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최대 방송사인 《글로부(Globo)》가 지난 3개월간 역대 최저 시청률을 경신하며 방송계에 빨간 경고등이 켜졌다. 특히 대표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황금 시간대의 일일 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 시청률이 처참하게 무너지면서 팬데믹 이전으로 복귀하겠다는 목표에 먹구름이 끼었다. 참신하지 못한 드라마 내용을 문제 삼는 일부 언론기사도 있었지만, 팬데믹 이후 많은 시청자들이 텔레비전에서 온라인으로 시청 플랫폼을 옮겨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브라질 성인 약 65%가 한 개 이상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애용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브라질에는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 디즈니 플러스, HBO 맥스, 글로부 플레이, 텔레시네, 애플 티브이 등이 스트리밍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이러한 시장의 판도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대표적인 작품이 올해의 대히트작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다. 올해는 사회적 현상을 일으켰다고 할 만큼 한류의 성과가 돋보이는 한 해였다. 작년 <기생충>에 이어 <오징어 게임>, 가수 방탄소년단 성공 이후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 문화 트렌드로 부상했다. 달라진 국제적 위상은 브라질 내 한류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특히 넷플릭스를 켤 때마다 익숙한 한국어 포스터가 TOP10 순위권에 있는 것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한 해를 정리하는 기분으로 지난 일 년간 브라질 넷플릭스 히스토리를 한번 정리해 보았다.
▣ 2021년 브라질 넷플릭스 주간 순위권 내 한국 드라마 영화 결산
(2020년 12월~2021년 12월 첫째 주)
작품 | 분류 | 공개날짜 | 브라질 주간 TOP 10 기록 | 최고 순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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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홈 | TV Show | 2020년 12월 | 2020년 52주 차 | 4위 |
승리호 | Movie | 2021년 2월 | 2021년 6주 차 | 1위 |
좋아하면 울리는 | TV Show | 2021년 3월 | 2021년 10주 차 | 10위 |
런 온 | TV Show | 2021년 3월 | 2021년 15주 차 | 9위 |
킹덤: 아신전 | Movie | 2021년 8월 | 2021년 30주 차 | 3위 |
오징어 게임 | TV Show | 2021년 9월 | 2021년 38주 차~46주 차(9주간) | 1위 |
마이네임 | TV Show | 2021년 10월 | 2021년 42주 차, 43주 차 | 5위 |
갯마을 차차차 | TV Show | 2021년 10월 | 2021년 47주 차, 48주 차 | 5위 |
지옥 | TV Show | 2021년 10월 | 2021년 47주 차, 48주 차 | 2위 |
※ 출처: flixpatrol.com, TOP 10 on Netflix in Brazil in 2021 지난 1년간 넷플릭스 순위 기록을 보면 전반적으로 한국 작품이 순위권에 빈번하게 등장하고 특히 <오징어 게임>이후 순위권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초에 공개된 영화 <승리호>와 드라마 킹덤의 에피소드격 영화 <킹덤: 아신전>은 공개되자마자 높은 순위에 올랐다. 독특한 소재, SF, 좀비 액션물이라는 마니아적 장르와 인기 유명 배우들의 등장은 팬들의 관심을 끌었다. 또한 한류 드라마의 저력이라 할 수 있는 로맨스물도 서서히 순위에 보이기 시작했다. <좋아하면 울리는>, <런 온>은 공개 첫 주 각각 10위, 9위에 머물렀다. 작년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입소문을 타고 화제가 되었음에도 순위권에는 들지 못했던 것과 비교하면 긍정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한류 팬들에게 많은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빈센조>는 일일 차트에 이틀간 오르긴 했지만 아쉽게도 주간 순위에는 오르지 못했다. 이처럼 좋은 작품에 대한 높은 관심은 기존 한류 소비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나타나는 편이지만 있지만, 바로 며칠 후 반짝하고 사라지는 순위를 보면 여전히 먼 일반 대중과의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오징어 게임>의 장기 순위 집권은 더욱 의미가 크다. 기존 한류 소비자를 넘어 일반 대중들이 낯섦의 장벽을 허물고 한국 콘텐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대세를 이루었다는 점이 그러하다. 이후 공개된 <마이네임>, <지옥>, <갯마을 차차차>가 2주 연속 순위를 기록한 것도 그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킹덤: 아신전>, <오징어 게임>, <지옥> 같은 자극이 강한 장르성 작품으로 대중들에게 참신함과 오락성을 인정받았다면, 서정적인 일상물 <갯마을 차차차>의 선전은 시청자층의 폭을 넓히고 전보다 더 대중적인 관심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갯마을 차차차' 마지막 화 공개 전날, 브라질 시청자들의 아쉬움을 표현한 밈. “화났어?”, “아니, 세상이 무너진 거 같아. 희망과 꿈이 사라졌어.” - 출처: Youtube Netflix Brasil(21.12.9)>
실제로 최근 주변으로부터 한국 드라마를 본다는 지인들이 늘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이때 지인들이란 기존의 케이팝, 한국 드라마 팬이 아니고 팬데믹 이전까지 한국에 관심이 전무했던 사람들을 지칭한다. 아래는 직접 만난 리우데자네이루 사람들의 이야기다. 59살 아나 씨는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본 <효리네 민박> 시리즈를 보고 한국 사회 속 인간 관계에 매료되어 팬데믹 동안 한국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아나 씨는 우연히 자신의 동료와 헬스장 트레이너도 집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 추천으로 팬데믹 동안 처음으로 한국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L S 소아레스 씨는 지난 1년 반 동안 거의 20편에 육박하는 드라마를 보았다. 이전에는 한국 문화와 사회에 아는 것이 전혀 없었지만, 문화 차이를 우아하고 친밀하게 그려내는 한국 드라마에 매료되었다. 최근 <오징어 게임>으로 처음 한국 드라마를 접한 사업가 히까르두 씨도 어린 조카가 예전부터 케이팝 팬이라는 것을 기억해 내고 한국 문화 콘텐츠의 성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한국 유학을 준비하는 대학생 호드리고 씨는 전부터 한국 드라마를 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 다녀온 어머니가 의사에게 한국 드라마를 추천받았다며 같이 보자고 하는 바람에 이미 본 드라마를 첫 화부터 다시 봐야 했다. 이후 어머니는 한국 드라마에 푹 빠지셨고 이제는 신작이 나오면 두 모자가 함께 보게 되었다. 장안의 화제라지만 <오징어 게임>은 너무 잔인해서 보기는 힘들고, 순위권에 올라온 <갯마을 차차차>가 눈에 띈다. 한국 드라마의 유명세에 우연히 시작한 잔잔하고 귀여운 드라마에 빠져들고 매기 씨는 이래서 한국 드라마를 보는구나 느꼈다고 한다. 팬데믹 전에는 한국 드라마 시청이 영어 자막과 해외 온라인 사이트 접근이 용이한 젊은 층 위주로 이루어졌다면, 스트리밍 서비스가 완전하게 안착된 지금은 클릭 몇 번이면 기계와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도 쉽게 한국 작품에 접근할 수 있게 된 점이 큰 기회로 작용했다. 또한 팬데믹 기간 한국 관련 소식가 현지 미디어나 입소문을 통해 오르내리면서 일반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점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콘텐츠에 긍정적으로 주목하는 지금, 좋은 작품들이 계속해서 나와 내년에도 성장세가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성명 : 서효정[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브라질/리우데자네이루 통신원] 약력 : 전) 서울여자대학교 의류학과 졸업 현) 리우데자네이루 YÁZIGI TIJUCA 한국어 강사 재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