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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네바 블랙무비영화제 집행위원장 마리아 바츠라비크(Maria Watzlawick)

2023-02-20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지난 1월 말 스위스 제네바에서 블랙무비영화제가 열흘간 개최됐다. 블랙무비영화제는 매년 스위스 영화제의 첫 선두주자이자 믿고 관람할 수 있는 여러 작품들이 소개되기에 독립영화 팬들의 기대감이 높은 영화제이다. 이번 블랙무비영화제에서는 세계 50여 개국에서 온 91편의 영화 중 54편이 상영됐다. 한국 영화로는 홍상수 감독의 <탑>과 <소설가의 영화>,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 그리고 홍성은 감독의 <혼자 사는 사람들>이 소개됐다. 올해 제24회를 맞이하는 블랙무비영화제는 한국 영화가 지금처럼 많이 알려지지 않은 1999년부터 매년 한국 영화를 소개해 현재까지 거의 180여 편에 가까운 작품들을 선보였다. 독특한 명성을 날리고 확고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블랙무비영화제의 집행위원장 마리아 바츠라비크(Maria Watzlawick) 씨를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제네바 블랙무비영화제 집행위원장 마리아 바츠라비크(Maria Watzlawick) - 출처: 제네바 블랙무비영화제 제공

<제네바 블랙무비영화제 집행위원장 마리아 바츠라비크(Maria Watzlawick) - 출처: 제네바 블랙무비영화제 제공>

블랙무비영화제 소개 부탁드립니다.
블랙무비영화제는 1991년 시작된 영화제로 초기엔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탐구로 영화, 음악, 그리고 사진 등을 소개했습니다. 1999년 제가 집행위원장을 맡으며 초대 콘셉트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습니다. 초창기 블랙무비영화제가 지향한 '상업적 배급이라는 일반적인 그늘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영화들을 소개한다(Les Films de sombre)'는 취지는 지키되 아프리카 대륙만이 아닌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등지의 영화를 선보이기로 했습니다. 즉 유럽과 영미권 영화만이 아닌, 평소에 잘 접하지 못해 생소한 국가의 영화를 소개하자는 뜻을 세웠습니다.

다행히 관객들은 저희 영화제를 통해 새로운 문화 경험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접한다는 것에 굉장한 기대와 만족을 느낍니다. 저희는 일반 영화관, TV, OTT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닌 새로운 기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나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소재로 제작된 작품을 소개합니다. 스위스 영화관에서는 영미권 영화가 약 80%, 프랑스 외 주변국의 영화가 약 15%, 그 밖의 국가에서 온 영화가 일부 상영되기에 관객들이 접할 수 있는 영화에 제한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저희 영화제에서는 독립영화를 잇달아 소개하기도 하는데 홍상수 감독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1999년부터 해마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으며 팬층도 꽤 두터운 편입니다.

연령층에 따라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에 대한 선호도가 다른가요?
일반적으로 젊은층은 흥행하는 상업영화를 선보이는 일반 영화관을, 중장년층은 예술 영화관을 선호하는 경향은 있습니다. 그러나 블랙무비영화제 관객들은 연령대와 관계없이 새로운 영화들을 접해 보고자 이곳을 찾습니다. 십 대부터 이십 대 초반의 관객들의 비율도 상당한데요. 호기심으로 친구들과 무리 지어 작품들을 관람하는 모습입니다. 상업영화와 달리 독립영화에서는 숨기거나 과장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 실제 인물과 사건을 보여주는 경향이 있어 함께 느끼고 공감할 수 있고 새로운 기법을 선보이는 매력도 있기에 선호도의 차이는 연령에 관계없이 개인의 취향인 듯싶네요.  

이번 블랙무비영화제에서 한국의 현실적인 모습을 잘 반영한 <혼자 사는 사람들>, <다음 소희>를 소개하셨는데요. 집행위원장님의 소견을 듣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2005년부터 부산영화제에 참석하고 있는데요. 참석할 때마다 다채롭고 다양한 한국 영화들을 접하고 옵니다. 올해도 저희 영화제에서 선보이고 싶었던 영화들이 더 있었으나 개봉 문제로 다 소개하지는 못했습니다. 홍성은 감독의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은 부산에서 관람하고 1년 이상을 기다려 저희 영화제에 올렸습니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혼자임에 익숙하고 편안한 것 같지만 사실은 내면의 불안함과 연약함을 감추기 위해 방어벽을 친듯한 경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그녀가 자신의 삶에 변화를 찾게 되는 모습들을 아주 섬세하게 잘 표현했습니다. 또한 영화 <다음 소희>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한 면을 보여줍니다. 특히 여형사의 등장과 함께 조사 과정을 통해 사회 시스템의 문제까지 그려내 흥미로우면서도 강렬한 울림을 전합니다. 두 영화 모두 상영관을 꽉 메울 정도로 반응이 좋아서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집행위원장님이 보시는 한국 영화의 특징은 어떻습니까?
한국 영화에는 많은 것이 내포돼 있습니다. 특히 현실적인 삶과 여러 각도에서 살펴본 사회문화의 모습이 투영돼 작품성이 아주 훌륭합니다. 그러나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 등 2000년대에 선보였던 미스터리, 범죄, 스릴러 장르의 영화가 뜸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상업영화 혹은 폭력성, 선정성의 수위를 낮추는 흐름으로 기울어졌다고 느껴져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붐으로 또다시 스크린을 통해 위와 같은 영화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네바 블랙무비영화제에 소개된 홍상수 감독의 '소설가의 영화' - 출처: 제네바 블랙무비영화제 제공

<제네바 블랙무비영화제에 소개된 홍상수 감독의 '소설가의 영화' - 출처: 제네바 블랙무비영화제 제공>

이번에도 어김없이 홍상수 감독의 작품 두 편을 소개하셨는데요. 매년 블랙무비영화제에 소개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그 자체로 특별합니다. 그의 작품들은 비슷한 듯 아주 달라 예술성에서도 아주 훌륭합니다. 다만 그의 작품은 개인의 취향이나 영화를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호불호가 나뉘는 경향이 있습니다. 블랙무비영화제에서는 데뷔 초반의 두세 편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개했습니다. 2008년 무렵에는 홍상수 감독이 직접 영화제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홍상수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담겨있으며 누군가는 그런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소설가의 영화>는 주인공 외 모든 인물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헤매다 우연하고 사소한 일상을 통해 다시금 영감을 얻는 과정을 그리는데요. 그 과정을 통해 홍상수 감독의 예술에 대한 시선이 제시됐다고 생각합니다.

블랙무비영화제에서는 꽤 많은 한국의 독립영화를 소개하고 있는데요. 스위스 관객들이 한국의 독립영화를 접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은 무엇인가요?
블랙무비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는 관객들에게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국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스위스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찾아오는 관객들도 많이 있습니다. 독립영화 대부분이 상업적인 이유로 영화제를 통해 관객들이 만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제를 통한 소개 이후 배급사가 정해지면 일반 극장에서 상영되기도 합니다. 2022년 홍상수 감독의 <인트로덕션>, 올해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스위스의 영화산업은 시장 규모가 작고 배급사에게 주어진 극장 상영의 시간이 짧아 어떤 면에서는 관객을 확실하게 확보한 영화제를 통해 몇 회에 걸쳐 선보이는 편이 더 효과적이기도 합니다.

사진출처: 제네바 블랙무비영화제 제공

통신원 정보

성명 : 박소영[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스위스/프리부르 통신원]
약력 : 현) EBS 스위스 글로벌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