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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자부심과 불편한 진실 사이, 노벨상과 헝가리 문화 정책

2026-01-13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헝가리의 자부심'과 '불편한 진실' 사이, 노벨상과 헝가리 문화 정책

<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Krasznahorkai László) - 출처: 헝가리 시사 경제 주간지 '헤티 비라거즈더샤그(Heti Világgazdaság, HVG)' 홈페이지 >

지난 12월 10일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Krasznahorkai László)가 스톡홀름(Stockholm)에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헝가리 언론들은 일제히 이를 ‘국가적 자부심의 순간’이라는 표현으로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이 영광의 이면에는 매우 흥미로운 역설이 존재한다. 수상자인 크러스너호르커이는 현 오르반(Orbán) 정권의 국가주의적 정책에 가장 날카롭게 맞서 온, 헝가리의 진보 지식인 사회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수상은 민족 정체성 강화를 기치로 내건 오르반 정부의 문화 정책에 매우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자신과 가장 먼 곳에 서 있던 예술가의 세계적인 성공에 대해 정부는 과연 이를 어떻게 자신들의 '문화적 성과'로 포용할 수 있을까?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수상과 이를 둘러싼 헝가리 정부의 반응은 예술과 정부의 문화 정책 사이 간 복잡한 관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창이 되고 있다. 

헝가리 문학 수출의 첨병, '페퇴피 문화 기관(Petőfi KulturálisÜgynökség, PKÜ)'
현재 헝가리 문학의 해외 진출을 이끄는 핵심 기관은 '페퇴피 문화 기관(Petőfi KulturálisÜgynökség, PKÜ)'이다. 2020년경 오르반 정부의 '문화적 패권' 강화 전략의 일환으로 설립된 이 기관은 현대 문학의 생산, 유통, 그리고 해외 수출을 전담하는 실행 기구다. 페퇴피 문학 박물관(Petőfi Irodalmi Múzeum, PIM)의 관장이자 정부의 강력한 신임을 받는 데메테르 실라르드(Demeter Szilárd)는 PKÜ를 포함한 거대 문화 조직을 이끌며 정부의 문화 정책을 일선에서 수행하고 있다. PKÜ는 막대한 예산을 바탕으로 외국 출판사에 번역료를 지원하고, 해외 번역가를 부다페스트(Budapest)로 초청해 장학금을 제공하는 등 헝가리 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공격적인 사업들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현재 현지에서는 이 기관의 역할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자국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비교적 적은 헝가리에서 자국 문학의 생존을 위해 전문적인 마케팅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 정부의 민족주의 이념에 부합하는 작가들을 우선적으로 지원하면서 문화계의 정치적인 편향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함께 존재한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노벨상 수상 그리고 정부의 대응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오르반 정권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 중 한 명인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수상은 정부 입장에서 다소 불편한 소식일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 산하 기관인 PKÜ의 대응은 신속했다. 노벨 문학상이 발표되고 난 이틀 뒤 10월 11일, 세계 최대 규모의 프랑크푸르트(Frankfurt) 국제 도서전 현장에서 데메테르 실라르드 관장은 문학 전문지 ≪쾨니베시 머거진(Könyves Magazin)≫와의 인터뷰를 통해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노벨상은 헝가리 문학에 주어진 거대한 기회”라며 공식적인 축하를 보냈다. 그는 “정치적 견해는 다를 수 있으나, 그의 문학적 성취는 헝가리 전체의 자산”이라고 언급하며, 작가의 비판적인 성향과는 거리를 두면서도 그의 영광을 국가의 영광으로 포용하는 전략을 취했다. 또한 데메테르 실라르드 관장의 말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은 PKÜ가 그간 추진해 온 해외 번역 지원 사업의 결실임을 간접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작품 다수가 PKÜ의 지원을 통해 영어, 독일어권에 번역되면서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진보 언론의 냉철한 시선
하지만 진보 성향의 매체들은 정부의 이러한 자화자찬에 대해 냉철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텔렉스(Telex)≫는 심층 칼럼을 통해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정부의 지원이 아니라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독립적이었기에 세계적인 거장이 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 매체는 그의 성공이 가능했던 핵심 요인으로 압도적인 번역의 질을 꼽으며, 국가적인 차원의 문학 진흥은 단순히 돈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번역 인력을 장기적으로 육성하는데 있음을 강조했다. 주간지 ≪HVG≫ 역시 그의 수상을 '내적 망명(Internal Exile)'의 승리로 묘사했다. 이어서 작가가 부다페스트의 화려한 사교계나 권력의 주변을 맴돌기 보다, 오히려 고립된 채 창작에만 몰두한 소위 '타협하지 않는 고고함'이 역설적으로 헝가리 문학의 보편성을 획득하게 한 원동력이라고 분석하며 정부의 문화 통제 기조를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던지는 시사점
헝가리의 이 같은 사례는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추진하는 한국문학번역원(Literature translation institute of korea, LTI Korea)의 역할과 비교해 볼 때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진다. 상대적으로 정치적인 독립성을 유지하는 LTI Korea와 달리, PKÜ는 정부 기조와 밀접하게 연동되며 헝가리 민족 정체성 강화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움직인다. 특히 작품보다 번역가 개개인에 대한 투자를 우선시하는 PKÜ의 전략은 주목할 만하다. PKÜ는 단순히 번역료를 지원하는 것을 넘어 외국인 번역가에게 부다페스트에서의 삶을 제공하는 거주형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번역가들을 평생 헝가리 문학의 전도사로 만드는 인적 네트워크 전략으로서 한국 문학의 세계화 정책에도 참고할 만한 지점이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HVG≫, (2025. 10. 10). Parászka Boróka: Van valami nyugtalanító Krasznahorkai László Nobel-díjában.
https://hvg.hu/360/20251010_Krasznahorkai-Laszlo-Dogok-utja-mellett
- ≪Könyves Magazin≫ (2025. 10. 18.).  DemeterSzilárd: Krasznahorkai nem azért kapott Nobel-díjat, hogy kivetítsék az arcátegy ledfalra,
https://konyvesmagazin.hu/friss/frankfurti_konyvvasar_krasznahorkai_laszlo_nobel_dij_reakcio_demeter_szilard.html
- ≪Demokrata≫ (2025. 12. 10). Ez várKrasznahorkai Lászlóra a világ legszigorúbb díjátadóján, 
https://demokrata.hu/kultura/ez-var-krasznahorkai-laszlora-a-vilag-legszigorubb-dijatadojan-1105345/
- ≪HVG≫ (2025. 12. 10.). Krasznahorkai Lászlótszerencsére nem kezelték ki a furcsa kórból, amitől szenvedett. 
https://hvg.hu/360/20251210_krasznahorkai-laszlo-irodalmi-nobel-dij-atvetel-latnoki-eletmu-az-olumposz-fele
- ≪Telex.hu≫ (2025. 12. 11). 
Krasznahorkaielérte, hogy idén az irodalom ugyanolyan fontos legyen, mint a politika, aháború és a mesterséges intelligencia,
https://telex.hu/karakter/konyvespolc/2025/12/10/krasznahorkai-laszlo-irodalmi-nobel-dij-2025-hat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