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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맞선> 리메이크 영화 폭망시킨 인도네시아 한류 팬덤의 위력

2025-03-13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인도네시아 영화 <사업제안(A Business Proposal)>은 동명의 한국 웹툰과 드라마 <사내맞선>을 리메이크한 것인데 은막에 오르기도 전 보이콧 위협을 받았고 개봉 후 며칠 버티지 못하고 상영이 종료됐다. 흥행에도 참패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남자 주인공 아비자르 알 기파리(Abidzar Al Ghifari)가 한국 콘텐츠를 사랑하는 다양한 팬들, 특히 원작 드라마 <사내맞선>의 팬들을 모욕하고 폄하해 한류 팬들을 들쑤셔 놓았기 때문이다. 이미 2000년 전후로 강하게 불기 시작한 한류로 인도네시아에서도 한류 팬들은 대체로 10대에서 50대까지를 망라하는데 한류 팬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여야 할 2001년생 남자 주인공이 오히려 그들의 뺨을 냅다 갈긴 것과 다름없는 행동을 한 것이다. 원작의 강태무를 연기한 아비자르가 영화 홍보를 위해 미디어 인터뷰를 하면서 "저의 캐릭터를 발전시키고 싶어 원작 드라마의 첫 번째 에피소드 일부만 본 후 나머지를 보지 않았다."고 얘기를 한 것까지는 문제없었다.

하지만 "K-드라마 팬들은 광신적"이라고 말한 지점에서 그는 이미 선을 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나에 대한 항의와 비판엔 관심도 없다."면서 "그런 이들은 나중에 시사회에 초대되지 않을 것"이라 말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한국 원작 리메이크인 영화 <사업제안>을 보러 올 사람들 대부분은 한류 팬들일 터였는데 오만한 젊은 배우가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나락에 빠뜨리는 순간이었다. 싸잡아 모욕을 당한 한류 팬들은 이를 갈았다.

< '사업제안(A Business Proposal)' 포스터 - 출처: IMDb>

여론이 돌아서며 비난이 빗발치자 제작사인 팔콘픽쳐스가 먼저 공개 사과에 나섰고 뒤이어 아비자르도 "이번에 큰 교훈을 얻았다."며 고개를 조아렸지만 이미 상황은 되돌릴 수 없었다. 공개 사과가 나온 후인 2월 14일 현지 매체 더틱닷컴에서 소개한 팬들의 반응은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주연배우도 함께 일한 20명의 아티스트와 100명의 제작진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데 (영화를 보이콧하는) 관객들이 굳이 그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질 필요가 있나요?", "용서할 수 없어요. 난 그냥 광신도 할래요. 이 영화는 보이콧!", "아무도 자기 영화 안 볼까 봐 겁먹은 모양이네.", "볼 생각 없어요. 당신네 배우 태도가 최악이에요.", "남자주인공이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실수를 해요. 이미 수습하긴 늦었어요."

2025년 2월 6일 개봉한 이후 팬들로부터 이 같은 반응을 얻은 영화 <사업제안>은 불과 1주일도 되지 않아 스크린에서 내려와야 했다. 인도네시아 영화제작사들은 대개 개봉 첫날 수만 혹은 수십만 명의 관객이 들었다며 이를 별도의 포스터로 만들어 홍보하곤 하는데 팔콘픽쳐스는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홍보하기에 첫날 전국 관객 6,000명이란 숫자가 너무 보잘것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개봉 둘째 날부터 전국 상영관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는 스크린 수가 급격히 줄어 이날 자카르타 지역의 시네마 21(Cinema XXI) 영화관 체인에서 <사업제안>을 상영하는 상영관이 17개로 줄었다. 시네폴리스(Cinépolis) 영화관 체인 상황은 더욱 처참해 <사업제안>을 상영하는 스튜디오가 대부분 텅텅 비었다. 개봉 셋째 날에는 수십 개의 영화관이 있는 자카르타와 반둥에서 <사업제안>을 상영하는 곳은 각 5곳과 3곳으로 더욱 줄어들었다. 보이콧 움직임은 IMDb의 영화 페이지로도 확산됐다. 네티즌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사업제안>에 가장 낮은 평점인 1점을 부여했다. 2월 14일 기준 영화 <사업제안>의 평균 평점은 1점에 머물렀다.

< '사업제안' 별점 페이지 - 출처: IMDb >

인도네시아의 영화 관객 데이터를 비공식 집계하는 민간 웹사이트 시네포인트(Cinepoint)에 따르면 2월 14일 기준 영화 <사업제안>은 2만 874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고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가 개봉하면서 <사업제안>은 그나마 몇 개 남지 않았던 나머지 스크린마저 모두 잃고 말았다. 평균 티켓 가격을 4만 루피아(약 3,500원), 스튜디오가 티켓 판매 수익의 50%를 얻는다고 가정할 때 이 영화의 흥행 수입은 4억 1,700만 루피아(약 3,654만 원) 정도로 추산된다.

그리 스케일이 크지 않은 영화라 해도 요즘 물가가 많이 오른 인도네시아에서 웬만한 영화를 한편 찍는 제작 비용이 수십억 루피아에 달하는 것이 보통이다. 인도네시아 영화계의 속설에 따르면 유료 관객 30만 명이 최소 손익분기점인데 앞서 계산처럼 티켓 가격을 4만 루피아로 보면 12억 루피아(약 1억 500만 원) 정도 선이다. 이 영화는 완전히 망했다. 영화 제작비는 물론 그에 맞먹는 마케팅과 홍보비용을 거의 뽑을 수 없게 됐다. 이 영화가 구설수에 오르지만 않았다면 일반적인 한국 영화 리메이크 작품들이 보였던 40만~150만 정도의 관객이 들었을 터인데 말이다.

이번 사태는 남주 한 명의 오만한 발언이 어떤 파국을 가져올 수 있는지, 온건하게 흐르는 물결과 같던 한류 팬들이 어떻게 영화 한 편을 완전히 집어삼키는 거대한 소용돌이로 변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 됐다. 한류 팬들을 광신도라 여겼던 아비자르 알 기파리는 속으로만 품고 있어야 했을 극단적인 편견을 입 밖에 낸 탓에 그가 출연하는 영화나 드라마들은 당분간 심상치 않은 위기를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CNN Indonesia》 (2025. 2. 14). Kenapa Film A Business Proposal Diboikot hingga Flop?, https://www.cnnindonesia.com/hiburan/20250214151049-220-1198361/kenapa-film-a-business-proposal-diboikot-hingga-flop/2
- IMDb, https://www.imdb.com/title/tt35295730/
- 시네포인트(Cinepoint), https://cinepoint.com/#/pages/directory/detail/2871

통신원 정보

성명 : 배동선[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인도네시아/자카르타 통신원]
약력 : PT. WALALINDO 이사, 작가,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