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 및 이민제도가 없는 말레이시아는 2002년부터 10년 단위로 갱신 가능한 말레이시아 장기거주비자(MM2H, Malaysia 2nd Home) 정책을 추진해왔다. 외국인도 토지와 주택 소유가 가능하고 다양한 세제 혜택도 받을 수 있는 데다가 재정 조건만 충족하면 되기 때문에 많은 외국인이 MM2H 비자로 말레이시아에 체류했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재정 능력 조건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건을 개정해 비자 발급 문턱이 높아졌다. 8월 11일 말레이시아 정부는 지난해부터 신규 접수가 중단되었던 MM2H를 오는 10월 1일부터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MM2H 기존 비자 발급 조건인 월 소득 1만 링깃(약 300만원)을 4만 링깃(약 1,000만원)으로 변경하고, 예치금은 기존 최대 30만 링깃(약 1억원)에서 100만 링깃(약 2억 8,0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유동 자산 증명 조건은 기존 최대 50만 링깃(약 1억 3,000만원)에서 150만 링깃(약 4억 2,000만원)으로 변경했다. 이밖에도 기존에는 없던 부양가족 당 예치금액 5만 링깃(약 1,300만원)과 비자 처리 수수료 최대 5,000링깃(약 150만원) 등을 추가하며 소득 기준을 강화했다. 정부는 이런 내용의 비자 제도 개선책을 오는 10월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10년 단위로 갱신 가능한 말레이시아 장기거주비자(MM2H, Malaysia 2nd Home) 정책 - 출처: ExpatGo>
말레이시아 정부는 MM2H 발급 대상자 수를 말레이시아 인구의 1%로 제한하고, MM2H 프로그램을 통해 경제 회복 전략의 일환으로 삼기 위해 비자 조건을 개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2021년 기준 말레이시아 MM2H 비자 소지자는 57,478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인구수 제한은 표면적 이유라는 주장이 우세하다. 그보다는 고소득자를 늘려 투자도 늘리고 경제 성장을 꾀하기 위한 이유로 분석된다. MM2H 비자 기준이 강화되면서 한국 교민들이 받는 피해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MM2H 비자는 중국 다음으로 한국인이 많이 받아온 비자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 신청자는 2017년부터 급격하게 늘어나 2016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했다. 2017년 MM2H 신청자는 중국(1,495명)에 이어 449명으로 두 번째로 많았다. 또한 한국은 2002년부터 2018년까지 누계 비자 발급 순위 5위 국가로 누적 2,378명이 MM2H 비자를 발급받았다. 이는 전체 발급자의 5.6%를 차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는 10월부터 현행 제도보다 까다로운 조건으로 규정이 변경되면서 한국 교민 대다수는 이주 또는 귀국을 결정하는 분위기다. 특히 기존 MM2H 비자 보유자도 새 기준에 맞춰 소득 수준을 증빙하지 못하면 갱신할 때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이주를 결심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2002-2018 MM2H 비자 발급 국가별 순위. 한국은 누계 비자 발급 순위 5위 국가다 - 출처: MM2H 홈페이지>
말레이시아 한국 상공회의소(KOCHAM)는 최근 한국인 MM2H 소지자의 입장을 말레이시아 산업통상부, 내무부, 문화관광부 등 당국에 전달하면서, 비자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인 교민들은 “기존 MM2H 소지자에 대한 갱신 조건은 완화할 필요가 있다”, “소득 증빙을 위해서는 월급 천만 원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데 이민지가 부담하기에는 높은 수준이다”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말레이시아에 체류하는 다른 국적의 외국인들도 마찬가지로 비자 발급 조건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 MM2H 비자를 발급받아 9년째 말레이시아에 체류 중인 제임스는 “말레이시아에 주거용 부동산을 구입했고 현재 자녀들도 학교를 다니고 있다”며 “당장 예치금을 구하지 못하면 아내와 자녀를 두고 홀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MM2H 비자를 받아 말레이시아에 은퇴한 남아프리카공화국 국적의 알빈도 “급여 천만 원, 예치금 3억원의 재정 증빙은 말도 안 되는 조건이다”라며 “태국 등 말레이시아와 비슷한 국가 체류 비자를 알아볼 계획이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는 코로나19로 경제 위기를 맞으면서, 외국인들의 비자 발급 조건을 대폭 강화했다. 태국 등 이웃 국가가 투자이민제도를 도입해 세제를 면제하거나 감면하는 정책을 펼치는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말레이시아는 그동안 MM2H 비자를 도입하여 침체된 부동산 건설 경기를 살리고 관광업을 진흥하면서 각종 수익을 거뒀다. 말레이시아부동산에이전트(MIEA)를 비롯해 말레이시아중국상공회(MCCC) 등도 “2018년 중국인이 취득한 주거용 부동산은 전체 주거용 부동산의 3/4에 달한다”며 “비자 조건 강화는 말레이시아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비자 조건 강화로 인한 외국인 유출로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정부는 이 위기상황을 어떻게 넘길 것인지 충분히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참고자료 《The Edge Market》 (21. 9. 1.), https://www.theedgemarkets.com/article/heated-discussions-stricter-mm2h-conditions
성명 : 홍성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말레이시아/쿠알라룸푸르 통신원] 약력 : 현) Universiti Sains Malaysia 박사과정(Strategic Human Resource Manag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