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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라(Cararra)의 대리석과 향토 음식

2025-06-16

주요내용

이탈리아 토스카나(Toscana)와 라치오(Lazio) 지방의 경계를 이루는 아펜니노 산맥(La catena degli Appennini) 북쪽에 자리한 카라라(Cararra)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리석 산지이자 풍부한 자연과 오랜 문화가 깃든 곳이다. 이 지역은 수백 년 동안 예술과 건축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으며 특히 자연이 빚어낸 흰빛 대리석이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아름다움 뒤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과 그로 인해 형성된 지역 문화가 숨어 있다.

카라라 대리석은 그 순수한 흰빛과 은은한 회색 결을 특징으로 한다. 자연광 아래서 반짝이는 광택과 부드러운 질감은 마치 하늘을 담은 듯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이 대리석은 고대 로마시대부터 채석이 시작됐으며 르네상스 시대 미켈란젤로가 다비드 상을 조각하는 데 사용한 재료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는 세계 각지의 유명 건축물과 조각품에 쓰이며 자연이 만든 예술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카라라의 대리석 채굴 현장. 첨단 기술과 장비를 활용해 과거 대비 안전하고 효율적인 채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카라라의 대리석 채굴 현장. 첨단 기술과 장비를 활용해 과거 대비 안전하고 효율적인 채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

그러나 이 아름다움은 결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채석 과정은 엄청난 육체적 고통과 위험이 수반된다.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채석 방식은 대부분 수작업에 의존했으며 채석장 내부는 좁고 미끄러워 무거운 망치와 끌을 들고 돌을 깎아내는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 현장이었다. 특히 높은 곳에서 절개하거나 무거운 대리석 덩어리를 끌어내는 과정은 목숨을 건 일이었다. 채석장 내에서는 땀과 먼지, 위험이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고된 노동은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낸 예술 작품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지역 문화의 중요한 일부가 됐다. 노동자들은 채석 과정에서 피로와 위험 속에서도 자부심을 느꼈으며 그들의 힘과 인내는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렇게 힘든 채석 노동은 자연과의 끊임없는 싸움과 협력 속에서 형성된 카라라의 전통 음식 문화에 깊게 반영돼 있다. 지역 사람들은 힘든 노동으로 인해 얻어진 자연의 선물을 존중하며 그와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음식에도 담아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라르도(Lardo)다. 라르도는 돼지의 등살 부위를 소금과 허브, 향신료로 숙성시켜 만든 얇게 썬 유지(脂肪)로 이 지역의 대표적인 향토 요리다. 자연에서 온 재료를 간단하게 가공해 만든 이 음식은 고된 노동을 견디는 노동자들에게 힘과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라르도는 일종의 '힘의 음식'으로 긴 노동시간 동안 몸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채석장 내에서는 간단한 빵과 함께 라르도를 얹어 먹거나 때로는 허브와 올리브유와 함께 곁들여 먹으며 재충전하는 모습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라르도가 올라가 있는 카라라 지역의 피자. 라르도가 피자의 맛을 풍성하고 고소하게 만든다

 < 라르도가 올라가 있는 카라라 지역의 피자. 라르도가 피자의 맛을 풍성하고 고소하게 만든다 - 출처: 통신원 촬영 >

또한 폴렌타 인카테나타(Polenta Incatenata)는 밀가루와 옥수수 가루로 만든 폴렌타를 여러 겹으로 쌓아내 끈적끈적하고 쫄깃한 식감이 특징인 전통 음식이다. '인카테나타'라는 이름은 '묶다', '연결하다'라는 의미로 여러 층이 끈적하게 연결된 모습이 마치 하나의 긴 끈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요리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구조와 자연재료의 조화로움이 돋보인다. 힘든 노동 후 단백하고 영양가 높은 식사로 노동자들이 힘을 내기 위해 자주 먹던 음식이다. 특히 쫄깃한 식감과 풍부한 맛은 자연과 노동의 결실을 상징하며 지역 공동체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역할도 한다.
카라라의 홍합 요리 사진

 < 카라라의 홍합 요리. 진한 토마토 소스에 신선한 홍합이 잘 어울린다 - 출처: 통신원 촬영 >

카라라는 해안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신선한 해산물 특히 홍합이 풍부하다. 지역의 전통 홍합 요리는 신선한 홍합을 올리브유, 마늘, 허브, 토마토와 함께 조리하는 간단하면서도 풍부한 맛이 일품인 요리다. 이 요리는 노동자들이 바닷가 근처에서 채석 작업 후 자연에서 얻은 신선한 해산물로 힘을 보충하는 데 자주 활용됐다. 홍합을 끓이거나 구워 먹는 방식이 일반적이며 때로는 향신료와 와인을 넣어 풍미를 더하기도 한다. 자연의 풍요로움과 바닷가 노동의 흔적이 담긴 이 요리는 지역 사람들의 삶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진 또 다른 문화적 유산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힘든 채석 작업에서 비롯된 강인함과 인내심을 음식의 재료와 조리법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자연의 힘과 인간의 노동이 어우러진 음식들은 자연과의 끊임없는 싸움과 인내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으며 그 속에 깃든 이야기를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처럼 카라라의 대리석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노동의 고통이 교차하는 산물이다. 자연이 만들어낸 흰빛 대리석이 보여주는 화려함 뒤에는 무거운 돌멩이와 위험한 채석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들의 인내심이 숨어 있다. 이 고된 노동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동시에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낸 예술작품이라는 자부심으로 승화됐다. 카라라를 방문한다면 자연이 만들어낸 대리석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는 고된 노동과 그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느껴보길 바란다. 자연과 노동, 그리고 문화가 어우러진 이곳의 이야기는 자연이 주는 선물과 그를 지키고 가꿔온 인간의 손길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줄 것이다.
사진출처
- 통신원 촬영

통신원 정보

성명 : 백현주[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이탈리아/피사 통신원]
약력 : 이탈리아 씨어터 노 씨어터(Theatre No Theatre) 창립 멤버, 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