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 BTS의 수상 소감을 두고 한중 간 여론 공방이 격렬하게 오갔다. BTS는 7일 미국 비영리재단 코리아소사이어티로부터 매년 한미관계에 공헌한 인물에게 주어지는 밴플리트상을 수상했다.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우리는 양국(한미)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 여성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는 BTS의 수상 소감은 며칠 뒤 중국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중국 네티즌들이 BTS의 수상 소감을 한국전쟁 당시 중국 인민지원군의 희생을 간과한 것으로 해석해 국가 존엄과 관계된 참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12일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环球时报)가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도하자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사드 사태 때 등장했던 ‘국가 앞에 아이돌은 없다’는 구호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또다시 펴져 나갔다. BTS 팬들은 ‘탈덕’을 선언했고, 11월에 발매될 새 앨범 “BE”의 온라인 사전 공동구매를 취소하기 시작했다. 삼성, 현대, 휠라와 같은 한국 기업들은 중국 소비자들의 조직적인 한국 제품 불매운동으로 번질 것을 우려해 BTS 관련 홍보 이미지와 제품을 온라인 플랫폼에서 삭제했다.
<수상 소감 논란과 한국의 중국 비난 언론을 보도한 환구시보 지면 - 출처: www.jdqu.com>
사태가 심각해지자 한국 언론 역시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후 한중 언론 보도와 네티즌 반응이 각국에 그대로 번역, 재생산되면서 여론 설전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누가 이 사건을 키웠는가’를 묻는 책임 소재 논란을 끝으로 한중 언론 공방은 겨우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이번 사태에 대한 한국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사실에 기대어 중국 여론이 금세 진정될 것으로 예측했던 것 같다. 먼저 이례적으로 중국 외교부가 나서 사건 진화를 위한 공식 입장을 밝힌 점, 그리고 국제사회 여론이 한목소리로 중국의 편협한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두 가지는 이번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며 혐한 감정을 부추긴 결과를 낳았다.
<환구시보 편집장 후시진(胡锡进)이 자신의 SNS를 통해 이번 논란을 키운 건 한국의 언론과 정치권이라 비판했다. 이에 한국 언론 역시 중국 언론의 책임을 되물으며 언론 간 공방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 출처: 시나웨이보(@胡锡进)>
中외교부 대변인 공식 입장에 대한 해석이몽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로 향하고 평화를 중시하며 우호를 도모하는 것은 우리가 함께 추구하고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다.” 12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 자오리젠(赵立坚)이 정례 기자회견에서 내놓은 이 원론적인 발언을 두고, 한국 언론은 BTS 수상 소감 논란을 중국 정부가 진화하기 위한 제스처로 해석했다. 하지만 중국 네티즌들의 해석은 조금 달랐다. 한국에 대한 우회적인 경고로 읽거나, 맹목적으로 BTS를 추종하는 중국 아미에게 보내는 각성의 메시지, 혹은 아무 의미 없는 답변이라는 등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주목할 만한 현상은 중국 네티즌들이 발언의 숨은 뜻을 파악하기 위해 애쓰기보단, 오히려 외교부의 이와 같은 공식 발언 자체가 ‘중국 체면을 구기고 BTS의 체면을 세워준 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 SNS에 게시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BTS 관련 발언 영상과 댓글 - 출처: 시나웨이보(@中央新闻) >
중국 관영매체 CCTV(中央新闻)의 SNS에 게시된 중국 외교부 대변인 영상 댓글을 살펴보면, “한 아이돌 그룹이 외교부 답변을 얻어낼 수 있는 것도 그들의 체면을 세워준 것이다”, “나쁘지 않네, 중국 CCTV에서 언급됐으니까”, “이렇게 정식 대응하면 그들의 지위를 높여주는 거잖아”와 같은 불만 섞인 반응이 네티즌들의 많은 공감을 얻었다.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인들에게 중국 외교부의 공식 입장 표명은 뜻밖에 사태 수습이 아닌 혐한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다음날 13일 한국 외교부 이재웅 부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에서 “한중 국민 간 상호 이해와 유대감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정부가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이 중국에 빠르게 보도됐다. 하지만 중국이 이미 체면을 구겼다고 간주한 중국 네티즌들은 이후 BTS와 관련된 다른 기사 댓글에서도 ‘체면’ 언급을 이어나갔다. 필터링되는 해외 언론의 ‘중국 민족주의’ 비난 보도 미국 뉴욕타임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등 해외 언론은 중국의 편협한 민족주의로 BTS가 희생양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 네티즌들이 각종 SNS에 ‘#chinazi’라는 해시태그를 걸며 중국의 자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한국 언론은 이러한 상황을 국제사회로부터 중국이 반격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에서는 국제사회마저 비판하는 중국의 행태를 왜 스스로 반성하지 않는지 답답해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국 대중은 그와 같은 보도를 쉽게 접할 수 없다. 그나마 이번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가 몇몇 중국 언론을 통해 전해지긴 했다. 그러나 “삼성이 BTS판 제품을 중국 온라인 플랫폼에서 내렸다”는 헤드라인을 전할 뿐, 민족주의에 대한 핵심 비판 사항은 걸러진 채 보도되었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글로벌 플랫폼 접속이 공식적으로 제한된 중국에서 ‘#chinazi’라는 해시태그를 접한 중국 네티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 중국의 대표적 로컬 포털사이트나 SNS에는 ‘chinazi’라는 용어의 검색이 제한되어있다. 한 중국 포털사이트에서 아주 극소수의 네티즌이 이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묻고 답하는 게시글을 겨우 찾아볼 수 있다.
<美국무부 대변인이 BTS에게 보낸 감사 메시지를 보도한 ‘참고소식(参考消息)’. 참고소식은 중국 관영매체 신화통신이 발행한다 - 출처: 시나웨이보(@参考消息)>
물론 중국 대중이 자유롭게 국제사회의 의견을 접할 수 있게 된다고 해서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단정은 쉽게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중국 대중에게 이번 논란이 한국만 과민 반응해 중국의 민족주의를 비판한 사건으로 기억될 것을 생각하면 조금 안타까워진다. 더 씁쓸한 건 한국의 중국 비난 배후에는 미국 정부의 지지가 있다고 여긴다는 점이다. 철저하게 필터링 된 그 많은 해외 여론 중 하필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트위터를 통해 BTS에게 보낸 감사 메시지가 “과연 미국 역시 등장”이라는 자극적인 머리말을 달고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항미원조(抗美援朝) 기념 주간, 언제 다시 도마 위에 오를지 모를 갈등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도왔다는 ‘항미원조 전쟁’은 중국에서 통용되는 ‘한국전쟁’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한국이 한국전쟁 발발일인 6월 25일과 전쟁 당시 38선을 돌파한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지정해 역사를 기린다면, 중국은 북한 원조에 나서 첫 전투를 개시한 10월 25일을 항미원조 기념일로 정했다. 올 초부터 중국은 "항미원조 70주년"을 맞아 분주하게 움직였다. 특히 연이은 중미 무역 갈등에 대한 중국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 항미원조 전쟁 관련 문화콘텐츠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진작부터 중국 TV에는 한국전쟁 관련 각종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의 방영이 이어지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중국 영화의 거장 장이머우 감독이 한국전쟁 관련 영화를 크랭크인한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었다. 또 중국 박스오피스의 신기록을 세운 감독과 배우가 총출동한 <금강천(金刚川)>은 이번 주 금요일 개봉을 앞두고 항미원조 전쟁을 기념할 강력한 기대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아마 그간 항미원조 전쟁 영화가 그래왔듯 남북한군의 존재는 거의 부재한 채 중국 인민지원군의 고난과 희생이 중점적으로 묘사되었을 것이다. 10월 25일 기념일을 앞두고 항미원조 전쟁 콘텐츠 관련 소식은 중국 각종 SNS상에서 언론과 네티즌에 의해 적극적으로 공유되고 있다. 그리고 관련 게시글에는 중국 BTS 팬들의 단체 관람을 촉구하는 댓글이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금주 개봉 예정인 항미원조 전쟁 소재 영화 ‘금강천’ - 출처: 더우반>
10월이라는 특수시기에 벌어진 BTS 수상 소감 설전은 결국 아티스트와 소속사가 봉합해야 할 불어난 과제로 남아있다. 어쩌면 이번 이슈가 잊혀질 시간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일 수 있다. 어제는 중국의 한 물류회사가 BTS 관련 소포는 당분간 배송하지 않겠다는 게시글을 올렸다 삭제해 또다시 BTS가 화제 검색어에 올랐다. 중국 네티즌들은 물류회사에 지지를 보내는 한편, 이제 그만하라는 항의의 댓글도 달고 있다. 끊이지 않는 BTS 이슈의 피로감이 뜻밖에 대중의 자정작용으로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한류 문화영역에서 국제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사항과 엮인 이슈가 터졌을 때 한국 언론이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척 어려운 과제이지만, 적어도 국가 간 편 가르기를 부추기기보단 대중의 자정작용을 도울 수 있는 양국의 공적 목소리가 절실한 시점이다.
성명 : 박경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중국(북경)/북경 통신원] 약력 : 현) 중국전매대학교 영화학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