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는 3월 18일부터 31일까지 2주간 이동제한령을 실시했으나, 이어 두 차례 연장하면서 4월 28일까지 식료품 구매 또는 긴급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외출이 불가능해졌다. 이동제한령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나날이 이어지면서 크게 변화한 것은 말레이시아인들의 스트리밍 콘텐츠 이용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말레이시아디지털협회(MDA)에 따르면 이동제한이 처음 시행된 3월 셋째 주(3월 15일~3월 21일) 기준 넷플릭스 이용량은 1월 이용량 대비 195% 증가했다. 이는 말레이시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인 톤톤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증가율이다. 말레이시아의 대표 OTT 업체인 넷플릭스에서는 최근 한국 콘텐츠가 높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세 번째 이동제한령이 시작된 4월 15일 기준 넷플릭스 말레이시아 콘텐츠 순위에 따르면 상위 10개 가운데 5편이 한국 드라마이다. <하이바이, 마마!>가 1위를 기록했으며, 이어서 <사랑의 불시착>이 3위, <이태원 클라쓰>는 5위, <루갈>이 6위,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8위로 집계됐다. 4월 17일부터는 한국 드라마 <더 킹: 영원한 군주>가 방영을 시작하면서, 상위권에 진입했다. 4월 24일 기준 상위 5위 안에 드는 콘텐츠 가운데 한국 드라마가 4편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 드라마가 말레이시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한국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토론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만이 아니라 나아가 드라마 결말, 등장인물 등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나누면서 한국 콘텐츠를 확대 및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이동제한령이 시행된 4월 15일 기준 말레이시아의 상위 콘텐츠 – 출처 : 넷플릭스>
<4월 24일 기준 말레이시아 상위 콘텐츠. 한국 드라마 4편이 상위 5워권에 진입했다 – 출처 : 넷플릭스>
한류전문방송 《K-LAH》는 13일 ‘이동제한 명령 기간에 추천하는 한국 드라마’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한국 드라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영상에서는 각자 집에 머물고 있는 진행자 3명이 드라마 장면과 인물 등에 대해 질문을 하고, 해석을 공유하고 있다. 10분가량의 영상에서 진행자들은 한국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어쩌다 발견한 하루>, <킹덤>을 소개했다. 진행자들은 <이태원 클라쓰>에 대해 “줄거리가 탄탄하지만,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며 “줄거리가 현실성 있어 좋았다. 실제 존재하는 곳에서 드라마를 촬영했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로맨스가 주된 내용이 아니라 친구들 간의 우정과 꿈을 쫓는 모습을 그려 좋았다. 한국 드라마 <닥치고 꽃미남밴드>과 비슷하게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결말은 비현실적이라 좋지 않았다. 결말에서 “괜찮아?”, “사랑해” 라고 대사를 나누는 부분은 아쉽게 느껴졌다”며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류전문방송 'K-Lah'의 진행자들이 한국 드라마의 등장 인물과 결말 등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있다 - 출처: 'Says'>
이어서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 대해서는 “단오라는 캐릭터가 좋았지만, ‘나를 막 대한 여자는 너가 처음이야’ 같은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가 담겨 있어 예측 가능한 전개가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남자주인공 중에 누가 더 멋있는지를 꼽으며, “나쁜 역할이지만 어쩔 수 없이 매력에 끌린다”라며, “드라마 캐릭터를 보면서 <꽃보다 남자>의 F4가 생각났다”라고 전했다. <킹덤>에 대해서는 “좀비를 좋아하거나 왕정, 정치에 관심이 있다면 <킹덤>을 좋아할 것”이라며 “재미있어서 하루 안에 볼 수 있는 드라마”라고 평가했다. 또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좋았다”고 전했다. 영상의 마지막은 진행자들이 한국 드라마 세 편을 추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진행자는 <호텔 델루나>, <역도요정 김복주>, <이태원 클래스> 드라마를 추천했다. 또 다른 진행자는 90년대 태어난 말레이시아인들이 좋아할 만한 드라마라며 <응답하라 1997>을 추천했고, <킹덤>처럼 재미있어 멈추기 어렵다며 <스카이캐슬>을 소개했다. 또 드라마 <손 더 게스트>도 함께 추천했다. 마지막으로는 심리 드라마를 좋아하는 시청자들에게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소개했고, 주지훈과 로맨스, 왕궁을 좋아한다면 <궁>을, 로맨스, 액션, 미스터리가 섞여 있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아랑사또전>을 추천했다. 진행자들은 마지막으로 말레이시아 시청자들이 추천하는 한국 드라마도 《K-LAH》에 공유해달라는 말을 남겼다. 보통 토론이라고 하면 주로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영화를 보고 의견을 공유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것도 예술적인 수준이 높다고 평가되는 작품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작가나 평론가들의 해설 프로그램 행사에 참여하기도 하고, 토론 모임에 참여해 작품에 대한 생각을 함께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드라마, 그것도 한국 드라마를 토론의 주제로 놓고 참석자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한국 드라마가 소수 팬들만 찾아보는 비주류 콘텐츠가 아닌 말레이시아 주류 문화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말레이시아에서는 책이나 영화만이 아니라 한국 드라마도 토론의 재료가 되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한국 드라마는 말레이시아에서 본 적 없는 로맨스와 가난한 여자주인공과 부유한 남자주인공과 같은 소재로 관심을 모았다. 로맨스는 그 자체만으로 한국 드라마의 상징이 되면서 영화 <조커>의 한국 드라마 버전 영상이 나오고, 한국 드라마에서 영감을 받은 광고가 제작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가 미스터리, 한국형 공포 등 독특한 소재와 탄탄한 줄거리, 연출력을 보이면서 이제는 남녀 전 연령층에게 익숙한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말레이시아인들이 보는 한국 드라마 버전의 조커 - 출처 : 'Hype'>
한국 드라마가 전 연령층에게 관심을 받으면서 가족, 친구들 간의 사적인 대화에서만이 아니라 유튜브, 소셜미디어 등 공적인 공간에서도 대화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한국 드라마도 영화 시사회처럼 작가와 배우들이 한류 팬들과 함께 모여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특히 기존의 많은 작품이 입소문을 타고 흥행하는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콘텐츠를 알리기 위해 방영 전에 대중과 비평가과 함께 하는 자리도 중요할 것이다. 이러한 자리를 통해서 대중과 비평가들이 콘텐츠를 소비하고 또 재생산하면서 작품에 대한 홍보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정보 공유가 오프라인에서 점차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는 만큼, 다양한 이용자들이 한국 콘텐츠를 재생산하고 정보를 나눌 수 있도록 유도한다면 한국 콘텐츠 소비가 한 층 다양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참고자료 《Hype》 (2019. 10. 18.) , https://hype.my/2019/175033/what-it-looks-like-when-joker-movie-gets-a-k-drama-twist/ 《Says》 (2020. 4. 13.) <[VIDEO] K-Lah! What Do You Think About 'Itaewon Class', 'Extraordinary You' & 'Kingdom'>, https://says.com/my/entertainment/k-lah-our-mco-kdrama-recommendations
성명 : 홍성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말레이시아/쿠알라룸푸르 통신원] 약력 : 현) Universiti Sains Malaysia 박사과정(Strategic Human Resource Manag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