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으로 출판된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작가 조남주>
꾸준히 영국의 한국 관련 언론을 장식해오다가 봉준호 감독의 오스카 수상을 계기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던 영화 관련 뉴스들이 요즘은 코로나19 사태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안타까울 정도로 당분간 사그러든 한국영화 붐의 빈자리를 메꿀 또 다른 매체가 있다면 문학 작품이 아닐까 싶다. 배수아 작가와 조남주 작가의 소설 작품들이 영문으로 번역된 것을 계기로 《가디언》지는 최근 들어 두 편의 인터뷰를 게재한 바 있다. 동 일간지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이들 외에 다수의 한국문학이 조만간에 영문으로 번역되어 출판될 예정이다. 그런데 영어권 출판 시장에 선보일 작품들이 대개 여성 작가들이 쓴 작품들이라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지난 4월 23일 자 보도에서 《가디언》지는 '한국의 여성 작가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불타는 격노를 덮는 차가움’(‘A coldness that masks a burning rage’: South Korea's female writers rise up)’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새로운 세대의 여성 작가들이 대거 국제무대에 등장하여 남녀 차별, 성형수술, 미투혐오 등을 폭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 출판을 둘러싼 배경과 한국 독자들의 반응 등에 관해 나눈 조남주 작가와의 인터뷰를 근거로 이 보도는 한국 여성 작가들이 국제무대에 진출하게 된 정황 등을 소개하고 있다. 아래는 기사의 주요 내용을 통신원이 번역, 요약한 주요 내용이다. 이 소설은 2016년 5월 23세의 한 대한민국 여성이 서울의 강남역 근처에 있는 공중 화장실에서 살해된 것을 계기로 집필되었다. 범인은 여성들에게 그동안 많이 무시를 받아왔으며 이를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고 법정에 서서 주장한 바 있다. 수개월이 지난 후 『82년생 김지영』이란 제목의 얇은 소설이 출판되었다. 시나리오 작가였던 조남주가 쓴 책으로 평범한 한국 여성의 삶과 뿌리가 깊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성차별을 상세하고 다루고 있다. 《가디언》지는 미투(#MeToo) 운동이 1년 차에 접어들었을 시기인 2018년에 대한민국의 여성들에게 조 작가의 소설은 하나의 집결의 외침이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미투 사례 중의 하나로 단연 서지현 검사가 있다. 그녀의 사례와 비슷한 사건은 조남주의 소설에서도 볼 수 있다. 출판 이후 『82년생 김지영』은 수많은 논란에 휩싸였다. 기사는 “이 소설을 거론한 여성 유명인들이 성적 차별 또는 모욕을 받았다. 여성 그룹 레드벨벳(Red Velvet)의 남성 팬들은 멤버 아이린이 이 책을 읽었다고 말하자 아이린 관련 사진과 앨범을 모두 불태웠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출판된 지 4년이 지나고 이 책은 영어로 출판되었다. 영문 제목은 『Kim Jiyoung, Born 1982』이다. 조 작가의 초점은 한국의 문화에 맞춘 반면, 《가디언》지의 논지에 따르면 이 책에 등장하는 폭력과 괴롭힘은 모두 비슷해 보인다. 초안에서는 가정 폭력과 데이트 폭력, 임신 중절 등의 에피소드들이 중심에 있었지만 이런 요소들을 조 작가는 결국 모두 삭제했다고 한다. 작가는 “남성 독자들이 거부감이나 방어 자세를 취하지 않고 이 소설에 몰입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몇몇 남성들이 여전히 이 소설에 대해 갖는 부정적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김지영 세대의 여성들은 육체적 학대와 차별이 불법인 시대에 살고 있지만 폭력적 문화와 관습은 여전히 남아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소에 따르면 한국 남성들 5명 중 4명이 자신들의 여자 친구들을 통제한다고 인정한 반면 여아 낙태는 암묵적으로 지속돼왔다”고 작가는 말한다. 물론 조남주가 성적 폭력을 다루는 유일한 대한민국의 작가는 아니다. 그녀의 소설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문학 전통의 일부에 해당한다. 하성란의 『곰팡이 꽃 (Flowers of Mold)』, 한지민의 『A Small Revolution』, 5월에 영문으로 출판될 예정인 윤고은의 『The Disaster Tourist』 등이 대표 작품이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Vegetarian)』는 멘부커 인터네셔널 수상작으로 『82년생 김지영』처럼 언뜻 평범해 보이는 한 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받은 작가 한강>
아름다움과 잔인함은 한국문학에서 오랫동안 혼합되어서 다루어져 왔다. 하지만 폭력 문제가 이전에는 남성적인 전쟁 세계를 통해 문학에서 다루어졌던 반면 페미니스트 작가들은 더욱 여성적인, 다른 종류의 폭력을 탐구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성형수술 비율이 특히 최고로 높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성형수술은 사회적 인정을 받을 기회를 향상하고자 또 다른 방식으로 화장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언급한 『속초에서의 겨울(Winter in Sokcho)』을 쓴 한국계 프랑스 작가 엘리자 수아 뒤사팽(Élisa Shua Dusapin)은 밝혔다. 오는 7월에 출판 예정인 『내가 네 얼굴을 가졌다면(If I Had Your Face)』으로 데뷔한 프란세스 차 (Frances Cha)는 자신의 소설이 성형수술을 하는 대한민국 여성들에 대한 서구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바란다고 한다. 차는 자신의 어머니 세대 한국 여성들이 가진 '한'의 문제를 중요하게 바라본다고 한다. 최윤 작가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There a Petal Silently Falls)』,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Who Ate Up All the Shinga?)』 등 여성 작가들은 심리적 또는 다른 종류의 폭력 문제를 1980년 광주 학살, 한국 전쟁과 같은 갈등들과 연계지어 다루었다. '폭력은 한국 문화 일반에서 아주 거대한 문제이다. 한은 여성들에게 더 많다'는 것이 차 작가의 견해이다. 여성 한국작가들이 쓴 소설, 픽션을 향한 반응은 한국보다 해외에서 폭발적이라고 한다. 번역된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 숫자가 남성들의 작품들보다 더 많다. '페미니스트 스토리가 전 세계에서 더욱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시점, 뛰어난 현대 남성 작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더 많이 한국문학 수상작 후보로 오르고 있다'고 조남주 작가는 말했다. 이어 “경제불황 때에는 아버지들과 젊은 남성들의 고통과 불안에 대한 소설들이 많았다. 최근에는 독자들이 나이든 여성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은 사랑을 받는다. 여성 노동자들의 사회생활과 근심에 초점을 둔 책들은 여성 동료, 친구들과 이웃들 간의 호감을 표현한다. 문학의 문제로 지금까지 다루어지지 않았던 주제'라고 덧붙였다. 뒤사팽은 “이승우, 김이환, 한강, 김애란, 오정희, 은희경 등이 자신이 존경하는 현대 작가”라며 “(이들의 작품 속에는) 거칢과 고단함, 폭력이 등장하지만 동시에 아주 섬세하다”고 한국문학을 평가했다. 이어 “내적 분노를 덮은 차가움이 있는데 의견을 공적인 자리에서 크게 말하는 것이 보기 흉하게 여겨지는 사회에서 문학은 아마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녀의 견해이다.
※ 사진 출처와 참고자료 《The Guardian》 (20. 4. 23.) <'A coldness that masks a burning rage': South Korea's female writers rise up>,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20/apr/23/south-korea-female-writers-rise-up-cho-nam-joo
성명 : 이현선[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영국/런던 통신원] 약력 : 현)SOAS, University of London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