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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분석] 뉴욕타임스, 북창동 순두부 창업자 이희숙 씨의 별세소식 보도

2020-09-02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가 8월 27일자 25면에 ‘한국 음식점 체인인 ‘북창동순두부(BCD Tofu House)’의 설립자, 이희숙(61세)’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비즈니스와 경제 뉴스 전문인 질리언 프리드먼(Gillian Friedman) 기자가 작성한 기사이다. “북창동순두부의 설립자 이희숙씨가 61세로 세상을 떠났다.”로 시작되는 기사는 일단 그 길이가 예사롭지 않게 길고, 내용 역시 한국 언론에서도 다루지 않는 애정 어린 사실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 이런 지면을 할애했다는 것, 그리고 이 정도 깊이로 다뤘다는 것 모두 큰 의미라 평가된다. 먼저 기사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희숙씨는 자신의 식당이 체인점으로 성장하는 동안, 미국에서 하나의 현상이 되어버린 한국식 순두부 요리의 비밀 레시피를 개발하기 위해 긴 밤을 보냈다. 사골육수에 보글보글 끓는 매콤한 순두부의 레시피는 심지어 남편에게까지 극비로 간직했다. LA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이희 숙씨는 남편과 어린 아들들이 잠자리에 들고 나면 부엌에서 순두부가 완벽하게 맛있어질 때까지 양념의 양을 이리저리 실험해가며 수많은 밤을 보냈다. 딱 맞는 양의 고추가루를 첨가한 국물과 함께 그녀가 요리한 순두부는 숟가락이 아니라 혀에 녹을 만큼 부드러웠다.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소개할 시간이 된 순두부를 선보이면서도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낸 순두부가 미국 문화의 한 현상이 되고 그 식당이 전국적 체인이 되는 등 엄청난 영향력을 전파하리라는 것을 전혀 예견하지 못했다.

	북창동 순두부 체인의 설립자인 이희숙 씨가 61세를 일기로 지난 7월 18일 LA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녀의 장남 에디 리 박사(Dr. Eddie Lee)는 이희숙 씨 사망의 원인이 난소암이라고 밝혔다. USC 켁 의과대학(Keck School of Medicine of USC)의 조교수였던 이 박사는 최근 임시 최고 경영자로서 어머니의 사업 경영을 도왔다. 1996년 LA 코리아타운, 버몬트 길의 식당 1개로부터 시작된 북창동순두부 체인은 현재 뉴욕을 포함한 미 전역 12개 도시에 13개의 지점을 두고 있다. 북창동순두부에는 늘 길게 늘어선 고객들의 줄이 이어진다. 야간근무를 하고 난 사람들, 도심에서 밤을 지낸 젊은이들이 이희숙 씨의 순두부나 메뉴에 있는 다른 한국 음식들을 그리워할 때 찾으라고 북창동 순두부의 일부 지점들은 24시간 문을 연다.

	이희숙씨의 아들인 에디 리 박사는 북창동 순두부의 국물에 대해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맛의 비결이 양념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더 이상 비밀이 아닐 겁니다”라고 말한다. 홍희숙(이희숙 씨의 결혼 전 이름)씨는 1959년 6월 24일 서울에서 교사를 하던 홍영표 씨와 주부인 박춘자 씨의 4녀 가운데 둘째 딸로 태어났다. 홍희숙씨가 중학교에 다닐 때 그녀의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사지가 마비되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홍희숙씨의 어머니는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홍희숙씨도 가계에 추가 수입을 가져오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 그녀는 둘째 딸이었지만 책임감만은 가장 컸다. 결국 그녀의 어머니는 '네가 이제 우리 가족의 아들이란다'라고 말하곤 했었다.

	1983년 그녀는 이태로씨와 결혼했다. 변호사였던 이태로씨는 당시 식당 사업도 시작했던 터였다. 이 두 부부는 1989년 LA로 이사했다. 아들들이 영어를 더 잘 배우고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일단 LA에 간 이희숙씨는 생계를 유지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녀는 산타 모니카 대학의 그래픽 디자인 프로그램에 등록했고 1994년에 졸업했다. 1990년대 중반 어느 일요일, 가족과 함께 베렌도 스트릿의 침례교회 의자에 앉아 있던 그녀에게 식당 개업에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두 아들들의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교회가 끝나면 건너편 순두부 식당으로 가자고 애원했다.

	'제 형제들과 저는 그곳에서 먹는 것을 좋아했어요. 어머니는 순두부야말로 자신이 정말 집중할 수 있는 독특한 무엇인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라고 이희숙씨의 아들 에디 리 박사가 말했다. 이희숙 씨는 순두부 식당의 이름을 북창동의 약자인 BCD 두부하우스로 정했다. 북창동은 서울의 한 동네로 이희숙 씨 아버지의 이모가 두부집을 운영했던 지역이다.

	이희숙 씨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시내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직접 고르는 등 사업 전반에 맹렬하게 전념하게 되었다. 그녀의 아들, 에디 리 박사는 '어머니가 식탁에 내놓는 것이면 무엇이든 완벽해야 했어요. 쌀의 온도, 김치의 색깔, 두부 양념의 소금기 모든 게 완벽했습니다'라고 말했다. 《LA타임스》는 2008년 '오늘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BCD 두부하우스에 버스로 도착해 사진을 찍는다. LA를 방문하는 정부 관리들, 스포츠 스타들, 배우들이 이 식당에서 자주 식사를 한다. 24시간 문을 열어도 거의 항상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썼다.

	팬데믹 기간 동안 이희숙 씨는 해고노동자에게 건강상 혜택을, 테이크아웃 명령을 돕기 위해 체류한 사람에게는 추가 임금을 계속 지급했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사람들이 건강의 위기를 겪은 기간 동안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스프를 필요로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LA의 윌셔 대로에 있는 BCD 두부 하우스 아웃렛을 24시간 열어두었다.”라고 보도했다. 이희숙 씨의 유가족은 에디 리 박사 등 3명의 아들, 남편, 그리고 홍명희, 홍성희, 이성임 등 3명의 자매이다.


어쩌면 이렇게도 고인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는 기사인지 놀라웠다. 통신원 역시 방송국에서 일하다보니 생전에 이희숙 씨를 접한 일이 있다. 그녀는 늘 웃는 얼굴에 조용하고 온화한 존재감을 느끼게 하던 인물이었다. 이희숙 씨는 한인 사회에서 성공한 여성 기업인으로 사회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기사에서 밝혔듯이 이희숙 씨는 1989년 유학 간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러 남편과 미국으로 건너와 1996년 LA 한인타운에 북창동순두부를 개업하면서 성공 신화를 개척했다.

북창동순두부는 미주 한인들은 물론 미국인들에게까지 한국의 맛을 알리며 한식 신드롬을 일으켰다. 미국을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들이 꼭 들러봐야 하는 '소문난 맛집'으로 등극한 북창동순두부는 미주 지역에 13개 직영점을 포함해 한국과 일본에 각각 3곳과 1곳 등을 운영하며 연간 매출 수천만 달러의 체인점으로 성장했다. 북창동순두부의 메인인 순두부는 화학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유기농 식자재로 맛이 담백하다. 이에 더해 돌솥에 즉석해서 지은 찰진 밥, 조기구이, 조개젓, 갓 담근 겉절이 김치, 오이지 등 변함없는 반찬들이 한인은 물론,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돌솥의 밥을 다 먹고 나면 뜨거운 물을 부어 눌은밥을 즐길 수 있다.

북창동순두부가 이처럼 인기를 끌면서 캘리포니아 주요 도시에는 순두부 전문점이 잇달아 생겨났다. 한인 식당업주들은 북창동순두부로 인해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이 다른 한국 메뉴도 좋아하게 됐고 한인 식당도 많이 찾게 해줬다며 “한식 세계화의 1등 공신이 북창동순두부'라고 평하고 있다. 북창동순두부가 본격적인 성장세를 탈 수 있었던 모멘텀은 미드윌셔 지역의 대형 식당을 인수하면서부터다. 한인타운 한복판, 윌셔가의 사무실 밀집 지역에 위치해 인근의 화이트칼라들이 점심시간이면 긴 줄을 마다 않고 순두부를 사먹는다.

이희숙씨는 사회봉사활동도 열심히 하며 불우한 어린이를 돕는 '글로벌어린이재단' LA회장을 역임했다. '한식 한류'와 관련된 행사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팬데믹 이후 행정명령에 따라 배달과 테이크아웃만 하던 북창동순두부는 최근 주차장 공간에 천막을 설치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야외 영업 중이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뜨거운 힐링 국물로 몸과 마음의 허기를 채우고 있다. 순두부와 갈비 콤보를 먹고 있는 현지인은 “양도 맛도 모두 만족스러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찾는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북창동순두부가 이처럼 한국인과 현지인 모두의 입맛을 놓치지 않고 다 챙기며 한식 세계화의 성공적 신화를 이뤄낸 데에는 이제 별이 된 이희숙 대표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크다 하겠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이희숙 대표의 사진. 코리아타운에 위치한 북창동순두부 매장 밖에 서있다. - 출처 : 뉴욕타임스>

<뉴욕타임스에 실린 2004년의 북창동순두부 - 출처 : Ed Kashi/VII for The New York Times>

<북창동순두부의 오리지널 순두부 – 출처 : 북창동순두부 홈페이지>

<북창동순두부 매장의 로고 – 출처 : 통신원 촬영>

<주차장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영업 중인 북창동순두부 – 출처 : 통신원 촬영>

	
※ 참고자료
《New York Times》 (20. 8. 25.) , https://www.nytimes.com/2020/08/25/business/hee-sook-lee-dead.html

통신원 정보

성명 : 이정은[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아르헨티나/부에노스아이레스 통신원]
약력 : 현)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교 사회과학부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