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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치를 홍보하는 새로운 방법- 스위스 발효식품전문업체 대표 인터뷰

2020-08-24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스위스에서 현재 가장 다양한 종류의 김치를 생산, 판매하고 있는 업체는 '퓨어테이스트(www.puretaste.ch)'다. 배추김치, 무김치, 백김치와 같은 전통적인 김치에서부터 적채(붉은 양배추)나 회향(펜넬)을 주재료로 한 김치까지 다양한 제품을 직접 만드는 이 업체의 대표는 놀랍게도 한국인이 아닌 스위스에 거주 중인 이탈리아인 마테오 레오니(Matteo Leoni) 씨다. 흥미로운 점은 이토록 다양한 김치를 판매중인 이 업체의 상품 포장지 문구나 온라인 제품 소개 그 어디에서도 '전통 한국 식품'과 같은 홍보 문구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퓨어테이스트'가 표방하는 것은 오로지 '발효'라는 키워드뿐이다. 회사 소개 문구도 '폐기물 제로, 발효 제조소(Zero waste, Fermentation Manufaktur)'다. 김치 생산을 결심하게 된 사연부터 홍보 전략까지, 마테오 씨와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퓨어테이스트'에서 판매 중인 다양한 김치 종류 - 출처 : '퓨어테이스트' 웹사이트>

퓨어테이스트는 어떤 회사인가?
김치, 자우어크라우트(Sauerkraut, 양배추를 발효시켜 만드는 요리)부터 겨자나 식초 같은 소스 종류까지 다양한 발효 식품을 제조, 판매하는 회사다. 제철 채소 및 과일을 발효라는 전통 방식을 이용해 저장, 판매한다. 모든 제품은 인공보존제나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수공예 방식으로 직접 만든다. 2017년에 시작했고 업장은 바젤(Basel)에 위치해있다.

'발효'를 콘셉트로 회사를 설립한 계기는?
10년 정도 전부터 발효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나는 요리사로 채식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곳의 수석 요리사가 세계 여행을 즐기는 분이었다. 특히 한국, 일본, 중국을 자주 방문했다. 그 분을 통해 발효 문화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함께 일하던 레스토랑에서 다양한 발효 식품을 실험하기도 했다. 나는 점차 발효라는 인류의 아주 오래된 저장 방식에 매료되었지만, 이를 활용한 메뉴는 당시 일하던 레스토랑에서 아무래도 부분적으로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2017년 발효 식품만 만드는 회사를 설립하게 됐다.

그런데 판매하는 제품군 중 가장 많은 종류가 김치다. 어떻게 김치를 생산하게 됐나?
김치는 내가 요리사로 일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한국 식당에서 처음 먹어봤고 먹자마자 다양한 맛이 입안에서 폭발하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부터 그 맛을 좋아했다. 그런데 '퓨어테이스트'를 설립하고 처음 생산한 제품은 김치가 아니었다. 초창기이다 보니 당근, 오이 절임 등 공정이 더 간단한 제품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6개월 쯤 지나 계획했던 대로 김치 생산을 시작하려던 무렵 행운이 찾아왔다. 김치를 출시하려던 찰나 공교롭게 평창동계올림픽이 시작된 것이다. 미디어에서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해 자주 보도하기 시작했고 사람들도 당연히 한국 문화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우리가 최초로 생산한 김치는 한국 전통 방식으로 만든 배추김치였는데 고객 반응이 좋았다. 지금은 무김치, 백김치뿐만 아니라 적채나 회향으로도 김치를 생산하고 있다. 우리의 원칙은 음식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식품 생산에 필요한 채소는 모두 스위스 내에서 재배된 것들을 사용하지만 고춧가루만큼은 한국에서 유기농 태양초 고춧가루를 수입해서 쓰고 있다.

주요 소비층이 누구인가?
온라인 판매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어서 정확한 소비층을 콕 짚어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해마다 스위스에서 열리는 슬로우푸드 마켓과 같은 오프라인 마켓에도 참가하는데 그런 곳에서는 아무래도 김치를 이미 잘 알고 있는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 고객들이 우리 제품을 많이 찾는다. 중요한 건 '발효'를 주제로 한 시장이 커지고 있고 현지인들도 점차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작년부터 여러 미슐랭 레스토랑들에서 발효를 콘셉트로 삼아 다양한 실험을 선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고객들은 발효 식품의 맛을 알아가게 된다. 또 다른 축에서는 영양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발효 식품의 건강함에 대한 담론을 주도해 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들이 만나면서 발효 식품이 하나의 트렌드가 된 것이다.

스위스는 '아름다운 자연'과 전통 음식 '퐁듀'를 국가 대표 이미지로 내세워 세계 무대에서 자국을 홍보한다. 마찬가지로 김치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며 이를 홍보하기 위한 민관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퓨어테이스트'에서는 김치를 주력 제품으로 판매하면서도 '한국 전통 식품‘임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다. 어떤 이유에서 이러한 전략을 택했나?
예를 들어 내가 이탈리아 방식의 토마토 소스를 이곳 스위스에서 생산한다고 하자. 나는 그 제품을 오리지널 이탈리아 토마토 소스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조리법은 전통 이탈리아 방식을 따랐다 하더라도 그 제품은 엄연히 스위스에서 현지 재료를 이용해 생산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통적 김치 레시피는 훌륭하다. 하지만 내가 그 레시피 대로 김치를 만들었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이 한국 전통 식품임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본래의 맛을 잘 내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 음식을 좋아하게 될 것이고, 맛있어서 관심을 갖게 된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그때 김치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다.
또한 나는 '발효'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한국 전통 음식'이라는 키워드로 홍보하는 것 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믿는다. 한 번은 우리 회사에서 세르비아 전통 방식에 따라 발효시킨 파프리카 소스를 만들어 판매한 적이 있다. 그 때에도 우리는 그것이 세르비아 전통 음식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지 않았다. 다만 발효된 파프리카 소스라는 점을 부각시켰으며, 그 결과 발효에 관심이 있거나 파프리카 맛을 좋아하는 고객들을 유도할 수 있었다. 김치도 마찬가지다. '어떤 음식이 어디에서 유래 되었는가'는 당연히 중요한 부분이지만 이 지점만 강조해서는 다다를 수 있는 잠재 고객층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나는 발효에 관심이 있거나 혹은 김치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지만 시도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김치를 먹어보고 그 맛에 반하기를 바란다.


퓨어테이스트 대표 마테오 씨의 김치에 대한 접근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특정한 대중을 향해 단순히 '한국적인 것'을 앞세워 한국 문화 또는 상품을 홍보하는 대신 구체적이고 세분화된 취향의 공동체들을 향한 맞춤형 홍보 전략을 선보이는 것. 그래야 비로소 한국 문화는 더욱 다양한 키워드로 포장돼 '한국 문화에 관심 있는 이들‘만의 경계를 넘어 더 많은 이들의 관심을 자극할 수 있을 것이다.

통신원 정보

성명 : 김진희[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스위스/취리히 통신원]
약력 : 전) EBS 피디, 독립다큐멘터리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