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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젊은 세대들

2020-11-02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사우디에 첫발을 디딘 한국인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사우디인들은 다 어디에 있습니까? 좀처럼 사우디 본토인을 볼 수가 없네요.

특히 외국인의 비율이 사우디의 다른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젯다시의 경우 업무적으로 사우디인을 만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사우디 정부의 지속적인 사우디인 고용정책(Saudization) 시행으로 한 회사에 근무하는 전체 직원에서 일정 비율은 반드시 사우디인을 고용할 것을 법제화하여 회사에서 사우디 사람들을 보는 일이 예전보다는 비교적 흔해졌지만 아직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적은 임금을 받는 주변국에서 온 노동자들이 많다.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하얀색 긴 가운, 아랍어로는 ‘싸웁’이라 읽으며, ‘옷’으로 번역되는 이 옷을 입고, 흰색 바탕에 빨간색 체크무늬 보자기 ‘쉬막’(전체가 흰 색으로 된 것은 ‘구트라’라고 칭함)을 머리에 얹어 어깨 뒤로 늘어뜨리고 이마엔 까만색 원형 테, 이깔을 두른 아랍 성들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유사한 복장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나중에 알고 보면 인근 중동지역에서 온 사람들인 경우가 많으며, 실제로 생활 주변에서 사우디 사람들을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이처럼 사우디아라비아는 인근 중동,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 파키스탄 등 많은 아시아계 나라 사람들이 대거 들어와 있는 다국적 사회이다. 그리고 이들이 생활현장 곳곳에서 대부분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우디인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급한 일로 택시를 타고 병원을 가게 되면, 당신은 파키스탄 기사가 운전하는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여 필리핀 간호사의 안내를 받으며, 이집트 의사의 진찰을 받을 확률이 높다. 다행히 검진결과, 별 이상이 없어서 기분이 좋아진 당신이 가까운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면 인도인 웨이터가 주문을 받고 시리아인 요리사가 요리한 터키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돌아오면, 인도네시아인 티보이가 홍차를 준비해 오고 당신은 요르단인 과장과 다음 달 출시할 신제품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미래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과 젊은 사우디인들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더욱 궁금해진다. 필자는 사우디 자국인과 그 외의 중동 여러 나라 젊은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한글학교 선생님을 통해 그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젊은이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
젊은이들이 생활과 사고방식에 대해 한글 선생님에게 문의하니, 먼저 이들의 결혼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흔히 알려진 아랍인들의 조혼 문화도 이제는 또렷한 변화의 길 위에 있는 듯하다. 예전 같았으면 이곳에서는 충분히 늦은 결혼으로 인식될 수 있는 30대 초반임에도 결혼을 서두르지 않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10년 전 한글학교 선생님에게서 한국어를 배울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학생들이 지금도 대다수 미혼이다. 부모의 의견대로 중매를 통해서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집안 내의 사촌 이상의 친척 중에서 배필을 찾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그 학생들은 또래의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릴 때 직장을 다니고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혼연령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한글을 공부하는 사람들만의 현상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우디 내의 젊은 남녀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회현상이다. 30대의 나이임에도 아직 미혼 상태인 것을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결혼에 대한 조건은 더 세밀해져 가고 있다. 상대가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직업은 있는지 등등을 살핀다. 요즘 많은 젊은 남녀는 전통적인 그들 삶의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열린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배우자를 선호한다. 결혼을 해도 자신의 직업을 계속하여 가지고 싶다는 여성도 많아지고 있고, 남성도 아내가 직업을 갖고서 함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기도 한다. 집값도 비싸고 모든 생활비를 남자 혼자서 충당하기에 역부족이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여성들에 대한 교육이 한층 확대되었고, 여성들 자신 또한 자신의 삶을 부모나 남편에 의지하는 가치관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리고 남편이 나중에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여 이 나라에서는 합법적인 ‘제2의 가정’을 꾸릴 경우 이혼도 불사하겠다는 젊은 여성들도 늘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몇 년 전에 남편이 새 부인을 얻고자 하면 반드시 현재 부인의 동의를 얻어야 결혼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요즘의 젊은 아랍인들이 부모세대와는 다른 사고를 하기 시작한 데는 2000년이 시작되면서 활짝 열린 인터넷의 영향이 적지 않아 보인다.


인터넷, 바깥세계와의 소통의 창구가 되다.
다른 나라들과 유사하게 사우디에서도 젊은이들에게 인터넷은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지만, 유튜브의 힘이 그 중 제일 막강해 보인다. 여성들에 대한 교육이 미비하고, 아무리 어린 나이일지라도 남성 보호자의 동행 없이는 여성 혼자 여행할 수 없던 과거의 규제는 말 그대로 이제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는 세계 최대의 여자 대학인 ‘누라 공주 대학’(https://www.pnu.edu.sa/en/pages/home.aspx)이 있다. 물론 사우디 어느 시골에서는 아직도 과거의 전통을 그대로 지키며 살고 있는 가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우디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더운 날씨 때문에 실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곳 젊은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거의 모든 바깥세상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우디의 인터넷 보급률은 높은 편인데, 세계은행의 통계에 의하면 2019년 사우디의 인터넷 이용률은 95.73%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서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IT.NET.USER.ZS?locations=SA)

인터넷 세상에 있는 다양한 채널들을 통해 젊은이들은 세상의 흐름을 알 수 있는 뉴스를 검색하기도 하고 동영상으로 세상의 최신 영화와 노래를 섭렵하기도 한다. 드넓은 세상과 소통할 수 없었던 50~60대 부모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삶이다. 나아가 진정 말하고 싶었던 개인의 목소리를 담아 유튜브에 올리고, 숨어있던, 그러나 그 사안에 대해 마음속으로는 동감하고 있던, 수많은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그것이 하나의 변화를 주도하는 동력이 되었다. 가령, 여성도 운전하게 해 달라고 운전대를 잡고 시위하는 영상을 올리자 그 파장은 일파만파였다. 이슬람 사회에서 예견할 수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영상을 올림으로 신변에 문제가 된 여성들을 보호하자는 수많은 목소리는 SNS 통해 강력한 여론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했다.

결국 2018년, 사우디 정부는 자국민 및 외국인의 ‘여성들의 운전 허용’이라는 놀라운 규제 완화를 공식 발표했다. 사람들은 한동안은 정말 믿기지 않아 여성 운전자만 보면 “어… 저기… 여자가 운전한다”라며 놀라워했다. 그러나 지금은 도로 위에서 운전하는 여성 운전자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인터넷 세상은 그동안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를 이끌었다. 온라인 가상 공간이 제공하는 자유로움과 누구라도 대중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막강한 접근성과 전파력은 예전 같았으면 한 개인의 생각 속에 묻혀버리고 끝날 일을 공론화시킴으로써 대중의 목소리가 되고 사회변화를 이끄는 강력한 마중물이 되는 듯하다.

한국이 좋아 나도 한국 사람처럼
변화된 의식으로 보다 개방적인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기성세대들이 예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삶을 이루어 나간다. 며칠 전 30대 초반인 사우디 국적의 한 여성은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며 코치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태권도 코치는 남자여도 상관이 없단다. 그들은 사실 10년 전에도 태권도를 배우고 싶어했었다. 30대 중반인 간호사 A 씨는 싱글로 지낸다. 바쁜 직장생활 중에도 요즘 한국어를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가끔은 근무를 마친 뒤 대형 쇼핑몰에 와서 식사하고 한적한 곳에서 수업을 듣는다. 혼자 앉아서 말이다. 귀가 시 누가 픽업을 하냐고 물었더니 차 키를 달랑달랑 흔들어 보이면서 “내가 운전해서 갈 거예요.”라고 웃으며 말한다. 젊은 아랍 여성들의 삶의 방식에 큰 변화가 일고 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직장인 B 씨도 공항에 근무하는 사우디 여성으로 가끔 카페에 앉아서 수업을 듣는다. 왜 거기서 공부를 하느냐는 질문에 한국 젊은이들이 커피 전문점에서 공부하는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해 보는 중이라고 했다. 분위기 좋고 조용해서 공부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전한다. 20대 후반의 차드 국적 여성 C 씨는 현재 메디나에 살고 있다. 비대면으로 현재 한국어를 배우고 있으며, 한국이 좋아서 그동안 10년 넘게 한국드라마를 시청해 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어 발음이 매우 자연스럽고, 듣기 능력도 뛰어났다. 하지만 한국어 자음, 모음을 배워본 적이 없어서 요즘 글자를 읽는 기쁨에 흠뻑 젖어 있다. 이외에도 초등학생 자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려고 찾아오는 사우디인이나 제3국 국적의 부모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들은 자녀들이 한국어를 배워두면 훗날 자산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통신원이 알고 지내는 한 사우디 청년은 홀로 유튜브를 통해 한글을 익히고 있다. 그는 한 유명 호텔의 리셉션에 근무하는데 자기 이름을 한글로 상의 윗주머니에 자수로 새겨 넣었다. 여성들이 한글을 배우는 경우는 많이 보아 왔지만 남성이 그것도 독학으로 한글을 공부하고 있다니 새삼 놀라왔다.

<젯다 시내의 한 유명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사우디 청년, 그는 유튜브에서 한글을 독학했다고 한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현지 사우디에서 일고 있는 한국 바라기 열풍은 잔잔한 듯 동시에 강하게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 한국이 신선한 충격이듯, 그들의 변화를 지켜보는 통신원에게도 신선함이 전해진다. 특히 2019년도 여름에 이곳 젯다와 수도 리야드에서 열렸던 슈퍼주니어, BTS 콘서트에서 보여 준 것과 같은 수많은 아랍 여성들의 꿈틀거리는 열정과 에너지가 얼마나 더 영향력 있게 사회 곳곳으로 퍼져 나갈 수 있을지, 그로 말미암아 어떤 변화가 일지 사뭇 기대하는 바가 크다.
	
	

통신원 정보

성명 : 박용석[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사우디아라비아/젯다 통신원]
e-mail : jeddah2020@kofice
약력 : 현) Talaea Al-Bader Est. 한국무역담당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