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휩쓴 방탄소년단의 〈번 더 스테이지:더무비(Burn The Stage: The Movie)〉(이하 〈번 더 스테이지〉) 열풍에는 인도도 빠지지 않았다. 영상 심의로 인해 일정이 늦어지긴 했지만, 염려와는 달리 많은 장면의 편집 없이(술이 나오는 장면이 조금 잘렸다고 알려졌다) 11월 25일 일요일 무사히 개봉하였다. 극장 측의 발표에 따르면 무려 34,000여 명이 넘는 관객들이 전 인도에서 이 영화를 관람하였다고 하니 인도에서의 방탄소년단 인기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놀라운 수치일 것이다. 그러나 이 숫자 뒤에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영화의 개봉 자체가 팬들의 열성적인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번 더 스테이지’ 상영 홍보 포스터 – 출처 : INOX 트위터〉
‘한류 불모지’ 인도에서는 방탄소년단의 앨범조차 쉽게 구할 수 없지만, 빌보드 1위, UN 연설 이후 그들의 인도 내 인지도는 여느 발리우드 스타 못지않아졌다. 인도 주요 일간지의 연예면에서 방탄소년단의 이름을 한 달에 한 번꼴로 보는 일 역시 흔해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인도 ‘아미’(방탄소년단의 팬클럽, ARMY)들은 그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멤버들의 생일마다 생일파티와 공익단체 후원을 위해 모금을 하는 것은 물론, 트위터의 해쉬태그(#)와 멘션(댓글)으로 열성적인 공세를 가한다. 인도의 음악전문 채널 《Vh1》은 이들의 열기에 결국 케이팝 전문 프로그램 〈K-Popp’d〉를 신설하고, 인도 래퍼 Raaftar가 신곡 뮤직비디오가 방탄소년단의 래퍼 RM의 솔로 뮤직비디오와 흡사하다는 논란에 결국 사과까지 하게 만든 것이 바로 이 인도 아미들의 저력이다. 최근에는 인도 내 최대 판매 부수의 영문일간지 《타임즈 오브 인디아(Times of India)》에서 지난 10월 11일 또 다른 케이팝 그룹 NCT의 사진 밑에 ‘한국의 보이밴드 방탄소년단’이라고 보도하자 즉시 항의의 멘션을 띄워 결국 해당 신문사에서 정정게재를 하기에 이르렀다.
방탄소년단의 2017년 월드투어를 담은 영화 〈번 더 스테이지〉의 개봉 소식이 공개되자마자 인도 아미들은 즉시 ‘총공(총공격을 뜻하는 용어로, 아이돌 팬들이 조직적인 움직임을 계획하여 실행하는 것을 뜻함)’을 시작했다. 방탄소년단 ‘아미’의 인도 지부라고 할 있는 방탄인디아(트위터 @BangtanINDIA)가 시작한 운동으로 이들은 직접 인도 내 주요한 극장들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번 더 스테이지를 인도로 데려오자(BRING THE BURN THE STAGE TO INDIA)’는 트위터 ‘총공’ 포스터를 돌리며 이들은 인도 유명 극장 체인의 이메일과 트위터 태그, 홈페이지 피드백을 통해 〈번 더 스테이지〉 인도 상영을 촉구했다.
〈‘번 더 스테이지를 인도로 데려오자’는 팬들의 총공 포스터 – 출처 : 방탄 인디아〉
이들의 움직임에 응답한 것은 인도의 극장 체인 INOX였다. 인도 전체 67개 도시에 133개의 멀티플렉스 극장의 542개 스크린을 소유한 INOX는 인도 내 극장사업에서는 2위로 손꼽힌다. 처음에는 소극적인 반응으로 뉴델리, 뭄바이, 캘커타, 벵갈로르 등 인구 밀집도가 높은 몇 개 도시에서만 상영을 추진했던 INOX는 11월 19일 월요일 첫 예매로 10개의 상영관을 열었다. 그러나 예매가 5분 만에 모두 매진되고 팬들이 INOX의 모든 소셜 네트워크 페이지를 도배하고 난 뒤 이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결국 상영관의 수를 늘렸다. INOX의 마케팅 담당자 사우랍 바르마(Saurabh Varma)씨는 “〈번 더 스테이지〉는 믿을 수 없는 현상이다”고 말하며 업계에서 21년간 일하며 이 정도의 열성적인 반응을 본 것은 처음이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최종적으로 〈번 더 스테이지〉는 인도 내 45개 도시, 89개 극장에서 244회 상영되며 34,000여 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
영화 상영에 참여한 것은 팬들뿐만이 아니었다. 열성적인 아미들은 자신의 가족, 친구들을 모두 극장으로 데려왔다. 13살 딸과 함께 영화를 관람한 쥬얼리 디자이너 안잘리(Ajali, 37) 씨는 극장에서 다양한 나이대의 팬들과 그들의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며, 자신 역시 딸을 통해 방탄소년단을 알게 되었다고 전했다. 인도 아미들은 영화 상영관을 그들만의 축제 현장으로도 만들었다. 팬클럽들은 행사 당일 배너와 보라색 리본을 나눠주며 상영관을 찾은 관객들이 마치 콘서트의 일부가 된 듯 느끼게 만들었다. INOX 상영관 로비에서는 팬들이 방탄소년단의 노래에 맞춰 떼창과 함께 춤을 추는 즉석 플래쉬몹까지 선보였다. 상영관 안에서는 팬찬트(멤버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는 응원법)가 이어졌다. 일부 팬들은 직접 만든 포토카드와 배너들을 나눠주기도 했다.
〈델리 상영관에 모인 팬들(좌)과 구자라트 주 수랏(Surat)의 INOX 상영관에 모인 팬들(우)가 직접 준비한 배너를 들어보이고 있다 – 출처 : 방탄 인디아〉
INOX에서는 이전에도 영국 보이밴드 원디렉션(One Director)의 영화나 학교, 가족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행사와 영화 상영을 개최한 바 있지만, 이번 〈번 더 스테이지〉와 같은 열기는 전례가 없는 사례라고 한다. INOX는 예매 매진 직후 적극적인 태도로 미디어를 통한 홍보와 SNS 홍보를 아끼지 않았으며 심지어 관객들을 위해 〈번 더 스테이지〉 팝콘 콤보를 판매하기까지 했다. INOX는 상영 다음날 트위터를 통해 “아미 여러분! 2018년 11월 25일은 우리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번 더 스테이지〉 INOX 상영을 마법 같은 경험 그 이상으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모두를 사랑(퍼플)해요!"라고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까지 했다. 그들의 트위터(@INOXMovies)에서는 인도 각 지역 상영관 팬들의 열기를 영상으로 볼 수 있다.
놀란 것은 INOX 뿐만이 아니다. 인도 일간지 《텔레그래프(Telegraph)》에서는 연예전문 부록 T2를 통해 총 2면에 걸쳐 콜카타에서 열린 2번의 상영 소식과 팬들의 열성적인 반응을 실었다. 델랑가나 주의 영문지 《텔랑가나 투데이(Telangana Today)》 역시 타블로이드 부록 1면에서 텔랑가나의 주도 하이데라바드의 상영회 소식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들 신문은 대체 팬들을 열광시킨 'BTS'는 누구인지, '아미'는 무엇을 뜻하는지 자세하게 설명하는 한편, 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연예인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방탄소년단의 존재감을 알렸다.
인도인들에게는 방탄소년단의 세계적 인기보다, 그들에게 열성적으로 반응하는 인도 아미들 자체가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번 더 스테이지〉 상영을 위해 뛰었던 ‘방탄 인디아’의 운영진 오이트리카(Oitrika)는 “INOX과 처음 대화를 할 때 그들은 우리 팬덤이 이 정도로 큰지 생각하지 못하고 굉장히 미적지근한 태도였다. 그러나 예매 매진 이후 전화로 ‘모든 상영관이 매진’이라며 ‘이것이 인도에 얼마나 많은 케이팝/방탄소년단의 팬이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팬들이 데려온 가족뿐 아니라 이러한 지역 신문의 보도와 소셜미디어 업로드를 통해 〈번 더 스테이지〉는 인도의 한류를 재발견시켰다. 그리고 그동안 방탄소년단에 대해 몰랐던 이들에게까지 알려졌다.
〈11월 29일 텔레그래프(Telegraph) 지에 실린 콜카타의 '번 더 스테이지' 상영 현장 보도 – 출처 : 텔레그래프〉
〈11월 29일 텔랑가나 투데이(Telangana Today)에 실린 하이데라바드 상영회 보도 – 출처 : 텔랑가나 투데이〉
인도 팬들은 아직도 여전히 케이팝 앨범을 사기 위해, 방탄소년단의 굿즈(팬 물품)나 BT21의 굿즈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세계 어느 곳이나 방탄소년단 아미들의 열정이 덜하지는 않겠지만, 인도 아미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번 더 스테이지〉와 같이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줄 행사와 기회들이 필요했다. 팬들의 힘으로 이루어낸 이번 행사는 유례없는 성공이라는 면에서뿐만 아니라, 가늠되지 않던 인도의 한류 팬을 짐작해 볼 만한 수치로서도 의미가 있다. 오이트리카는 “〈번 더 스테이지〉의 사례는 분명 다른 인도 기업들에게도 알려졌을 것”이라며 인도 기업들이 한류와 팬들의 힘을 느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INOX 측 역시 이번 상영이 “방탄소년단이 다가올 미래에 대해 모두의 눈을 띄워주었다”며 그들에게 새로운 지향점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INOX는 이러한 팬들을 중심으로 한 행사와 시장을 위한 전담팀을 꾸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영상으로만 만족할 수는 없는 일이다. 팬들은 이번 상영의 성공을 통해 방탄소년단을 인도로 불러오겠다는 소망을 다시 한번 다짐했다. 부디 이러한 팬들의 노력이 한국 기획사들에게 닿아 인도 내 한류 시장을 개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바람처럼 방탄소년단이 인도를 찾을 때에는 아마 〈번 더 스테이지〉의 사례와 같은, ‘믿을 수 없는’ 인도의 팬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