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현지 시간), 터키 남부 유명 관광지 안탈리아주(州)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안탈리아주에서 시작된 산불이 14일째 45도가 넘는 고온의 날씨와 강풍으로 터키 전역을 집어삼킬 기세이다. 성난 화마는 터키 81개 주 가운데 절반도 넘는 53개 주 산림을 모조리 다 불태웠다. 그리고 불길을 피하지 못한 주민들과 수많은 야생 동물들의 생명까지 앗아갔다. 눈앞의 대형 산불에 놀란 가축들이 우리 안을 탈출해 도망하는 모습에 주인들은 평생을 자식과 같은 심정으로 키워온 가축들이 죽지 않도록 사력을 다해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성난 화마는 수십 대의 요트들이 정박해 있던 보드룸항의 평온함도 덮쳐 순식간에 모든 걸 앗아갔다. 그 누가 이런 상황이 올 거라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휴식을 즐기고 있던 관광객들은 무섭게 솟아오르는 불길에 놀라 짐도 챙길 겨를도 없이 부리나케 요트로 몸을 피했다.
<한국의 예술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터키를 위한 기도’ – 출처 : 손명원 인스타그램(@rock_our_dream)>
<터키 대형 산불로 고통받는 소식들이 알려지면서 놀라운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터키 지역 언론사 《베쉭타쉬》는 2021년 이번 터키 대형 산불에 대한 애도의 글을 한국의 예술인들이 SNS를 통해 공유하는 모습에 큰 관심을 보였다. 메시지 내용은 ‘PRAY FOR TURKEY’(터키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라는 타이틀로 현재 대형 산불 화재가 계속되고 있는 53개 주(Manavgat, Bodrum, Alanya, Kayseri, Adana, Osmaniye, Mersin 등) 리스트를 적어서 헤시태그(hashtag)로 공유하는 형식이다.
<한국 음악 밴드 ‘Wihi’의 앙카라 팬미팅 이후 인터뷰 – 출처 : Anadolu Ajansi>
현지 언론사가 전한 기사 내용 중에 통신원의 관심을 끌게 한 내용은 인스타그램 아이디 ‘Rock_our_dream’을 사용하는 연예인의 메시지를 비교적 많은 분량으로 소개했다는 점이다. 언론사 《베쉭타쉬》가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소개한 인물은 ‘손명원’이란 다소 낯선 이름이었다. 터키와 관련된 낯선 그의 이름을 여러 경로를 통해서 찾아보니, 터키에서 그에 대한 첫 소식은 2019년 주터키 한국문화원을 통해 전해졌다. ‘Wihi’라는 이름의 신생 4인조 록 밴드가 팬들의 초청으로 콘서트를 하기 위해 터키에 왔다는 내용이다. 그 이후에도 ‘Wihi’ 그룹은 2020년 터키 이즈미르 지역을 강타한 7.0 대지진이 발생했을 당시에도 이번과 같이 SNS를 통해 팬들에게 터키에 대한 지원과 기도를 하자는 메시지 운동을 펼쳤다. 더 놀라운 것은 이번 터키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때, 그의 팬클럽이 그의 이름을 대신해서 묘목을 기부했다는 점이다. 해당 기부 단체는 1996년에 설립된 민간 재단(OGEM-VAK)으로, 화재로 불타 없어진 산림에 다시 나무를 심어 자연을 복원하는 일을 하는 곳이다. Wihi 그룹의 팬들이 안탈리아주에서 시작된 이번 대형 산불로 훼손된 자연을 복구하기 위해서 묘목을 심는 의미 깊은 일을 한 것이다. 통신원은 오랜 시간이 지났고 함께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뮤지션과 팬들과의 관계가 음악 이상으로 지속적인 영향력을 주고 받는 모습에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번 터키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때 묘목 기부 운동이 시작된 데에는 한국 배구 국가 대표 김연경 선수의 영향력이 가장 컸다. 김연경 선수는 2011년부터 8년 동안 터키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터키인들 사이에서 김연경 선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현지에서 선수의 인기는 지금도 대단하다. 김연경 선수는 여자 배구 세계 랭킹 1위의 매우 높은 기량을 갖췄음에도 터키에서 그녀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이웃집 언니와 같이 금세 가까워진다. 그만큼 김연경 선수가 가지고 있는 겸손함과 친밀함은 그의 기량만큼이나 깊다. 그래서였을까? 이번 2020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과 터키가 8강전에서 맞붙어 이겼을 때도 정작 승리의 주역인 김연경 선수는 한국보다 강팀인 터키를 이겨서 마냥 기뻐하지 않았다. 김연경 선수는 터키 선수들이 주저앉아 울고 있는 이유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터키 선수들은 대회 중에도 산불이 잡히지 않았다는 소식에 국민들을 위로해 주고 싶었던 마음이 어느 때보다 컸다. 그런데 한국 팀에게 패해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되자, 모두 그 자리에 앉아 굵은 슬픔의 눈물을 멈추질 못했다. 승패가 중요한 스포츠 세계에서 경기가 끝나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던 터키 선수들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기에서 패한 데 흘린 눈물이라고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연경 선수는 터키 선수들의 눈물이 어떤 의미였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때 김연경 선수가 일어나서 주저앉아 울고 있는 터키 선수들과 국민들을 위해 눈물을 닦아 주면서 묘목 기부 운동을 시작했다. 터키 언론도 묘목 기부 운동이 시작된 시점이 한국과 터키 여자 배구 8강전이 끝난 이후부터였다는데 큰 관심을 가졌다. 김연경 선수의 팬들이 김 선수를 대신해서 ‘teamkorea’, ‘Kimyeongkyung’의 이름으로 묘목 기부 운동이 날마다 줄을 잇고 있다. 현재 SNS를 통해 기부 운동이 일고 있는 터키 기관은 다섯 개 정도로, 모두 민간 재단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그 가운데는 산불 화재로 다친 동물들을 지원하는 곳도 있었다. 통신원은 해당 기관 중 하나인 ‘디킬리 아아즘 봐르’(Dikili Agacim Var) 대표와 연락이 닿아 현재 묘목 기부 상황에 대해서 문의해 봤다. 기관 대표는 통신원과 전화 인터뷰에서 터키 산불이 발생한 이후에 묘목을 기부하는 한국인들이 날마다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기부자 정보에 국가명은 기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국가에서 가장 많은 묘목을 기부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기부자명을 보면, 전 세계 여러 국가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기부가 단연 높고 날마다 묘목을 기부하는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명단 리스트는 일별로 업데이트가 되어서 하루가 지난 데이터는 체크해 볼 수 없었다. 통신원이 한 주간 동안 해당 기관 홈페이지를 들어가 기부자 이름을 확인해 본 결과, 실제로도 한국인들의 이름이 단연 많았다. 한국인들의 묘목 기부 행렬이 날마다 이어지자, 상기 묘목 기부 기관에서는 아예 한글로 된 감사 메시지를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올려 놓았다. 묘목 기부 기관 디킬리 아아즘 봐르에 기재 허가를 받고 한글로 된 메시지를 올려 본다.
<터키 묘목 기부 단체에서 올린 한글로 된 감사 메시지 – 출처 : 디킬리 아아즘 봐르>
통신원은 국가의 절반이 넘는 산림이 화재로 불에 타 버린 터키를 위해 지원을 멈추지 않고 있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알 수 없는 뭉클함이 가득 차 올라 가슴이 뜨거워졌다. 한국과 터키는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다. 혹자들 가운데는 한국과 터키의 관계를 지칭할 때 부르는 ‘형제 국가’라는 명제가 종교·문화적으로, 지역과 정치적으로 현재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말도 일리가 있다. 논쟁을 너머 지역과 종교, 그 어떤 문화와 예술로도 얻을 수 없는 형제애를 생각해본다. 불타 버린 터키를 위해서 나무를 심자며 묘목 기부 운동을 유독 한 민족이 발 벗고 나서서 쉬지 않고 하는 것은 그 어떤 절대적인 의무나 이념, 인위적인 힘을 가지고도 따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바라기는 최악의 산불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터키를 위해 한국인들의 지원과 응원이 계속되기를 기대해 본다. ※ 참고자료 《국민일보》 (21. 8. 10.) <”오랜 우정”…터키 ‘김연경 묘목’ 기부에 한글편지 화답>,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6152671&code=61131611&cp=nv 《BESIKTAS》 (21. 7. 31.) , https://www.dikiliagacimvar.com/en/ 《BESIKTAS》 (20. 11. 1.) , https://www.besiktas.com.tr/magazin/guney-koreli-sanatci-rockdailyden-izmir-depremi-icin-paylasim/7552 《HABERLER.COM》 (19. 7. 20.) , https://www.haberler.com/koreli-muzik-grubu-wihi-ankara-da-hayranlariyla-12263654-haberi/ 터키 묘목 기부 기관 ‘DIKILI AGACIM VAR’, https://www.dikiliagacimvar.com/en/
성명 : 임병인[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터키/이스탄불 통신원] 약력 : 현) YTN Wold 리포터 전) 해외문화홍보원 대한민국 바로 알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