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e스포츠 연맹(TESFED) 회장인 아프쉰 외즈데미르(Alper Afşin Özdemir)를 비롯한 터키 대표단이 11월 13-15일간 부산에서 열린 ‘세계 e스포츠정상회의’(GEES; Global eSports Executive Summit)에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올해 3회째를 맞은 GEES는 전 세계 50여 개국의 e스포츠연맹, 게임사, 국제전통스포츠기관 관계자가 모이는 e스포츠계 최대 플랫폼이다. 올해 정상회의는 e스포츠 거버넌스 , e스포츠와 게임 중독, e스포츠산업 수익구조, e스포츠산업 행정관리라는 네 가지 핵심과제를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됐으며, 올해부터는 국내·외 학술인들이 e스포츠의 학술 가치와 발전 가능성을 논의하는 학술세미나도 프로그램에 추가시켰다. TESFED 대표단은 언론을 통해 제3회 GEES 참석 소식을 알리면서 터키를 e스포츠 종주국 중 하나로 만들기 위한 노력에 속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세계 e스포츠정상회의에 참석한 터키 e스포츠 연맹 회장 - 출처 : TESFED>
터키 e스포츠를 키우는 데 가장 크게 일조한 것은 한국 e스포츠에서도 중심에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 League of Legends)다. LoL은 중국의 라이엇게임즈에서 개발한 게임으로, 2009년 출시돼 전 세계로 그 영향력을 확대한 상태다. 2015년 터키 최대 스포츠클럽 중 하나인 베쉭타쉬 JK(Besiktas JK)가 ‘LoL 프로 게임단’을 창설하면서 터키에서도 본격적인 LoL 프로게이머들이 양성되기 시작했다. 베쉭타쉬 JK가 LoL에 공식적으로 출사표를 던졌을 당시 라이엇게임즈는 “전통 스포츠에 투자해온 스포츠 구단이 e스포츠의 발전 가능성을 인정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했었다. 이어서 김연경이 소속된 배구팀의 구단이기도 한 페네르바흐체 클럽에서도 2016년 ‘1907 Fenerbahce Espor’을, 터키의 사립명문인 바흐체쉐히르 대학(BAU; Bahcesehir University)이 ‘Super Massive’를 창설해 e스포츠 시장에 뛰어들었다.
특히 ‘Super Massive’와 ‘1907 Fenerbahce Espor’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 이제는 국제대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세계적인 팀이 됐는데, 여기에는 이들 팀에 영입된 한국인 게이머들의 활약이 컸다. 2016년 1907 Fenerbahce Espor팀에 게이머 김태일이 영입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 팀의 우승뿐 아니라 팀원들의 전반적인 실력까지 이끈 그의 적극적인 태도는 터키 리그에서 한국 게이머들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졌고, 매년 다수의 한국 선수들이 터키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올해만 해도 이창석, 이상현, 노회종, 이근성, 박위림이 터키 리그 실업팀들과 새로이 계약을 맺었다. 한국 게이머들이 터키 리그를 택하는 주된 이유로는 터키인들이 한국인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과, e스포츠 게이머들의 공통적인 꿈인 ‘롤드컵’ 진출이 치열한 한국 리그보다 터키 리그에서 더욱 수월하다는 점이 꼽힌다.
<한국인 선수가 등장하는 e 스포츠 그랜드 파이널 2018 홍보영상 - 출처 : TBF>
한편, 터키에서는 자국민 프로게이머를 양성하기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이다. 우선 ‘Super Massive’ 팀을 보유한 바흐체쉐히르 대학을 중심으로 대학에서 디지털 게이머와 게임개발자 양성을 위한 학과들을 개설하고 있다. 바흐체쉐히르 대학교 학생들은 올여름 포르투갈에서 열린 LoL 'University E-Sports Masters' 유럽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정부 차원의 노력도 있다. 그중에서도 터키 청소년체육부가 e스포츠 선수 전문자격증을 발급하기 시작한 것이 인상적이다. 터키 정부가 e스포츠를 스포츠의 한 장르로 공식 인정하고 있으며, 그 잠재력을 키우는데 있어 정부의 역할 또한 인지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17년 기준으로 이 자격증을 소지한 터키인은 3,000명을 넘어섰다. 이들은 e스포츠 대회 참가에 있어 우선권을 얻을 뿐 아니라 e스포츠 또는 게임 관련 학과가 개설돼있는 공 ·사립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수학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들의 결과로 LoL(League of Legends)계에서 터키의 존재감은 확실해졌다. LoL 4대 리그인 'Mid-Season Invitational', 'Rift Rivals', 'World Championship', 'All-Star Event'에 터키 참가팀들이 매년 이름을 올리고 있고, 각 지역 리그별 스프링 시즌 1-4위 팀이 우위를 겨루는 지역 리그 대항전 'Rift Rivals‘에서는 터키가 2017년과 2018년 연승을 거두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LoL 세계리그 홍보영상에는 종주국인 한·중·일·대만·미국과 함께 터키 게이머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심지어 오직 3개국 언어만 제공되는 월드 챔피언십 경기의 VOD 스트리밍 서비스에도 터키어가 포함됐다. 그만큼 터키에서 챔피언십 경기를 시청하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터키 내에서 e스포츠의 영향력도 상당하다. 매년 터키 e스포츠 그랜드 파이널(TBF) 경기에 1만 명 이상의 유료 관객이 몰려 긴 행렬을 이루고, 이 경기의 관전 티켓을 손에 얻기 위해 매년 치열한 경쟁마저 벌어진다고 한다.
<올해 열린 e 스포츠 그랜드 파이널 경기장 풍경>
<올해 e 스포츠 그랜드 파이널에서 우승을 거둔 1907 Fenerbahce Espor팀>
한국인 선수들이 터키를 비롯한 외국에서 보여주고 있는 활약과 기여, 경제적 효과는 여타 한류스타들에 견줬을 때 결코 작지 않다. 또한 디지털 게임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물리적 공간을 초월한다는 특징을 고려했을 때 이것이 문화산업의 일종으로서 적극적으로 투자·장려되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게임에 관한 부정적인 시선으로 인해 e스포츠와 디지털 게임은 그 규모와 인기에 비해 한류와 한국 모두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이미 전 세계인들이 게임을 중심으로 교류하고 있고, 여기에서 한국인 게이머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만큼 e스포츠와 디지털 게임 또한 한류 현상의 하나로 인식하고 지원할 필요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