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대표 걸그룹 블랙핑크와 미국 가수 셀레나 고메즈의 콜라보레이션 신곡 <아이스크림>에 관한 소식이 스위스 일간지 《쯔반찍미누텐(20Minuten)》 8월 28일 자에 소개됐다. '실망스럽다(wurden nur enttäuscht).'라는 한 유튜브 댓글을 인용한 기사 제목('실망스럽다'-팬들 사이 의견이 갈리는 블랙핑크와 셀레나 고메즈의 신곡)이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지만, 실제 기사는 해당 곡과 뮤직비디오에 대한 꽤 깊이 있는 설명을 담고 있다. 스위스 신문 지면이 케이팝 그룹에 관한 기사에 이 정도 분량을 할애하는 건 이례적인 경우다.
<블랙핑크 신곡 ‘아이스크림’ 뮤직비디오 – 출처 : 쯔반찍미누텐(20Minuten)>
해당 기사는 <아이스크림> 뮤직비디오 공개를 둘러싼 상황을 요약해 전달한다. '많은 팬들의 관심 속에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케이팝 걸그룹 블랙핑크와 미국 가수 셀레나 고메즈의 콜라보레이션이 공개됐으며,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아이스크림>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지 11시간 만에 유튜브에서 4천 6백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8월 28일 기준)했다는 내용이다. 기사 요약에서는 또한 현재 미국 아이튠즈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또 다른 케이팝 밴드 BTS를 언급하며, 블랙핑크와 BTS 팬들 사이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까지 전한다. 더불어 세계적인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와 싱어송라이터 빅토리아 모네 역시 해당 곡에 참여했음을 언급, 이 콜라보레이션의 규모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우회적으로 설명한다. 기사에 따르면 <아이스크림> 뮤직비디오는 여러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키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 근거로 몇 가지 구체적인 이유를 들었다. 첫 번째, 블랙핑크와 셀레나 고메즈가 뮤직비디오를 함께 촬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코로나로 인해 셀레나 고메즈가 한국을 방문, 블랙핑크와 함께 뮤직비디오를 찍는다는 계획이 무산됐고 그 대신 자신의 분량을 미국에서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셀레나 고메즈가 케이팝 걸그룹과 함께 일명 '군무'를 소화하는 모습을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분명 실망스러운 결과다. 또 다른 비판은 <아이스크림> 곡 자체에 관한 것이다. 우선 '진부한 가사와 반복적이고 평범한 비트'라는 지적이 있다. '가사가 마치 여고생 일기장에 쓰여 있는 내용 같다'라는 한 유튜브 댓글까지 인용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노래와 랩 파트가 불균등하게 분배되어 노래를 담당하는 로제와 지수 분량이 나머지 두 명에 비해 지나치게 적다'는 평가가 있다. 이 평가가 적절한지 여부를 떠나 케이팝 그룹 각 멤버가 담당하고 있는 그룹 내 역할까지 자세히 전달하는 기사의 접근이 흥미로웠다. 이렇듯 해당 보도는 언뜻 보면 블랙핑크의 신곡에 대한 다소 실망스러움을 내비치는 기사인 듯 하지만 기사의 구체적인 내용을 넘어서 주목해야 할 점은 언론에서 케이팝이라는 소재가 다루어지는 방식이다. 과거 케이팝이 한국과 지리적, 문화적으로 가까운 아시아 국가들에서 제한적으로 사랑받을 때만 해도, 이에 관한 스위스 언론 보도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케이팝을 비롯한 한국 드라마, 영화, 음식 등 대중문화는 이 곳 스위스에서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향유되는 소수 문화였다. 시간이 흘러 케이팝의 영향력이 유럽까지 도달하자 현지 언론들도 이에 관심을 갖고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한 예로 2018년 9월 쯔반찍미누텐에 보도된 케이팝 관련 기사의 제목은 '왜 모든 이들이 케이팝에 열광하는가?(Warum fahren gerade alle so krass auf K-Pop ab?)'였다. 이 제목이 시사하는 것은 해당 기사의 전제가 '케이팝은 새로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케이팝이 북미 음악처럼 자연스러운 글로벌 문화의 한 줄기라면 케이팝이 대체 무엇인지부터 소개하고, 그 인기 이유까지 다각도로 분석하는 이와 같은 기사는 필요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새로운 문화 현상으로서의 케이팝'을 다루던 스위스 언론들도 케이팝을 비롯한 한국 대중문화상품이 전 세계적으로 더 큰 성공을 거둠에 따라 이를 당연한 대중문화의 한 지류로 여기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특정 케이팝 그룹에 관련된 소식을 전하는 기사의 제목들에서, ‘케이팝 그룹’ 또는 ‘한국 출신의’ 등의 수식어가 빠지게 된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대신 우리가 셀레나 고메즈를 늘 미국 출신 가수라고 부가 설명하지 않듯, 블랙핑크나 레드 벨벳, BTS와 같은 그룹명이 이제는 스위스 언론에서도 추가 설명 없이 기사 제목에 등장한다. 케이팝이 이미 통용어가 되고 한국 출신 뮤지션들이 글로벌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유럽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일은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임이 분명하다. 쯔반찍미누텐(20Minuten)은? 쯔반찍미누텐은 1999년부터 스위스에서 발행되기 시작한 무료 일간지이다. 처음에는 독일어권 지역에서만 발행되었으나, 2006년 프랑스어권, 2011년 이탈리아어권 버전이 추가로 발행됨으로써 현재는 스위스 전역에 배포되고 있다. 다소 가벼운 소재들을 다루고 전국 기차역 및 도심에서 무료로 배포되기 때문에 진지한 저널리즘으로서의 평가를 받지는 못하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자체 모바일 앱, 온라인 버전 덕에 젊은 층에서 인기가 높다. 케이팝을 비롯한 한국 문화에 대한 기사가 스위스에서 가장 자주 보도되는 매체이기도 하다. 주요 독자층을 맞춤 겨냥한 소재 선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성명 : 김진희[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스위스/취리히 통신원] 약력 : 전) EBS 피디, 독립다큐멘터리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