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미국 대표 심리학 전문 매체 《Psychology Today(사이콜로지 투데이)》에 한국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를 조명하는 인상적인 글이 실렸다. 이 글은 시애틀 퍼시픽 대학교(Seattle Pacific University) 심리학 교수이자 문화·종교·심리의 교차점에서 연구를 이어온 한국계 미국인 심리학자 폴 영빈 김(Paul Youngbin Kim) 박사가 집필한 것으로 한국 드라마가 보여주는 '셀프 컴패션(self-compassion)', 즉 자기 연민과 감정 수용의 힘을 진지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학계와 대중 모두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글은 철학자이자 《Psychology Today》의 기고자 모니카 빌하우어(Monica Vilhauer) 박사의 검토를 거쳐 실렸다. 빌하우어 박사는 오랫동안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친 뒤 일상 속 삶의 방향성과 존재론적 고민을 탐구하는 '큐리어스 소울 필라소피(Curious Soul Philosophy)'를 설립해 철학 상담을 이어오고 있는 인물이다. 심리학 전문 매체에서 이처럼 검토자를 두는 이유는 민감하거나 복합적인 주제에 대해 내용의 신뢰성과 이론적 적합성을 확보하고 대중성과 학문성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빌하우어 박사의 검토 참여는 김 교수의 글이 감성적 반응을 넘어 학문적 타당성을 갖춘 분석임을 보여주는 근거이기도 하다.
< 미국 대표 심리학 전문 매체 'Psychology Today'에 실린 '폭싹 속았수다' 관련 기사 - 출처: 'Psychology Today' >
흥미로운 점은 김 교수가 <폭싹 속았수다>에 대해 3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연속해서 글을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3월 24일에도 "삶이 쌉싸름할 때에는 사람들에게 기대세요(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 Turn to Your People)"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공동체적 연대와 정서적 연결의 힘에 주목했다. 부모의 부재, 자녀의 죽음, 가난 속에서도 애순이 고립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웃과 마을 사람들, 확장된 가족들의 지지 덕분이라는 해석이었다. 이는 심리학과 테라피가 강조하는 사회적 지지의 힘과 정확히 맞닿아 있으며 김 교수는 "이 드라마는 우리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진실을 고요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들려준다."고 평했다. 한 달 간격으로 두 편의 칼럼을 잇따라 발표할 만큼 <폭싹 속았수다>는 한 심리학자의 내면을 깊이 움직였고 그 감동이 전문적 담론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시애틀 퍼시픽 대학교의 김영빈 교수 - 출처: 'Psychology Today' >
김 교수는 문화심리학과 종교심리학을 중심으로 연구를 이어온 학자다. 그는 특히 동양 문화, 그중에서도 한국문화가 집단주의적 전통 속에서 자기희생을 미덕으로 삼는 문화적 기류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해왔으며 이번 글에서도 바로 그 문화적 배경 안에서 <폭싹 속았수다>의 미덕을 조명한다. 드라마가 전하는 주요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바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고 삶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살아가는 태도다. 김 교수는 이 드라마에서 등장인물 애순과 관식이 겪는 자녀의 죽음이라는 지극히 고통스러운 사건을 예로 들어 이들이 그 비극을 잊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끌어안으며 살아가는 방식이 바로 '셀프 컴패션(self-compassion)'의 정수라고 설명한다. 김 박사는 <폭싹 속았수다>의 서사를 통해 셀프 컴패션 이론의 세 가지 핵심 요소를 설명한다. 이는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Kristin Neff, 2003)가 제안한 프레임으로 첫 번째는 자신에게 친절함을 베푸는 것, 두 번째는 고통이 인간 보편의 경험임을 인식하는 것, 마지막으로는 고통에 압도되지 않도록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중에서도 특히 세 번째 요소, 즉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삶을 이어가는 균형감각을 <폭싹 속았수다>가 섬세하게 보여준다고 평한다. 드라마는 자녀의 죽음 이후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슬픔 속에서도 웃고 사랑하고 살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말없이 큰 이야기를 들려준다. 관객에게 고통을 부정하지 않되 그 고통 속에서도 삶은 지속된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힐링 드라마'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김 박사는 "삶의 고통이 오히려 기쁨의 순간들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고 말하며 "애순과 관식의 삶이 고통과 기쁨, 상실과 사랑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통합적 감정 수용의 태도는 심리학적 회복탄력성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한국 드라마의 세계적 인기는 이제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징어 게임>이나 <더 글로리>처럼 긴장감 넘치는 서사도 인기를 끌었지만 <폭싹 속았수다>는 전혀 다른 결의 감동을 준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특별한 이유는 강렬한 갈등보다 일상 속의 무게와 사람 사이의 온정을 부드럽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포스터 - 출처: 넷플릭스 >
김 박사는 이 작품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정서적 피로감 속에서 특히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현대인은 스트레스와 불안, 과중한 경쟁 속에서 살아간다. 심리적 고립감이 커지고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고 돌보는 문화는 부족하다. 이런 가운데 <폭싹 속았수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정서적 안전 기지처럼 기능한다." 특히 미국에 거주하는 아시아계 혹은 한국계 이민자들에게는 이 드라마가 더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김 박사는 자기희생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적 배경에서 자라온 이들이 자신에게 연민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강조하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폭싹 속았수다>가 더욱 귀한 메시지를 전한다."고 말한다. 김 박사의 글은 《Psychology Today》라는 영향력 있는 심리학 매체에 실렸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단순히 한 드라마에 대한 개인적 감상을 넘어 한국 드라마가 심리학적 연구와 임상적 논의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자료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K-드라마가 더 이상 엔터테인먼트 차원을 넘어 삶의 복잡한 감정을 정제된 언어로 풀어내는 '심리적 담론의 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포스터 - 출처: 넷플릭스 >
<폭싹 속았수다>는 "슬픔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며, 때로는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시청자들에게 말한다. 고통을 무시하거나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끌어안고 삶을 지속하는 방식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회복이고, 김 교수가 말한 '셀프 컴패션(self-compassion)'의 핵심이다. K-드라마는 현재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글로벌 콘텐츠 경쟁 속에서도 한국 드라마가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한 자극이나 서사 구조뿐만이 아니다. 그 밑바닥을 흐르는 '정서의 결' 즉 타인을 이해하고, 자신을 품는 따뜻함이 바로 세계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다. <폭싹 속았수다>는 그 정서의 결을 가장 섬세하고 정직하게 드러낸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며, 김영빈 박사의 글은 그 가치를 학문적으로도 뒷받침하고 있다. 지금 K-드라마는 단순한 문화 현상이 아닌 치유와 공감, 자기 돌봄의 언어로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Psychology Today》 (2025. 4. 28). “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 Be Kind to Yourself,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culture-religion-and-psychology/202504/when-life-gives-you-tangerines-be-kind-to-yourself - 넷플릭스
성명 : 박지윤[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미국(LA)/LA 통신원] 약력 : 『나의 수행일지』 저자, 마인드풀 요가 명상 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