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마닐라에서 피어난 오방색, ‘예술 입은 한복’ 전시
- 한복, 시공간을 넘어 필리핀과 교감하다 -

주필리핀 한국문화원(KCC)에서 한국 전통 복식의 미학과 현대 미술의 창의적 조형성을 다룬 특별전 ‘예술 입은 한복(Hanbok, Reborn as Art)’을 열어 한복 속에 내재된 아름다움을 필리핀에 알리고 있다. 한국문화원이 주최하고, 사비나미술관이 주관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이번 전시는 2026년 7월 10일부터 9월 26일까지 주필리핀 한국문화원에서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케이팝, 한국 드라마 등 대중문화 중심으로 형성이 되어온 필리핀 내 한류 열풍의 범주를 한층 확장하여, 한국 전통문화의 정체성과 현대 예술로 진화한 ‘한국 전통문화’의 깊이를 전달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사비나미술관은 예술과 과학, 패션, 환경 등 타 분야를 접목한 창의적인 기획전을 선보이는 대표 사립 미술관으로, 국내 최초로 가상현실(VR) 전시를 선제 도입한 디지털 아카이빙의 선구자이다. 주필리핀 문화원과 함께 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전통 의상인 한복의 문양, 색채, 소재, 형태를 현대 미술의 언어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회화, 미디어 아트, 설치 미술 등 한국 작가 18인의 작품 47점을 선보이며, 한복에 담긴 문화적 상징성과 시각적 아름다움을 조명한다. 관람객이 미니어처 한복으로 장식된 종이 복주머니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 공간도 함께 마련되어 있으며, 7월 24일부터는 매주 금요일 오후 1시 30분부터 3시 30분까지 ‘한복 프라이데이(Hanbok Friday)’가 진행되어, 관람객이 직접 한복을 입어볼 수도 있도록 구성됐다. 주필리핀 한국문화원 입구에 설치된 ‘예술 입은 한복(Hanbok, Reborn as Art)’ 안내판은 빨강, 파랑, 노랑이 어우러진 기하학적 한글 문양으로 세련되고 현대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전시 기간과 주최 및 주관 관련 정보가 한글과 영문으로 정갈하게 명시되어 있어 방문객에게 핵심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전시장 안쪽에는 한복을 차려입은 캐릭터 일러스트 기반의 ‘관람 에티켓(Exhibit Etiquette)’ 안내판이 설치됐다. ‘천천히 걷기(Walk slowly)’, ‘조용히 대화하기(Talk softly)’, ‘눈으로만 관람하기(Eyes only)’, ‘플래시 없이 촬영하기(Flash-free)’ 등 친근하면서도 친절한 안내 덕분에 전시장 내부는 차분하고 쾌적했다.

1층 체험관에는 정교한 자수와 색상이 어우러진 한복이 전시되어 방문객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한복의 아름다움을 입는 법이라고 적힌 안내판에는 한복 입는 법을 단계별로 나눠서 그림과 함께 보여주고 있었다. 이어서 ‘어른 한복’과 ‘어린이 한복’으로 구분된 연출 공간에서는 버선부터 바지, 저고리, 두루마기, 갓, 신발에 이르는 올바른 착용 순서에 대한 설명이 한국어와 영어로 자세히 적혀 있었다.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대님 매는 법, 고름 매는 법 등 생소할 수 있는 복식 절차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공부하는 모습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여성들이 쓰던 ‘족두리’와 ‘비녀’, 길게 늘어뜨리는 ‘앞댕기’, 그리고 신부의 얼굴을 가리던 ‘혼선’ 등 여성 장신구의 섬세한 자수 결이 눈길을 끌었다. 조선 시대 관리들이 착용하던 모자 ‘사모’ 와 접이식 부채 ‘접선’, 그리고 신랑 신부의 변치 않는 사랑을 상징하는 ‘나무기러기’와 ‘기러기보’는 한국 전통 사회가 가진 인문학적 깊이를 보여줬다. 조선 시대 사람들의 생애 주기와 기원이 담긴 장신구 및 소품들이 정갈하게 전시됐다. 첫돌이나 명절에 아이에게 씌우던 호랑이 모양 모자 ‘호건’과 알록달록한 ‘돌띠’, 비단 조각을 재활용해 조화로운 미를 이끌어낸 ‘조각보’는 자식의 건강을 염원하던 부모의 따뜻한 마음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의복에만 국한되지 않고, 조선 시대의 생활상과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예품까지 폭넓게 다뤘다. ‘한식’과 ‘뜨기와 집기’ 전시에서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사용하는 한국 고유의 수저 문화와 식사 예절을 소개하며, 음식을 나누는 시간 속에 담긴 가족과 자연의 철학을 깊이 있게 담아냈다. 이와 함께 식문화를 넘어 일상용품으로의 확장을 보여주는 전시 공간도 눈길을 끌었다. 전통 방짜유기 제조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브랜드 놋담의 놋쇠 괄사와 빗 등이 대표적이다. 하트형, 사과빗형, 튤립형으로 다채롭게 디자인된 방짜유기 괄사 제품들은 전통 공예가 현대 생활과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평가받았다.

전시장에서 만난 대학생 관람객 마리아 산토스(Maria Santos) 씨는 “한국 드라마에서 보던 한복이 단순한 옛날 옷이 아니라, 착용하는 순서와 장신구 하나하나에 정교한 예의와 의미가 담긴 문화유산이라는 점을 깨달았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한복을 입어보고 사진을 찍을 수 있어 한국 문화를 한층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일행인 호세 산토스(Jose Santos) 씨는 “한복을 주제로 하는 그림 및 설치 미술 등을 통해서 오래된 복식이 현대적인 예술작품으로 변모하는 모습이 좋았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앞서 호세 산토스 씨가 말한 것처럼 5층 다목적홀에는 현대 미술 작가들의 시선으로 재해석된 한복과 이러한 전통에서 영감을 받은 회화 및 미디어 아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비단 보자기의 팽팽한 주름과 반짝이는 노리개 매듭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한 김시현 작가는 보자기를 주제로 한 작품은 ‘복(福)을 싸서 선물한다’는 전통적인 정서를 감각적인 서양화 기법으로 풀어냈다. 또한 조선 시대 안방과 단청, 창밖으로 펼쳐지는 가을·겨울 풍경을 밝고 현대적인 팝아트 색채로 표현한 현대 회화 작품들은 한국의 전통 공간이 가진 미적 감각을 선보였다. 미디어 아트 코너 역시 방문객들의 발길을 오랫동안 묶어두었다. 김창겸 작가의 미디어 아트 작품 ‘한복 가든(Hanbok Garden)’ 은 대형 디스플레이를 통해 한복의 옷자락과 색채가 시공간의 흐름에 따라 화려하게 피어나는 모습을 선보였다. 또 다른 대형 화면에서는 경복궁, 하회탈, 고려청자, 백자, 화문석 등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들을 흑백 라인 아트로 배경화하고, 그 중심에 단아한 한복 차림의 인물을 배치하여 고전과 현대가 교차하는 독특한 미학을 연출했다.

디지털 기술과 결합은 체험 공간에서도 돋보였다. ‘디지털로 한복 입어보기(Wearing Hanbok As A Digital Experience)’ 키오스크에서는 관람객이 가상으로 한복을 입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화면 하단에 큐알(QR)코드를 배치해 문화원 소식을 전하는 바이버(Viber) 커뮤니티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구성했다. 디자인 분야에 종사하는 마크 라모스(Mark Ramos) 씨는 “전통 박물관 전시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보자기를 모티프로 한 극사실 회화나 화려한 미디어 아트가 어우러져 신선했다”며 “전통 복식이라는 유산이 과거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현대 예술가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주는 살아있는 예술이라는 점이 인상 깊었다. 필리핀의 전통 의상 역시 이러한 현대적 재해석 시도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주필리핀 한국문화원의 ‘예술 입은 한복’ 특별전은 과거의 유물에 현대적 생명력을 불어넣어 세계인과 소통하는 한국 문화외교의 성공적인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유물 관람의 틀을 깨고 전통 복식과 공예, 현대 미술,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복합 문화 전시로, 이러한 전시를 통해 필리핀 현지 대중이 한국 문화의 깊이 있는 정수를 체험하고, 양국 간의 문화적 공감대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마닐라 한복판에서 피어난 오방색의 아름다운 울림은 필리핀 내 한국 문화 저변을 다각도로 넓히는 단단한 토대가 될 것이다.
사진 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