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가 100주년을 맞이한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 영화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 종려상을 수상했다. 칸영화제는 세계 3대 영화제(칸·베를린·베니스) 중에서도 가장 유서가 깊은 영화제이기 때문에 이번 수상은 봉준호 감독 개인의 영광을 넘어 세계 속에서 한국 영화를 빛냈다는 평가다. 수상 소식과 작품에 대한 호평은 국내뿐 아니라 외신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영화 ‘기생충’으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 – 출처 : 바음스즈 시네마(Bağımsız Sinema)>
저예산 독립영화를 주로 다루는 터키 웹사이트 ‘바음스즈 시네마’는 영화 <기생충>으로 세계적인 영화 거장으로 우뚝 선 봉준호 감독을 소개하면서 봉 감독의 가계도를 자세히 조명했다. 기사는 봉 감독의 외조부 박태원 씨를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A Day in the Life of Novelist Gubo)』를 저술한 유명 작가로, 그의 아버지 봉상균 씨는 국내 그래픽 디자이너 1세대로, 그리고 봉 감독의 형 준수 씨는 서울대 영문과 교수로 소개하면서, 봉준호 감독을 예술가 집안의 일원으로 서술했다. 이렇게 국내언론도 아닌 해외, 특히 터키 매체에서 봉준호 감독을 감독으로서 지닌 감성과 천재성을 ‘개인의 재능’ 차원이 아닌 가계도를 통해 조명했다는 점은 꽤나 흥미롭다. 왜냐하면 이처럼 다양하고 복잡한 현대사회를 분석할 때, 한 개인을 가족사를 통해서 관찰하는 것은 한국적 사고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특별히 가족을 통해서 그려낸 봉준호 감독의 수상작 <기생충>을 이해하는데도, 이와 같은 시각은 각별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사회의 양극화 문제는 비단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의 문제이고, 현재 터키야말로 사회 양극화 문제 속에서 가족 구성원 모두가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놀라움으로 가득 찼고, 정제되고 강력한 작품’이라고 묘사한 기사 원문 - 출처 : DuvaR.>
<기생충>에 접근하는 터키 매체들의 평가는 단순한 호평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미시적 관점에서는 매우 분석적이었고, 거시적 관점에서는 기존 칸영화제에 존재해 왔던 전반의 구조적 문제까지 지적하면서 봉준호 감독의 황금 종려상 수상 의미를 더 높게 평가했다. 《두바르》는 ‘놀라움으로 가득 찼고, 엄격하면서도 강력한 걸작품 <기생충>’이란 헤드라인의 기사를 통해 “봉준호 감독의 작품은 어떤 장르에도 적합하지 않은, 강력한 시나리오가 있는 영화”라고 표현했다. 이어 “영화 <기생충>은 코미디와 드라마, 사회 비판, 그리고 긴장과 격렬함이 한데 섞여 있지만, 하나하나 섞이지 않고 이어진다”며 “시나리오는 아주 엄격하게 정제되었다”고 평가했다. 봉준호 감독의 수상은 경쟁작 21편 가운데 역대 황금종려상 수상 감독 5명을 제치고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위와 같은, 혹은 그 이상의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와 여행 등을 전문적으로 블로그에 소개하는 ‘오빌렛트 블로그’는 이번 72회 칸영화제에 대해 “시작하기 전부터 뜨거운 경쟁이 예상될 것”이라 언급하면서, “여러 작품 중 한국과 캐나다에 주목한다”고 전했다. 한국의 봉준호 감독과 캐나다 자비에 돌란 감독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영화제가 시작된 후 데일리 평점이 공개되고, 각 작품 관람 후 기대와 실망이 실시간으로 전해지면서 관심은 일찌감치 봉준호 감독에게 쏠렸다. 결과적으로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이번 72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지만, 터키 매체들의 평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본 리포트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칸영화제는 세계 3대 영화제 중 가장 높은 권위를 자랑하는 영화제로, 매년 프랑스 남부도시 칸에서 열린다. 문제는 지역만 아니라 경쟁 후보 작품들까지도 프랑스 감독들에게 자리를 내준다는 것이다.
<영화 평론가 아흐멧 보야주올루 - 출처 : mediawavefestival.hu>
1995년부터 앙카라영화협회 회장 및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아흐멧 보야즈올루(Ahmet Boyacıoğlu)는 인터넷 언론 《두바르》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영화제의 편파성을 지적했다. 이번 칸영화제 경쟁부문에는 총 21편의 작품이 올랐는데, 그 가운데 무려 9편이 프랑스 감독의 작품이며, 5개 작품에는 프랑스 제작사가 참여했다는 점에서다. 결과적으로 21개 중 14개 작품이 프랑스와 연관된 것이다. 전 세계 영화인들을 위한 축제가 프랑스를 자축하기 위한 영화제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영화들의 연이은 수상으로 프랑스 영화들의 수상 실적은 지난 수년 동안 40% 이하라는 사실을 덧붙이며 영화제의 현주소를 고발했다. 기자는 이처럼 편파적인 구도 속, 쟁쟁한 감독들을 모두 제치고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은 그 자격이 충분하며, 합리적이라는 분석까지 첨언했다. 아무리 영화를 만들어내는 제작자로서 실력과 인지도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14 대 1로 싸우는 스포츠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설령 있다고 하면 그 종목은 스포츠 정신에 맞지 않는다면서 바로 국제사회에서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칸영화제가 그랬고, 이전에도 그랬다는 것은 누구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 70회 칸영화제를 기억해 본다. 당시에도 경쟁부문에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올랐는데, 그때는 프랑스 극장협회(FNCF)가 초청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프랑스 법에 따르면, 넷플릭스를 비롯한 인터넷 기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 공개된 작품은 극장 개봉 후 3년이 경과 해야 스트리밍이 가능한데, <옥자>는 이러한 극장 상영의 원칙을 깨고 칸 경쟁부문에 진출했다는 점에서였다. 과연 칸영화제가 전 세계 영화인들이 함께 즐기는 가치를 지향하는 영화제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더욱 정말 심각한 것은 영화제를 편협하게 만드는 프랑스 영화인들의 행보다. 올해 칸영화제에서도 프랑스 법에 의거, 넷플릭스 작품은 볼 수 없었다. 다만, 70회 영화제와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넷플릭스가 칸영화제에 보이콧을 선언했다는 점이다. 세계인들의 축제가 되어야 하는 국제영화제가 19.62km²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도시, 칸 지역 축제로 전락했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동방의 한 작은 나라, 대한민국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은 칸영화제에 유의미한 메시지를 남겼다. 칸영화제가 전 세계 영화인들이 모두 인정하는 축제로 그 권위와 명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내부의 자성과 변화의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 참고문헌 《Duvar》 (19. 5. 25.) 〈 Sürprizlerle dolu, sert ve güçlü bir başyapıt: ‘Parazit’ 〉, https://www.gazeteduvar.com.tr/sinema/2019/05/25/surprizlerle-dolu-sert-ve-guclu-bir-basyapit-parazit/ 《Duvar》 (19. 5. 25.) 〈 Cannes'da ödüller hangi filmlere gider? 〉, https://www.gazeteduvar.com.tr/sinema/2019/05/25/cannesda-oduller-hangi-filmlere-gider/
성명 : 임병인[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터키/이스탄불 통신원] 약력 : 현) 한국정책방송원(KTV) 글로벌 기자 해외문화홍보원 대한민국 바로알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