서는 헌 옷을 입거나, 물 들어도 상관없는 옷을 입는 것이 권장된다. 또한 눈에 이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물안경을 착용하는 것이 좋다. 여성들은 속옷 대신 수영복을 입는 것이 더 위생적이다. 본격적인 행사 시작 전 서로의 옷을 찢는 전통이 있는데, 비키니보다는 안전한 원피스 수영복이 좋다.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하는 행사인 만큼, 절제를 잃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기도 하다. 무엇보다 전 세계인들과 어울리며 으깨진 토마토 위에서 젊음과 열정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는 토마티나에 열린 마음으로 참석하는 것이 축제를 가장 신나게 즐기는 방법이다.

 

이번 토미티나 축제에는 성폭력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백여 명의 참가자들이 보라색 옷을 입고 참가했다. 이 행사를 기획한 ‘Puntos Violeta’는 혹시나 있을 성범죄에 대비하여 대기하기도 했다. 축제 기간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당했다면 이곳에서 신고를 진행하면 된다. 이는 2년 전 스페인 북부 팜플로냐 지방의 산페르민축제에서 일어난 집단 성폭행 사건과 관계가 있다. 스페인 법원은 5명의 성폭행 가해자들에게 낮은 형량의 판결을 내렸고, 이에 스페인 곳곳에서는 판결에 반발하는 시위가 발생했다. 축제에서 이와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발렌시아시가 앞장선 것이다. 덧붙여 스페인 국회는 이 판결을 계기로 성폭행 사건에 대한 모호한 해석을 방지하기 위해서 ‘yes’라고 명백한 동의를 하지 않았다면 성폭행으로 간주하는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발렌시아시는 혹시나 있을 불상사를 대비해 부뇰 지방, 발렌시아시, 스페인 국가의 경찰과 사설 경호 업체 직원들 총 900명으로 구성된 요원을 축제 곳곳에 상주시켰다. 1대의 헬리콥터와 12개의 구급차도 함께 대기했다. 안전한 축제를 위한 이와 같은 노력은 이성을 잃고 즐기는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행사에서 큰 사건 사고 없이 마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소도시의 축제가 스페인을 대표하는 축제가 되고, 전 세계의 관광객들의 목적지가 되기까지 주민들과 발렌시아시의 노력을 보여준다. 이런 노력 덕분에 토마티나는 열정과 젊음을 불태우고 싶은 전 세계인들의 목적지가 될 것이며, 지나온 세월만큼 역사가 될 것이다.


  • 성명 : 정누리[스페인/마드리드]
  • 약력 : 현)마드리드 꼼쁠루텐세 대학원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