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국내 패션 브랜드인 ‘헤지스(HEZZYS)’가 현지 진출 4년 만에 태국 시장 철수를 결정했다. 한류가 대중문화를 넘어 외식, 소비재, 관광 등 각 분야로 확대되어 한국기업의 진출이 더욱 활성화된 태국에서 왜 한국 패션 브랜드가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유행의 중심지인 방콕 씨암 지역을 찾았다. 씨암은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지역이다. 씨암파라곤, 씨암센터, 씨암스퀘어 원 등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 외에도 씨암스퀘어 지역에 여성 의류 상점들이 밀집되어 있어 쇼핑을 위해 찾은 10-20대 인파들로 늘 활기를 띤다. 최근 이 지역에서 한국식 패션 편집숍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Matchbox’, ‘Choose Dress’ 등이 대표적으로, 마치 ‘스타일난다’를 연상하게 하는 핑크색 위주의 인테리어를 비롯해 의류 매장 외에도 카페, 네일아트숍 등을 한 건물에서 운영하여 매장 방문을 유인하는 방식도 동일하다. 내부에 진열된 의류는 한국 아이돌들이 주로 착용해 국내에서도 유행했던 테니스 스커트를 비롯해 오버사이즈 티셔츠, 트레이닝복 스타일의 바지 등이 대다수였다.
<방콕 씨암에 위치한 '스타일 난다' 매장 – 출처 : 통신원 촬영>
<최근 유행하고 있는 한류풍 의류 편집매장 및 내부 -사진 출처: 통신원 촬영>
특히 ‘Matchbox’는 3층 규모 1개, 단층 규모 2개 등 씨암 내에서만 1년 안에 총 3개의 매장을 개점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Matchbox’의 매장 매니저 완 씨는, “(주 고객층인) 10-20대 초반 여성들이 ‘한국식 스트리트 패션’을 선호한다”고 했지만 “매장 내에서 판매되는 한국산 의류는 없다”고 말했다. 이유는 단가 때문. Wan 씨에 따르면 “태국의 물가 및 주 고객층의 소비 수준을 고려할 때 티셔츠 기준 500밧(한화 약 1만 7천 원) 이상일 경우 판매가 어렵다”며, “’Matchbox’는 저렴하면서 최신 유행 스타일을 선보이는 태국 소형 의류 브랜드들을 모아 놓은 편집숍으로 대부분의 브랜드들은 의류를 자체 제작하거나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슷한 컨셉의 매장인 ‘Choose Dress’ 역시 한화 만원을 넘지 않는, 200-300밧 대의 의류가 대부분이었다.
스트리트 패션 위주의 한류 패션 인기는, 현재 태국에서 성공리에 수입 및 유통되고 있는 대표적인 국산 의류 브랜드들의 성격과도 일치한다. 태국 대기업인 ‘더 몰 그룹(The Mall Group)’에서 유통권을 독점하고 있는 ‘스타일난다’, 그리고 또 다른 대기업 ‘씨암 피왓(Siam Piwat)’에서 태국 내 지점을 유치한 ‘ALAND(에이랜드)’가 대표 사례다. 이외에도 ‘보이런던(BOY LONDON)’, ‘오아이오아이(O!Oi)’ 등이 현지회사와의 계약을 통해 수입되고 있다.
한편 20-30대 여성을 겨냥한 한국 보세의류 또한 이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Seoul Studio’란 이름의 의류 상점은 태국인 사장이 직접 한국에서 구입 해왔다는 블라우스, 셔츠, 스커트 등의 의류를 판매하고 있었다. 진열된 의류에는 ‘Made in Korea’가 명확히 표기되어 있었고 가격 역시 1,000밧(약 3만 3천 원) 대로 주변 의류 상점들에 비해 높은 가격대였다. 이외에도 대형 쇼핑몰인 씨암스퀘어 원에 위치한 일부 의류 매장 중 ‘Korean Style’, ‘Korean dress’를 명시한 곳에서 한국산 의류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20-30대 여성들을 주 고객으로 한국산 청바지 상점을 운영하는 뚜 씨는, “‘한국산’ 의류가 주는 세련된 느낌, 중국산이나 태국산과 다른 디자인 등으로 높은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산 의류를 구입하는 고객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소비자를 겨냥한 한국산 패션 브랜드 진출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뚜 씨에 의하면 “20-30대 여성들은 단순히 ‘한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의류를 구입하지는 않는다”며, “태국 온라인에도 한국산 의류를 구매 대행하는 사이트들이 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한국산 의류’라 하더라도 소매 가격이 너무 비싸면 사지 않는다”고 한다.
<씨암의 한국의류 취급 상점의 예 – 출처 : 통신원 촬영>
실제로 태국 내 SNS에는 ‘Pre-Order’라는 이름으로 한국산 의류를 구매 대행해주는 온라인 쇼핑몰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이 말하는 ‘Pre-Order’란 고객이 일단 사진과 가격 등을 보고 선 지불해 주문하면 나중에 구입해 배송해주는 시스템을 뜻한다. ‘100% Made in Korea’라는 광고문구로 영업하고 있는 쇼핑몰 여러 곳에 어떻게 한국에서 의류를 구입, 배송할 수 있는지 문의해보니, “한국에 있는 태국인 지인을 통해 한국의 도매시장 또는 쇼핑몰 등에서 상품을 구입하고, ‘핸드 캐리’로 태국에 들여온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많은 한국 여성의류들이 수입되고 있지만, 정식 절차가 아닌 불법 경로를 통해 유통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의류를 구매 대행해 주는 태국 온라인 쇼핑몰의 예 –출처 : Shelongz>
즉, 현재 현지에서 수요가 충분하여 정식으로 유통되고 있는 한국 패션 브랜드들은 대부분 한류 팬층인 10대-20대 초반의 소비자가 선호하는 ‘스트리트 패션’ 류(또는 ‘MCM’, ‘FILA’ 등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 브랜드)이다. 젊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저가형 의류에도 의류 스타일과 편집숍 등에 한류의 영향이 미치고 있다. 그러나 여성 의류의 경우 ‘한국산’ 또는 특정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 및 선호도가 강하지 않은 편으로, 일부 보세의류들의 불법 유통이 이뤄지고 있다. 2018년 6월에 발행된 국내 잡지 《패션 채널》 또한 ‘태국 내 패션은 주춤, 뷰티는 강세’라는 제목으로 높은 성장잠재력에도 불구하고 '현지화와 고가의 캐주얼 시장이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점' 등으로 인해 한국 패션 브랜드들이 태국에서 고전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태국 현지 진출을 겨냥하고 있는 국내 의류 브랜드가 있다면 이 같은 시장 상황을 사전에 치밀하게 파악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