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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의 예언자' 벨러 터르, 영원한 침묵에 잠들다

2026-01-22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향년 70세로 별세…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Krasznahorkai László)의 ‘영혼의 파트너십’을 추모하며
" <토리노의 말> 이후, 더 이상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
헝가리가 낳은 세계적인 거장 벨러 터르(Béla Tarr) 감독이 지난 1월 6일, 오랜 투병 끝에 향년 7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헝가리 국영 통신사(Magya Távirati Iroda, MTI)≫를 통해 그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인덱스(Index)≫, ≪텔렉스(Telex)≫ 등 현지 언론은 "헝가리 영화계의 결정적인 인물이자,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영화적 목소리를 잃었다"라고 일제히 애도했다.

시간을 조각한 '영화적 철학자'
지난해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Krasznahorkai László)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국내에서도 벨러 터르 감독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대표작 『사탄 탱고(Sátántangó)』를 7시간이 넘는 흑백 롱테이크(long take) 영화로 옮긴 이가 바로 벨러 터르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장시간 인내를 요구하는 벨러 터르의 영화는 국내에서는 소수의 예술 영화 팬들에게만 알려져 있었지만, 유럽에서 그는 시대를 대표하는 '영화적 철학자'로 평가받는다. 그의 타계를 맞아 헝가리 영화 전문지 ≪필름빌라그(Filmvilág)≫는 벨러 터르의 영화 세계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그의 죽음은 단순히 한 명의 감독을 떠나보내는 것을 넘어, 한 시대의 예술 정신이 막을 내렸음을 의미한다. 그의 영화는 서사를 따라가는 대신, 관객이 시간의 흐름을 육체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최면적 힘(hipnotikus erő)’을 가졌다."

극단적인 롱테이크(long take)와 시적인 흑백 화면을 통해 사회적 리얼리즘에서 출발,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절망을 탐구하는 그의 작품 세계는 7시간이 넘는 대작 <사탄 탱고(Sátántangó)>를 통해 정점에 달했다. 그러므로 벨러 터르는 ≪머저르너런츠(magyarnarancs.hu)≫의 평가처럼 "동유럽적 존재의 경험을 보편적 예술로 승화시킨 마스터피스(Masterpiece)"로 인정받으며 그는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2011년 베를린 영화제 심사 위원 대상을 수상한 <토리노의 말(A torinói ló)>을 끝으로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라고 스스로 은퇴를 선언하며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세 개의 별, 하나의 세계 –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Krasznahorkai László), 안드라시 발린트 코바치(Kovács András Bálint)와의 동행
벨러 터르의 작품을 접한 이들은 아마도 그를 고독한 은둔자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벨러 터르의 예술 세계는 결코 고독한 외딴섬이 아니었다. 그의 곁에는 같은 한 시대의 정신을 공유한 두 명의 동반자가 있었다.
헝가리 영화와 문학을 대표하는 두 거장, (좌)벨러 터르 감독과 (우)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작가의 1990년 모습

< 헝가리 영화와 문학을 대표하는 두 거장, (좌)벨러 터르 감독과 (우)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작가의 1990년 모습 - 출처: ‘에크코 폰 슈비호브(Ekko von Schwichow)’ 사진 모음 웹사이트 >

먼저 2025년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인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와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1980년대 중반, 두 사람은 부다페스트(Budapest)의 한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나 밤새도록 문학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깊은 우정을 쌓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협업을 넘어선, 그야말로 '영혼의 파트너십'의 시작이었다. 크러스너호르커이가 써 내려간 종말론적이고 끝없는 문장들은 벨러 터르의 롱테이크(longtake) 카메라를 통해 살아있는 이미지가 되었다. 주간지 ≪헤티 빌라그거즈더사그(HVG, Heti Világgazdaság)≫의 표현처럼 “두 사람은 헝가리 문화의 가장 깊은 어둠과 아름다움을 함께 발굴했다.” 한 사람은 쓰고 한 사람은 찍으며, 이들은 세상의 끝을 향해 함께 걸어간 예술적 동지였다.

그리고 이들의 여정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며 전 세계에 알린 이가 바로 엘테 대학교(Eötvös Loránd Tudományegyetem, ELTE)에 영화과를 설립한 영화학자 안드라시 발린트 코바치(Kovács András Bálint)교수이다. 저명한 영화감독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영화계 인사들과 교류했던 그는 젊은 시절부터 벨러 터르와 크러스너호르커이 두 사람 모두와 막역한 사이로 지내며 그들의 예술 세계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산증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명저 『스크리닝 모더니즘: 유럽 예술 영화, 1950-1980(Screening Modernism: European Art Cinema, 1950-1980)』을 통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영화사를 관통하는 모더니즘(Modernism)의 계보를 정리하고, 벨러 터르를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Michelangelo Antonioni)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를 잇는 동유럽 모더니즘 영화의 마지막 거장"으로 위치시켰다. 또한 대표적인 연구서 『더 시네마 오브 벨러 터르(The Cinema of Béla Tarr)』를 통해 터르의 영화가 단순히 지루하고 긴 영화가 아니라 사회주의 붕괴 전후 동유럽인들이 느꼈던 실존적인 고통을 '시간의 물질성'으로 조각해 낸 위대한 예술임을 증명했다. 코바치 교수는 "그의 영화는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외면하고 싶어 하는 진실을 직면하게 만든다"고 평하며, 터르의 예술적 가치를 세계 무대에 확고히 했다. 

벨러 터르의 죽음은 헝가리와 전 세계 영화계에 커다란 공백을 남겼다. 하지만 그의 유산은 여전히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상업적인 성공과 협상하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예술적인 비전을 끝까지 밀어붙였던 그의 '타협하지 않는 정신'. 이 고독하고 위대한 유산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승할 것인지는 이제 남겨진 자들의 과제가 되었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인덱스(Index.hu)》 (2026. 01. 06). Meghalt Tarr Béla, 
https://index.hu/kultur/2026/01/06/tarr-bela-meghalt-magyar-allami-operahaz-madach-szinhaz-filmrendezo-gyasz/
- 《텔렉스(Telex.hu)》 (2026. 01. 06). Béla Tarr, legendary Hungarian filmmaker dies aged 70,
https://telex.hu/english/2026/01/06/tarr-bela-has-died
- 《HVG(Heti Világgazdaság)》 (2026. 01. 06). A torinói lóután mit tudok még mondani?!”–Meghalt Tarr Béla, 
https://hvg.hu/kultura/20260106_meghalt-tarr-bela
- 《머저르너런츠(magyarnarancs.hu)》 (2026. 01. 06). 
Mondták neki, hogy hagyjon fel a filmezéssel, meg hogy a nézőellen dolgozik - Tarr Bélára emlékezünk, 
https://buly.kr/9tC9OeE
- ≪조 블로그 - 444(Jó Blog - 444)≫ (2026. 01. 07). 
Krasznahorkai búcsúzik Tarr Bélától: „Ki lesz itt a következő lázadó?”, 
https://jo.444.hu/2026/01/07/krasznahorkai-bucsuzik-tarr-belatol-ki-lesz-itt-a-kovetkezo-lazado
- Kovács, A. B. (2013). The Cinema of Béla Tarr: The Circle Close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 Kovács, A. B. (2007). Screening Modernism: European Art Cinema, 1950-1980.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