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 조이스 권(Joyce Kwon, 권정현, 33세)씨는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한 2세대이지만 가야금을 연주하고 한국적 색채가 강한 인디음악을 하는 뮤지션이다. LA에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인해 자택 격리 행정 명령이 시작되기 바로 전 날, 글렌데일 시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를 찾아 인터뷰를 나눴다. 어떻게 재즈와 국악을 결합시킨 독특한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듣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하셨는지요? 저는 8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어요. 켄터키주에서 유학 중이시던 아버지가 텍사스로 학교를 옮기실 때 저희 가족도 한국에서부터 미국으로 넘어오게 됐죠. 아버지가 또 한 차례 패사디나 풀러 신학교로 옮기면서 저도 패사디나(Pasadena) 시의 공립학교에 다니게 됐습니다. 한인가정의 경우 대부분 자녀들에게 피아노 레슨은 시키잖아요. 그래서 피아노 레슨을 받게 됐고 바이올린까지 배우게 됐어요. 그렇다고 제가 특별히 음악에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린 나이에 연습벌레였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중학교는 학생 수가 몇 안 되었는데, 어쩌다 보니 제가 전교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장 잘 하는 학생이 돼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패사디나 시에서 운영하는 여름학기 음악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됐어요. 그 프로그램에 참가한 다수의 학생은 LA 카운티 예술 고등학교(The Los Angeles County High School for the Arts, LACHSA)의 입학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프로그램 내의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LA 카운티 예술 고등학교에 오디션을 보고 합격해 입학을 하게 됐죠. 예술 전문 고등학교에 입학하셨으니 상당히 일찍부터 진로를 정한 셈이네요. 그게 좀 설명이 필요해요. 제가 학교에 입학하고 몇 달 후, 학교에서 전화가 왔어요. 엄마와 함께 학장실에 들리라는 거였어요. 찾아갔더니 음악과장님이 “우리가 실수로 학생을 뽑았습니다. 이 학생에게 피아노를 한 음정이라도 치게 하면, 모든 사람들이 이 학생은 우리학교에 전혀 걸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거에요.”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제가 피아노를 너무 못 쳤음에도 학교 행정의 실수로 입학 허가가 되었다는 말이었어요. 제가 13세 때였으니 어린 나이에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겠어요? 며칠을 울었던 기억이 나요. 엄마는 괜찮다고 하셨지만 괜찮지 않았습니다. 저도 지금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입장에서 그 음악과장님이 했던 말을 생각해보면 결코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행히 저는 회복탄력성이 매우 좋은 아이였어요. 그 음악과장님은 피아노 말고 제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냐고 물으셨어요. 바이올린을 할 수 있었지만 별로 하고 싶지 않더군요. 그런데 누구에게나 목소리는 있잖아요. 그래서 노래를 할 수 있다고 했더니 학장님이 자기 앞에서 “생일 축하합니다.(Happy Birthday Song)”를 불러보라는 거예요. 음정이 과연 맞는지 보려고 그랬던 거죠. 저는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그 노래를 불렀고 다행히 통과되어 성악반으로 옮겨갔습니다. 그게 제가 노래를 하게 된 계기입니다. 정말 드라마 같은 계기로 성악을 하게 되셨군요. 그 후 어떻게 학교생활을 계속 하셨는지요? 사실 음악에 대해 별 관심도 열정도 없었는데 그런 일이 있고 나니 나를 증명해 보이겠다는 생각도 어느 정도 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그 덕에 저는 지금 프로페셔널 싱어가 되었잖아요? 삶이 우리를 이끄는 방식은 정말 오묘하죠. 성악반에 가서는 피아노를 쳤던 덕에 악보를 잘 봤고 매사에 정말 열심히 연습을 했어요. 매일 연습 리포트도 작성했고 연습을 좋아하게 됐어요. 저는 필라테스도 하는데 운동 역시 매일 반복해야 하잖아요. 기도처럼. 음악연습 역시 매일 반복한다는 면에서 어떻게 보면 종교 수행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지속적인 연습으로 예술 전문 고등학교에서 상도 많이 받았고 UC 버클리에 진학해 정치 경제학과 함께 음악을 전공했습니다. 대학에서도 재즈 풍의 음악을 전공한 건지요? 버클리 음악대학은 실기보다는 이론 위주라서 작곡을 전공했습니다. 이론분야에선 좋은 교수님을 많이 만나 뵀지만 공연에 대한 부분은 늘 부족하다는 생각이 있었죠. 대학을 졸업 후 버클리에서 음악 박사학위를 공부할까,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친구로부터 제 목소리가 보사노바를 하면 참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브라질을 약 3개월간 여행했었습니다. 그때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곳에도 가지 않으며 완전하게 쉬는 경험을 하면서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박사학위를 따는 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럼 가야금은 언제 배우게 됐는지요? 아마존에서 LA로 돌아와 가야금을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어머니께서 잘 알고 계신 가야금 선생님을 소개해주셔서 일주일에 2차례 가서 2년간 레슨을 받고 연습을 했습니다. 제 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하셨는데 2015년 별세하시면서 자신이 연주하던 소중한 가야금을 제게 물려주셨습니다. 그후, 바로 작곡과 공연을 시작하신 건가요? 아뇨. 늘 좀 더 공연에 집중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대학원 과정으로 뉴욕의 맨해튼 음악대학교에 진학해 재즈 보컬을 2년 더 공부했습니다. 혹시 가야금을 그 후로도 더 공부하셨는지요? 네. 가야금을 좀 더 진지하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가야금을 배울 수 있는 장학금 프로그램에 응모했는데 뽑혔습니다. 그래서 2년간 한국에 가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한국에 갔을 때엔 할머니가 고령으로 병원에도 자주 다니시고 이모도 아팠던 터라 가족들을 신경 써야 해서 가야금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그 와중에 가족에 대한 사랑, 집(Home)에 대한 그리움 등 제 음악의 주제가 된 주제들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집을 꿈꾸며(Dream of Home)’ 앨범도 그때 제작된 건가요? 네. 음악은 인도, 한국, 미국의 전통음악을 혼합한 새로운 장르이고요. 가사는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자라나 한국으로 다시 돌아갔던 경험을 담았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가야금을 배우던 시기에 EBS의 <다문화 음악여행>, 국악방송의 <문화시대> 등에 게스트 아티스트로 활동을 했었거든요. 그때 전통 레퍼토리를 연습하고 가야금을 연주하며 부르는 노래를 작곡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EBS에 다니던 지인과 레코딩 일을 하고 있는 뮤지션이기도 한 LA의 친구 등의 도움으로 정말 생각지도 못한 규모의 뮤직비디오 제작과 앨범을 제작하게 됐습니다. 앨범에 수록된 곡 가운데는 흑인 영가를 제가 편곡하고 새로 작곡한 부분을 더해 만든 <엄마 없이 자란 아이(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 한국의 민요를 편곡한 <닐리리야> 외에는 모두 저의 순수한 창작품입니다. 타이틀곡은 <드림 오브 홈>이고요. 제가 작곡한 가야금 연주 노래인 <루비, 6>, <작은 새>, <제비가 돌아왔네> 등 총 8곡이 수록돼 있습니다.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을 모두 작사 작곡하신 건가요? 네 작곡은 물론이고요. 한글과 영어로 가사를 썼고 보컬과 가야금을 연주했습니다. 키보드와 하모니카는 제 친구인 로스 가렌, 색소폰은 히토미 오바, 트럼본은 닉 드핀나, 기타는 브랜던 배, 베이스는 에릭 커테스, 드럼과 타악은 개빈 살먼이 맡았어요. 생각보다 밴드 규모가 정말 커졌어요. 앨범을 들어보면 여러 목소리가 하모니를 만들어내던데 본인 말고도 다른 사람도 노래를 했는지요? 아니요. 제가 혼자서 여러 트랙을 녹음해서 그렇게 만든 거예요. <가끔 나는 엄마 없는 아이처럼 느끼네>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훨씬 더 이해가 잘 갈 거예요. 뮤직비디오에 보면 제가 여러 화장과 머리로 각기 다른 분위기를 내어 한 화면에 모두 더해지게 만들었는데 오디오 역시 마찬가지의 과정으로 제작했습니다. 현재 혹시 공연 외에 하고 있는 일은요? 음반을 만들고 LA에 다시 정착하기 위해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LA 시 전체에 예술 교육 예산이 많이 깎여서 학교 자체에서는 음악 교사를 잘 두질 않아요. 그래서 저는 교육 비영리기관에 소속되어 거기에서 학교로 파견되어 나가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즘 수업 준비에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 제 연습도 잘 못하고 공연 스케줄도 못 잡네요. 그리고 제가 사는 곳은 글렌데일 시인데 학교가 있는 사우스 LA까지 수업하러 가려면 교통체증이 너무 심해서 적응하느라 애쓰고 있는 중입니다. 그곳에서도 혹시 한국의 악기에 대해 알려주시나요? 물론이요. 가야금을 가져가서 보여주면서 “이 악기가 방탄소년단의 나라인 한국의 전통 악기에요.”라고 말하면 아이들이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집중해요. 다음 공연은 언제 잡혀 있는지요? 여름 시즌, 여기 저기 열린 공간에서의 공연을 기획하고 있었는데 현재로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 때문에 어떻게 될지 정말 미지수입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음악 장르는요? 저는 흑인음악인 재즈와 한국 전통음악인 가야금 가운데 어딘가를 헤매었던 것 같아요. 이제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온 만큼 ‘뉴 아메리칸 포크’라는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본인의 음악을 일반인들은 어떻게 접할 수 있나요? 제 디지털 음반은 아이튠스와 스포티파이, 구글 플레이, 아마존 등에서 ‘조이스 권 드림 오브 홈(Joyce Kwon Dream of Home)’을 검색하면 들으실 수 있어요. 웹사이트는 www.joycekwon.com/korean 입니다.
<조이스 권 씨의 앨범 사진 – 출처 : 조이스 권 제공>
<조이스 권 씨의 앨범 자켓 – 출처 : 조이스 권 제공>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는 조이스 권 씨 – 출처 : 조이스 권 제공>
<집에서 피아노를 치며 연습하는 조이스 권 씨 – 출처 : 통신원 촬영>
성명 : 박지윤[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미국(LA)/LA 통신원] 약력 : 현재) 라디오코리아 ‘저녁으로의 초대’ 진행자. UCLA MARC(Mindful Awareness Research Center) 수료. 마음챙김 명상 지도자. 요가 지도자. 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졸업. 미주 한국일보 및 중앙일보 객원기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