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의 〈뚜두뚜두〉 뮤직비디오가 발표되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유튜브 조회 수가 높아져 갈 때, 어쩌면 이 노래의 조회 수가 지금 현재 K-Pop 최고 대세 아티스트인 방탄소년단의 〈Fake Love〉를 앞설 것 같다는 느낌을 예감했다.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2018년 8월 말 지금 이 시점, 최고 잘 나가는 K-Pop 아티스트는 단연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다. 한편, 영어권 웹매거진 《벌처(Vulture)》는 8월 28일 자로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의 부상이 K-Pop의 미래에 대해 말해주는 것들(What the Rise of Black Pink and BTS Says About the Future of K-Pop)’이라는 제목의 분석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는 음악평론가, 김영대(Youngdae Kim) 씨와 블로거 티케이 박(T.K. Park)이 함께 작성했다. 시애틀에 거주하고 있는 김영대 씨는 한국 팝뮤직의 역사에 대해 이미 2권의 책을 펴낸 저자이자 ‘한국 대중음악상(Korean Music Awards)’ 선정위원이기도 하다. 티케이 박은 ‘한국에 대해 물어보세요(Ask a Korean!)’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상당히 긴 길이의 이 기사는 한국인들이 작성했기 때문에 K-Pop의 현주소에 대해 오해 없이, 제대로 분석했다. 앞으로 다른 영어권 대중음악 전문기자들의 분석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 예상된다. 아래는 기사 원문을 번역한 내용이다.
〈‘벌처’에 실린 기사 화면 – 출처 : 벌처〉
1990년대 후반, 초기 K-Pop의 선구자들은 이웃 나라인 대만, 일본, 중국으로 진출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 시장이자 현대 팝뮤직의 원천인 미국은 좀처럼 K-Pop에 대해 문을 열지 않았다. 따라서 미국에서 인정받는 것은 전 세계의 인정을 받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이 올해 초, 이 과업을 이뤄냈다. 그들의 〈Love Yourself: Tear〉 앨범이 빌보드 200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이 미국 시장에 접근한 방법은 과거 다른 K-Pop 그룹들이 해외 시장에 접근했던 방법과 무척 다르다.
국제적 성공을 향한 K-Pop의 전형적인 전술은 ‘지역화(Localization)’로 요약될 수 있다. K-Pop은 과잉생산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한국 엔터테인먼트는 음악 시장들의 어떠한 요구도 유동성 있게 맞춰줄 수 있는 것처럼, 산업적인 K-Pop을 양산해낸다. 자동차 회사가 추운 날씨의 시장을 위해 날씨에 저항력이 있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처럼, K-Pop 소비자의 구미에 맞춘 여러 아티스트들을 키워내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성공한 K-Pop의 초기 대표적 아티스트 가운데 하나인 보아(BoA)의 경우, 이러한 전략의 전형적 사례다. SM 엔터테인먼트는 보아가 12살 되던 해에 그녀를 발굴해 〈신비 프로젝트〉라는 코드명을 주었다.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어린 나이의 보아를 아이돌 아티스트로 만들기 위해 SM 엔터테인먼트는 약 3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 금액은 1997년 당시, 동아시아의 경제적 위기를 고려해볼 때, 엄청난 액수다. 보아의 피눈물 나는 트레이닝에는 노래와 댄스 레슨은 물론 일본어를 배우기 위한 정기적 일본 투어가 포함됐다. 보아는 한국에서 2000년 한국어 버전의 앨범으로, 일본에서는 2002년 일본어 버전 앨범으로 데뷔했다.
당시에는 이처럼 한류 스타가 일본에서 데뷔할 때, 일본어로 앨범을 내는 것이 거의 필수적이었다. 그때만 해도 K-Pop은 국제적으로 그리 넓은 팬층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고 비교적 적은 수의 마니아층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의미도 알 수 없는 한국어로 된 노래를 인내해가며 듣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특히 일본처럼 자국의 음악 인기가 높은 나라에서는 더욱 그랬다. 보아의 뒤를 잇는 K-Pop 아티스트들은 거의 대부분 보아의 원형을 뒤따랐다. K-Pop 아이돌 그룹은 전략적으로 외국에서 온 멤버를 한 명 또는 그 이상 포함한다. 소녀시대의 티파니는 미국 교포, f(x)의 빅토리아는 중국인이며 트와이스의 쯔위(Tzuyu)는 대만인이다. 한국인이 아닌 멤버들은 세계적인 시장에서 K-Pop의 홍보대사 역할을 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시장마다 다른 언어로 된 앨범을 발표하고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또한 그룹 내 비한국인 멤버가 있을 경우, 해당 국가나 시장의 필요에 맞춘 외모로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미국 투어를 하는 동안 원더걸즈는 피부 색깔을 더 짙게 하고 눈을 더 좁아 보이게 하는 미국 동포 여성 스타일의 화장을 하고 나와 한국의 팬들을 경악하게 했었다. 그렇게 코케시언(Caucasian)들이 선호하는 아시아 여성의 스타일로 하고 나왔던 것이 미국에서의 성공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는 분석이다. 원더걸스의 영어 버전 〈노바디(Nobody)〉는 빌보드 핫 100 차트에 76위로 오른 최초의 K-Pop 싱글로 기록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이런 현지화 전략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방탄소년단에는 외국인 멤버가 한 명도 없고, 곡 전체가 영어로 된 노래도 없다. 그들이 전혀 이런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데뷔 초기, 그들이 일본에 진출하던 2014년, 일본어 버전의 앨범 〈웨이크업(Wake Up)〉을 발매했지만, 판매량은 미미했다. 자산 10억 이상을 보유한 SM, JYP 엔터테인먼트가 기획사 세계에서는 구글이나 아마존에 해당하는 것과 비교할 때, 당시 방탄소년단의 소속사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Big Hit Entertainment)는 의욕만 넘칠 뿐, 단지 스타트업일 뿐이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기존의 K-Pop 그룹과는 전혀 다른 것, 즉 그들만의 독창성과 이야기(내러티브)가 있었다. 방탄소년단 멤버들 역시 전형적인 K-Pop 아이돌 그룹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모든 멤버들이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했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즉, 그들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함께 창조한 것이다. 이러한 그들만의 독창성은 결과적으로 젊은 남성들이 성년이 되면서 겪는 일련의 갈등을 다룬, 호소력 있는 스토리를 담은 앨범을 연이어 발표할 수 있게 한 결정적 요소가 됐다. 방탄소년단의 싱글, EP, 앨범은 시리즈로 출시됐다. 〈학교 3부작(School Trilogy)〉이 그랬고, 이어 발표한 〈화양연화(The Most Beautiful Moment in Life)〉 파트 1과 2가 그랬다. 방탄소년단이 발표한 곡들은 ‘성장(Growth)’에 대한 스토리를 표현하고 있는데, 팬들은 이에 대해 깊은 공감을 표현한다.
이들의 독창성은 패션과 머리스타일 등 세상에 드러내는 이미지를 통해 더욱 빛난다. 그들은 미국인 힙합 스타와 비슷하게 보이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단순히 자신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이전에 힙합을 위주로 활동한 다른 아이돌, 그리고 방탄소년단의 활동 초기와는 달리, 그들은 상업적 성공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들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힙합이란 장르를 선택한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이야기 독창성(Narrative Authenticity)’ 전략이 다른 K-Pop 그룹에게도 의미가 있을 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다른 그룹들이 방탄소년단의 전략을 따라 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세븐틴(Seventeen), 몬스타 엑스(Monsta X) 등 점점 더 많은 K-Pop 그룹들이 그들의 음악을 자체적으로 프로듀스 하고 있으며, 몬스타 엑스(Monsta X)와 갓세븐(Got7)은 자신들만의 컨셉 있는 3부작을 내놓았다. JYP 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그룹인 스트레이 키즈(Stray Kids)는 스테로이드에 대한 이야기(나레티브) 전략을 펴고 있다.
앨범을 연이어 발매하는 것보다 스트레이 키즈는 한 시즌 동안 리얼리티 TV 쇼에 출연해 데뷔 앨범 작업을 함께 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직 데뷔 초기이지만 스트레이 키즈는 지난 6월의 뉴욕 케이콘(KCON)에서 팬들의 큰 환호를 받았다. 방탄소년단과 다르지 않게 그들은 한국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인기를 끌기 시작하는 중이다. 스트레이 키즈가 장래 미국에서 성공한다면, 방탄소년단이 제시한 새로운 전략을 벤치마킹한 것이 성공의 열쇠였는 지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올여름, YG 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 블랙핑크의 기록적 성공은 완전히 K-Pop 지역화 전략만을 밀고 나가기에는 시기상조임을 보여준다. 지난 6월, 블랙핑크의 〈뚜두뚜두〉는 출시 24시간 만에 가장 조회 수를 기록한 K-Pop 뮤직비디오가 되었다. 이는 방탄소년단의 〈Fake Love〉의 기존 기록을 깨는 것이었다. 또한 〈뚜두뚜두〉는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의 〈Look What You Made Me Do〉의 뒤를 바짝 뒤따르며, 모든 팝송 가운데 출시 24시간 만에 가장 조회 수를 많은 노래 2위에 올랐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새로운 싱글, 〈아이돌(Idol)로 24시간 내 가장 조회 수가 높은 뮤직비디오의 타이틀을 되찾았다. 이는 테일러 스위프트와 블랙핑크를 모두 따돌리는 스코어다. 블랙핑크는 YG 엔터테인먼트를 제작사로 데뷔해 2013, 2014년에 최고 전성기를 누리고 2016년 해체됐던 걸그룹인 2NE1의 뒤를 잇는 혁명적 도전이었다. 2NE1처럼 블랙핑크의 음악은 프로듀서 테디(Teddy)의 한국화된 힙합에 집중돼 있다. 블랙핑크의 스타일 역시 2NE1과 비슷한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그 결과, 정확하면서도 고도의 훈련이 필요한 안무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예쁘장한 아티스트들, 화려한 뮤직비디오 등 K-Pop 팬들에게 친숙한 결과물이 나왔다. 음악은 YG 엔터테인먼트 내부의 제작팀이 제작했다.
<‘벌처’ 기사에 실린 블랙핑크의 ‘뚜두뚜두’ 뮤직비디오 한 장면 – 출처 : 벌처>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 그중 힙합이라는 주력 장르로 선택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공통점이다. 하지만 방탄소년단과는 달리, 블랙핑크는 멤버들의 지역화 전략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리사(Lisa)는 태국인이고, 로즈(Rose)는 뉴질랜드 교포다. 팀으로서의 블랙핑크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태국어 모두를 구사한다. 태국인을 멤버로 넣었다는 것은 K-Pop의 떠오르는 시장인 아세안을 공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 전략은 꽤 성공적인 듯하다. 미국 시장에서 블랙핑크의 앨범, 〈스퀘어 업(Square Up)〉은 빌보드 200에서 40위로 데뷔했다. 이는 한국 여성 뮤지션의 앨범으로는 최고의 순위다.
한편, K-Pop 산업의 저상 기획사, SM과 JYP는 상기 사례보다 보다 더한 지역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JYP 2.0’이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JYP의 설립자인 박진영은 “K-Pop의 국제화는 무대에서 진행된다. 첫째로는 한국 음악과 아티스트들의 수출에 의해서, 그리고 두 번째로는, K-Pop 팀에 세계적 멤버들을 블렌딩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다음 단계는 ‘지역화를 통한 세계화(globalization by localization)’다. 각 지역에서 발굴한 인재들의 재능을 사용해 음악을 개발하고 프로듀싱하고 출시할 계획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올해 6월, JYP 엔터테인먼트는 중국에서 발굴한 멤버들로 이뤄진 ‘보이 스토리(Boy Story)’라는 6인조 보이밴드를 데뷔시켰다. 이들은 주로 중국을 무대로 활동 중이다. JYP는 2019년 후반에 일본에서 데뷔하고 활동할 걸그룹을 기획하고 있다.
SM 엔터테인먼트는 현지화 전략에 있어서는 JYP보다 늘 한 수 앞서나간다. 2016년, SM의 설립자 이수만은 ‘새로운 문화 테크놀로지(Neo Culture Technology, 줄여서 NCT)에 대한 그의 비전을 발표했다. NCT는 전통적인 의미의 그룹이나 밴드라기 보다는 포맷(Format) 또는 브랜드(Brand)라 지칭해야 적절한 듯하다. NCT의 배너 아래 SM 엔터테인먼트는 해외 각 지역에서 발굴한 멤버로 이뤄진 여러 개의 서브 유닛을 결성해, SM이 개발한 K-Pop 훈련생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NCT는 현재 전 세계 각기 다른 도시에 베이스를 둔 NCT U, NCT 127, NCT Dream 등 3개의 서브 유닛을 두고 있다. 그리고 중국에 베이스를 둔 또 하나의 서브 유닛이 곧 데뷔를 앞두고 있다. 서브 유닛들은 각각의 마켓마다 각기 다른 노래들을 부르고 각기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방탄소년단과는 달리 NTC는 계속되는 일관된 스토리를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다. NCT는 현재 모두 합해 18명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 새로운 멤버는 그룹이 새로운 서브 유닛을 런칭함에 따라 추가될 예정이다. NCT에 가장 근접한 것이라면,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 브리트니 스피어즈(Britney Spears) 등 개별적인 스타들이 함께 한 미키마우스 클럽(Mickey Mouse Club)이라는 플랫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K-Pop의 성장은 21세기 글로벌 팝 문화에 있어 가장 의미 있는 사건이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은 영어권 이외의 모든 팝뮤직 트렌드의 중심점이 되어왔다. 하지만 앞으로도 K-Pop의 성장이 지속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소녀시대, 2NE1, 빅뱅 등 국제적인 성공을 거둔 K-Pop의 황금시대의 밴드들이 점차 빛이 바래고 있는 데다 그 뒤를 바로 이을 만한 그룹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수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장에서의 K-Pop은 보이지 않는 천장이 있는 것처럼 한계가 존재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과 함께 K-Pop은 그 한계를 정복해나가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이야기 전략, 블랙핑크와 NCT는 모두 현지화 전략의 결과다. 또한 기획사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쟁의 결과이기도 하다. 수많은 K-Pop 팬들은 이 세 그룹을 모두 좋아한다. 어떤 전략이 가장 우수한가를 가리기보다, 이 두 전략 모델을 지켜봄으로써 앞으로의 글로벌 K-Pop의 행보를 기대해봐야 할 것이다. |
K-Pop 기획사 내부의 기획 의도 등, 전문적인 분석이 돋보이는 기사다. 머지않아 다른 언론매체에서도 인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사가 언급한 것처럼,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NCT는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미국 내 보이지 않는 천장을 뚫었다. 이 기사처럼 K-Pop 황금시대의 주역들인 싸이, 소녀시대, 빅뱅, 2NE1의 활동이 주춤한 느낌은 없지 않지만,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의 눈에 띄는 활동은 K-Pop의 두 번째 시기(Era)가 도래했음을 알려주는 지표가 아닐까. 올해 LA에서 개최된 케이콘(KCON) 역시, 미국에서의 K-Pop의 위치가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점을 온몸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어떤 전략을 사용하든, 더 높은 수준의 K-Pop이 더 많은 팬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길 기대한다.
※ 기사 원문
http://www.vulture.com/2018/08/bts-black-pink-and-the-continued-success-of-k-Po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