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스위스 중부, 푸른 호수와 알프스의 풍경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어 관광 명소로도 유명한 툰(Thun)에 위치한 스타트업 갤러리(Startup Gallery)에서 2025년 첫 전시를 한국의 그라포스 5인의 작가들과 함께 시작했다. 전시 '한국 스위스에 닿다 2.0(Süd Koreaberührt die Schweiz 2.0)'은 한국 사진계에서 독창적 작품 세계로 주목받고 있는 김정현, 최수정, 김승환, 엄효용, 박경태 작가가 작품 30여 점을 선보이며 한국-스위스 문화교류의 새로운 장을 펼쳐냈다.
<스위스 툰 스타트업 갤러리에서 선보인 한국의 그라포스 5인의 전시 - 출처: 스타트업 갤러리 제공 >
다른 해외 국가와 같이 스위스에서도 이모저모로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터라 한국 예술인들이 보유한 또 다른 테크닉과 시선으로 그려진 예술은 스위스 관람객, 특히 동종 업계의 작가의 이목을 더욱 끌었으리라 싶다. 특히 이번 전시가 이곳 갤러리에서 두 번째 전시인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김정현 작가는 스위스와의 인연이 꽤 됐다. 그는 2022년 가을 툰 시그리스빌(Siegris) 레지던스의 아티스트 프로그램에 초대돼 두 달 남짓 작업하며 유럽의 예술인들과 교류했다. 당시 스타트 갤러리의 관장 나타라자 폰 알맨 씨와 친분을 쌓은 계기로 2023년 가을 그의 갤러리에서 '한국 스위스에 닿다' 첫 전시를 6인의 한국 사진작가들과 개최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김정현 작가는 두 나라 간의 전시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이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 스위스 툰 스타트업 갤러리에서 김정현 작가가 선보인 시아노타입 워크숍 - 출처: 통신원 촬영 >
김정현 작가는 전시에 참여한 최수정 작가와 함께 3시간에 달하는 시아노타입(Cyanotype) 워크숍을 선보였는데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전문 예술인들이 참석하며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시아노타입'은 깊은 청색 계열의 독특한 인화 기법으로 빛과 화학반응을 이용한 고전 사진 기법이라다. 19세기 유럽에서 발명된 테크닉이나 잘 알려지지 않았고 특히 현대 유럽 예술에서는 많이 쓰이지 않는 아날로그식의 기법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5인의 작가들은 '그라포스(Graphos)' 모임의 일원들이다. 이 모임은 벌써 10여 년 넘게 이어온 모임으로 '그라포스'란 그리스어로는 '빛을 그린다'는 뜻이다. 즉 '빛으로 사진을 만드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take a picture'가 아닌 'make a picture'로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의 작품들은 사진이라기보다는 회화로 보인다.
< 전시 오프닝 축하를 위해 베른 금창록 대사도 함께했다. 김승환, 박경태, 최수정, 금창록, 엄효용, 김정현 작가 - 출처: 김정현 작가 제공 >
김정현 작가는 사진의 사실적 특성을 탈피하며 카메라가 아닌 빛의 이동을 이용해 작품을 추상적 형태로 구현했는데 작가의 독특한 시각과 표현이 이색적인 형태로 재구성됐다. 최수정 작가는 이번 전시에 한국의 전통 문양에서 볼 수 있는 오방색과 꽃의 형상을 선보였는데 자신의 작품을 '밀레니엄 플라워'라고 소개했다. 500년 이상을 지내온 한국의 사찰과 궁, 목조 양식에서 볼 수 있는 조각된 꽃문양들이 고전 인화 기법으로 새롭게 창작됐다. 김승환 작가는 캡슐로 쌓인 수십 개의 알약을 작품의 소재로 활용해 독특한 패턴과 다양한 색상으로 배열하거나 커다란 형상으로 클로즈업해 추상적 형태로 재구성한 긴장, 경직, 몽환적인 분위기의 작품을 소개했다. 나무와 하늘을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는 엄효용 작가는 한 소재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촬영과 중첩을 반복해 응축시켜 마치 회화로 보이는 작품들이 숨을 쉬듯 빨려 들려 가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박경태 작가는 한국의 조계사, 명동성당, 창덕궁, 덕수궁 등의 명소가 시간의 축적과 함께 우리에게 주는 내면의 기억, 무의식, 스토리 등을 작품에 담아냈다. 이처럼 5인의 작가들이 선보인 작품 하나하나에는 사진이란 고정된 틀을 넘어 작가들의 실험과 도전의 노력이 오랫동안 새겨져 자신만의 언어와 색깔로 각자의 세계가 구현됐다. 사실 스위스에서 한국 예술인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쉽지 않다. 아트 바젤과 같은 국제아트페어나 시립박물관의 초청이 아닌 이상 개인 작가들의 전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의 작가들은 누구나 해외에서 전시를 꿈꾸고 있다. 국제 무대에 한국의 예술을 알리고자 소망한다. 그러나 현실에는 여러 난관이 남아있다. 먼저 해외 갤러리와의 협업 과정에서 언어 장벽이 존재하고 갤러리 측과 협의 시간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뿐만 아니라 재정적인 투자도 필요하다. 항공료, 작품 운송비와 보험료, 전시 공간 대관료, 홍보 비용, 숙박비 등을 지원받기가 쉽지 않기에 작가들이 직접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전시를 추진한 김정현 작가는 "해외 전시는 예술적 도전이라는 매력적인 타이틀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현지 네트워크, 전시 공간 섭외, 작품 운송, 경비 등 많은 부분을 아티스트 스스로가 발로 뛰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의 아티스트들이 국제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 확대, 현지 갤러리 및 기관과의 협력 강화, 정부 및 민간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과 네트워크 확대가 절실히 필요할 듯싶다.
사진출처 - 통신원 촬영 - 스타트업 갤러리 제공 - 김정현 작가 제공
성명 : 박소영[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스위스/프리부르 통신원] 약력 : So! Kimchi & Swisskimchi 공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