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을 따로 기념하는 대만에서도 5월은 대중이 보편적으로 인지하는 가정의 달이다. 이 가정의 달을 맞아 지난 10일, 영화 <영주>가 현지에서 개봉했다. 이 영화는 천만 배우 김향기(영주 역), 유재명(상문 역)이 주연으로 출연했다. 최근 극장가에서 관객의 입에 제일 많이 오르내리는 대형 블록 버스터 작품 사이, 영화 <영주>는 관객에게 조용하고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영주의 삶을 그리고 있다. 영화 <영주>는 교통사고로 한순간에 부모를 잃고 힘겹게 살아가던 주인공 영주가 만나지 말았어야 했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낯선 희망을 갖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어린 시절 사고로 갑작스럽게 부모를 여읜 감독 차성덕의 낯선 발상에서 시작된 영화 <영주>는 그저 감독의 자화상을 극 중 인물 영주에게 투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영화 영주의 주연 배우 김향기와 유재명(좌), 감독 차성덕(우)>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의 오늘 - 비전’ 세션에 초청된 이 영화는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감독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자라오면서 어느 순간 ‘가해자를 만나면 어떤 느낌일까?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란 생각을 떠올리게 됐고, 이 발상은 영화 <영주>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영화 <영주>의 현지 포스터와 현지 개봉명 ‘친애적귀인(親愛的仇人)’은 영화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지만, 내용 면에서 전혀 다른 잔잔한 전개를 보여주고, 그 속에서 관객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영화 초반부터 단편영화의 느낌이 물씬 나는 이 영화의 주된 배경은 우리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영화는 ‘동네 시장 골목’, ‘영주 남매의 오래된 빌라’, 그리고 ‘자신의 부모를 죽게 한 가해자의 집’을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주는 당장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모를 죽게 한 가해자를 만나기로 하지만,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고 이후 그 후유증을 앓고 살아가는 가해자의 삶에도 연민을 느끼면서, 갈등하고 또 그 가해자 부부로부터 받는 호의와 친절함에 의도했던 마음마저 흔들리는 자신을 보게 된다. 영화는 등장인물 간 묘한 만남 속 서서히 마음을 여는 영주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관객이 수긍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만남의 숨은 의도, 배경을 알게 된 영주의 친동생이 그동안 가해자 부부가 영주에게 베풀었던 호의를 문제 삼으며 갈등을 빚게 된다.
<영화 ‘영주’의 한 장면. 감정 연기가 돋보인다>
동 영화가 관객의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데는 극 전개 속 펼쳐지는 배우의 감정 연기가 한몫했다. 영화는 인물 간의 갈등을 주요 소재로 다루지만, 대사는 많지 않은, 조용한 영화다. 전개는 오로지 배우의 감정 연기에 집중되어 있다. 부모님을 죽게 만든 가해자 앞에서도 영주는 말수가 적고, 심지어 그들의 정에 흔들려 동생을 설득하는 영주의 모습에서도 대사는 그리 많지 않다. 배우 유재명 역시 의도치 않은 교통사고를 내 영주의 부모가 목숨을 잃게 했지만, 본인의 아들 또한 의식 없이 누워만 있는 상태다. 여기서 그가 느끼는 괴로움은 대사가 아닌 오로지 감정의 연기로 표현된다. 드라마 <비밀의 숲>, <라이프>, <슬기로운 감빵생활>, <자백> 등에서 조연, 주연할 것 없이 자신이 맡은 배역에 충실하고, 해당 배역을 잘 소화하는 배우 유재명의 연기력은 <영주>에서도 역시 돋보였다. 김향기 역시 <증인>에 이어 <영주>에서도 탁월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영주>는 김향기가 ‘아역 배우’가 아닌 ‘배우’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작품이다. 차성덕 감독은 “김향기는 ‘영주’ 그 자체”라 표현했으며, 함께 열연한 배우 유재명 또한 “그녀의 몰입도를 위해 현장에서도 말을 아꼈다”고 전했다. 영화 <영주>를 관람한 현지 관람객(아이디: MARCO)은 “영화 <어벤져스: 앤드게임>의 흥행 여파로 인해 많은 관객이 이 작품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깊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였던 만큼, 함께 관람한 관객 대부분은 영화관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라고 관람평을 남기며, 영화 <영주>가 표현하고 있는 복잡한 감정에 대한 여운을 인상 깊게 설명했다. 동 작품은 현지 네티즌 관람평 5점 만점에 4.8점을 기록해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현재 현지 박스 오피스 18위를 기록하고 있다. 또 ‘가정의 달’에 개봉된 의미 있는 영화답게, 관람권 1매당 5대만 달러(한화 약 200원)가 한부모 가정 자녀에게 지원되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어, 영화를 관람하기만 하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선행을 베풀 기회가 마련됐다.
<현지 네티즌 관람평 1위에 오른 영화 ‘영주’>
지난해는 배우 김향기에게 대학 입학과 동시에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 인기상 수상 등으로 인생에서 잊지 못할 한 해였을 것이다. 이러한 소식들로 대중들은 김향기를 ‘화려한 여배우’, ‘천만관객 동원 배우’란 타이틀보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로 인식하고 있기도 하다. 이미 현지 관객들은 김향기를 단순히 ‘한류스타’가 아닌 ‘배우’로서 받아들이고 있으며, ‘믿고 보는’ 배우로 인식하고 있으며, 차기작을 기대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 사진 출처 : Yahoo奇摩電影
성명 : 박동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대만/타이베이 통신원] 약력 : 현) 대만사범교육대학원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