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3일, 아사히 신문에서는 '한국인의 등산복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다뤘다 - 출처 : The asashi shinbun>
일본 오사카의 도톤보리 다리에 가면 '달리는 구리코'라는 커다란 간판을 볼 수 있다. 다리 위에 멈춰 서서 달리는 구리코 모습을 흉내 내며 너도나도 사진을 찍는 이곳은 오사카를 대표하는 명소로 불린다.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도톤보리 다리 위로 모이지만, 한국인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바로 화려한 등산복 차림 때문이다. 통신원의 한 일본인 지인이 한국인은 등산복을 왜 그렇게 애용하는지에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통신원은 등산복 특성상 신축성이 좋아 관광하기 편하기 때문 아니겠느냐는 대답을 한 적이 있다. 이처럼 한국인의 등산복 차림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현지인이 생각보다 많은 듯하다. 한편, 《아사히》 신문은 8월 13일 자 기사 '한국인의 등산복 사랑'을 게재해 한국인이 등산복을 입는 이유를 다룬 기사를 다뤘다. 아래는 해당 기사를 번역한 전문이다.
외국인 친구에게 한국 여행지를 소개하는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이 프로그램에서 한국에 사는 독일인 청년에게 고향 친구들이 찾아왔는데 어디로 여행을 하고 싶냐는 말에 독일인 친구는 '서울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장소!'라는 대답을 했다. 그들이 방문한 장소는 서울의 명소인 남산타워도 아니고 한국에서 가장 높은 123층 롯데월드타워도 아닌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북한산이었다. 높이 840미터의 북한산은 한국의 시민들이 부담 없이 등산을 즐길 만한 곳이다. 그들은 도심에 솟은 산의 풍경에 흥분하고 정상에 서서 서울 전경을 바라보면서 환성을 질렀다. 당시 서울의 기온은 34도. 독일인 청년들은 반팔, 반바지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등산을 즐겼다. 그런데 독일인 청년들은 등산을 온 아저씨, 아주머니들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형형색색의 등산용 의류와 신발, 스카프, 선글라스 등으로 무장을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독일인 청년들은 무더위 속에서 무장한 채로 등산하는 분들의 모습을 보며 히말라야 등산대원들이냐는 질문을 친구에게 던지기도 했다
일본 관광지에서 등산복 차림의 무리를 보면 무조건 한국인!
한국의 삼성 패션 연구소에 따르면 2014년 당시 한국 아웃도어 패션의 시장 규모는 7조 원으로 전 세계에서 미국에 이은 2위의 규모로 성장했다. 해외의 공항이나 박물관, 성당 등 주요 관광지에서 한국인을 구별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들 무리의 모습이 등산복이라면,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한 여행사에서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 단체 관광객들에게 공고문을 올린 것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사례가 있었다. '유럽은 등산하는 곳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도시를 여행하는 장소입니다. 등산복은 되도록 피하고 가지고 계신 옷가지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멋있는 옷을 입으시기를 추천합니다.'라는 여행사의 공고문에 '여행을 가는데 왜 복장까지 지시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공고문을 올릴 정도로 해외여행을 가면 등산복 투성이인가?'라는 불만 섞인 댓글이 줄을 이었다. 이 여행사에서는 '등산복을 입으면 여행객이라고 판단해 소매치기 등의 사건이 발생하기 쉽다'는 말로 해명하고 이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국토의 70%가 산지라는 것은 한국인이 등산복을 사랑하는 이유에 관계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등산이다. 한국 산림청이 2015년에 발표한 '산림에 대한 국민 의식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10명 중 2명 이상이 매월 1회 이상 등산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맹렬한 등산 애호가들 때문인지 문재인 정권은 오랜 시간 동안 출입을 금지해 온 청와대 뒤 인왕산을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문 대통령이 한국의 기자들과 함께 등산할 때 착용한 재킷은 품절될 정도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인의 등산 애호가 역사에 슬픈 사연도 있다.
IMF 시절, 산으로 출근했던 아버지들의 슬픈 과거
한국은 1997년, 외환 보유액은 바닥을 찔렀고 'IMF 쇼크'에 휩쓸려 대량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당시 해고를 당한 수 많은 아버지들은 매일 아침 출근을 하는 것처럼 양복 차림으로 집을 나와 산으로 출근했다. 오늘날 산을 활보하고 있는 아버지들의 중에는 화려한 등산복을 입고 그때 그 시절을 위로받으려는 분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이렇게 급성장해 온 아웃도어 시장이지만, 2017년의 시장 규모는 4조 5,000억 원으로 지난 몇 년간 매출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패션 산업에서는 불황을 이기기 위해 한류 스타를 광고 모델로 내세우는 등 고군분투하고 있다. 인기 TV 프로그램에서도 아이돌이 아웃도어룩을 입고 야외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스타 마케팅으로 인해 등산복이 부활할 수 있을지 두고 봐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