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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이슈] 앙카라에 울려 퍼진 '코리안 사운드', 전통과 현대를 잇는 국악의 여정

2025-11-12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지난 9월 27일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국립국악관현악단 청년교육단원의 '코리안 사운드' 공연이 열렸다. '2025 투어링 케이-아츠' 사업 일환으로 개최된 이번 공연은 재외한국문화원의 협력을 통해 한국의 문화예술 교류를 증진하고, 우수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해외 진출 기회 제공을 통한 글로벌 역량 강화 및 네트워크 확대 기반 마련을 목적으로 기획됐다. 특별히 이번 '코리안 사운드'는 2025 국립국악관현악단 청년교육단원의 공연으로 펼쳐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청년교육단원 육성' 사업을 통해 청년 예술인들에게 국내 최고의 국립예술단체에서 교육받고 함께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해당 사업으로 총 45명의 청년교육단원을 선발해 운영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는 내부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연주자 11인이 튀르키예 관객을 만났다.

통신원은 본 공연에 대한 취재 방향을 정하는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선 국립국악관현악단 청년교육단원을 육성하기 위한 사업 일환으로 보고 개최한 해외 공연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청년교육단원이 국악 관현악이란 새로운 장르를 한국 음악의 확장과 융합의 한 과정으로 보고, 해외 관객과 어떻게 소통해 전달해야 하는지를 경험하고 도전하는 장으로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공연이 펼쳐질 건물 앞에 들어서자 전혀 전형화된 공연장의 모습이 아니라 살짝 놀라웠다. 입구 벽면에는 '코리안 사운드' 공연 포스터 외에도 그림 전시회나 북 콘서트 등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르를 소개하는 포스터들이 걸려 있었고, 테이블과 의자도 정돈되지 않은 상태로 1층과 지하에 놓여 있어 매우 자유로운 느낌이 들었다. 마치 한 공간에 여러 종류의 예술이 뒤섞여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코리안 사운드' 공연 전 찬카야 사흐네 공연장 건물 안팎의 모습

< '코리안 사운드' 공연 전 찬카야 사흐네 공연장 건물 안팎의 모습 - 출처: 통신원 촬영 >

국악 관현악으로 앙카라의 예술적 공간을 채우다
통신원은 본 공연장의 지난 스토리를 알고서야 이해했다. 이번 '코리안 사운드' 공연이 열린 찬카야 사흐네(Cankaya Sahne)는 1967년 처음 영화관으로 개관한 뒤 지역 주민들의 문화 중심지로 운영됐다. 하지만 이후 건물은 TV와 비디오 시대의 도래를 맞아 본 기능을 상실하고 카페와 레스토랑, 카지노로 변모하며 정체성을 잃었고 결국 1987년 폐관했다. 2019년 10월 연극인 메흐멧 악타이의 주도로 '찬카야 사흐네'라는 이름의 공연예술 공간으로 재개관하며 지금의 수많은 연극과 콘서트, 영화, 전통·현대 음악회를 여는 문화의 장으로 탈바꿈됐다. 

재개관 당시 메흐멧 악타이가 "이 공간은 여러 세대가 각기 다른 소리, 이미지, 감동을 경험해 온 곳입니다. 천 번의 정성으로 지어진 이 벽과 계단에 스며든 대사와 음악, 영화의 명장면들의 기억이 언제나 생생하기를 바랍니다."라고 전한 만큼 찬카야 사흐네는 문화예술 공간에 의미를 크게 둔 유서 깊은 건물이다. 이 같은 의미를 되새겨 볼 때 이번 '코리안 사운드' 공연은 과거와 현재, 동·서양의 전통과 현대의 다양한 예술적 가치가 공존해 온 무대를 통해 한국인의 얼이 담긴 국악 관현악 장르의 음악을 전하게 되는 것이기에 공연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뜻깊다. 공연장 무대와 계단 하나하나 위에 새겨진 예술가들의 지난 흔적들을 상상하며 입구에 들어서니 그날의 공연이 더 설레게 다가왔다. 행사장은 공연을 보기 위해 온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500석 좌석이 금방 만석을 이뤘고, 일층과 이층 입석 자리를 포함한 1만 7,000석의 좌석이 꽉 찼다. 이러한 모습은 최근 수년간 통신원이 취재해 온 한국 전통음악 공연과 비교했을 때 평균 다섯 배 이상의 관객 수 차이가 난다.
1만 7,000석의 좌석을 모두 채운 '코리안 사운드' 공연

< 1만 7,000석의 좌석을 모두 채운 '코리안 사운드' 공연 - 출처: 통신원 촬영 >

과거에서 현재로, 공연장이 품은 시간의 기억
관객들은 주튀르키예한국문화원에서 준비한 김밥을 즐기며 이제 곧 펼쳐질 공연을 기다렸다. 기분이 묘했다. 1967년 개관 이래로 58년간 시네마와 카페, 레스토랑과 카지노로 변모했다가 다시 연극과 콘서트, 전시장으로 동서양의 수많은 예술가들의 혼을 불어 넣은 곳에서 국악 관현악이라는 한국의 음악 장르까지 듣게 될 것을 생각하니 한국문화에 대해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공연 예술인들은 자신의 음악에 대해 완전히 이해한 상태로 무대에 선다. 더불어 자신이 서게 될 공연장과, 그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에 대한 이해도 동반해야 한다. 더욱이 이번과 같이 처음으로 해외 관객을 만나는 국립국악관현악단 청년교육단원들에게 곡에 대한 이해만큼 중요한 것은 공연장과 관객에 대한 이해력이다. 통신원은 이와 같은 면을 염두에 두고 국립국악관현악단 청년교육단원의 연주에 주목했다. 무대 조명이 모두 암전되고 11명의 청년교육단원(안유진-가야금, 박진희-거문고, 이현호와 류수빈-대금, 이예진과 김준태-피리, 하예원과 강현지-해금, 이현규-대아쟁, 정예빈과 고영민-타악)에게 관객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청년교육단원은 이번 공연의 구성을 '전통의 재해석'과 '젊은 감각의 실험', '문화 융합의 정점'이라는 세 축으로 나눠 여섯 곡을 삽입해 도입부터 강한 국악의 사운드로 공연장을 가득 채워 갔다. 

튀르키예 해외 관객들과 국경을 넘는 음악적 소통
각 곡마다 작곡가의 의도와 연주자 스타일을 조화롭게 잘 담아냈다. 첫 곡 <수류화개>는 창작곡으로 물이 흐르고 꽃이 피어나는 자연스러움처럼 우리 음악 속 가락과 장단 본연의 매력에 집중하는 곡이며, <시간의 색>은 흘러가는 시간이 주는 다양한 색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어 거문고의 다채로운 주법이 디지털 사운드와 어우러지는 <거문고 독주를 위한 Burning>이 연주됐다. 황해도 일대에서 널리 불리던 민요 선율이 다채로운 선율과 리듬으로 변화돼 <실내악을 위한 배꽃타령>이라는 곡으로 재탄생했다.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진 경기민요 <늴리리야>를 일본 압제의 사슬을 끊고 해방을 염원하는 독립의 의지로 다시 그려낸 <늴리리야 주제에 의한 염원>으로 연주했다. 단원들은 젊은 국악인으로서 한국과 튀르키예 음악의 조화와 융합을 위해 경기민요 <태평가>와 튀르키예 전통민요 를 연곡했다. 곡 선택부터 구성, 연주까지 직접 기획한 청년단원은 젊은 예술인의 감성으로 고급스러운 국악 관현악 공연을 완주했다. 한국 최고 수준의 국립국악관현악단 청년교육단원의 연주에 현지 관객들도 다양한 감동의 반응을 보이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승철 주튀르키예한국문화원장

< 전승철 주튀르키예한국문화원장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번 '코리안 사운드' 공연을 앙카라에서 개최하게 된 배경과 의미는 무엇인가요?
주튀르키예한국문화원은 매년 '카라반 한국문화의 날' 행사를 개최하면서 문화원이 없는 지역을 직접 방문해 케이팝을 비롯한 한류 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진행 과정에서 느낀 점은 현지인들이 이제는 케이팝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음악 공연 행사에도 굉장히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국 국립극장 소속의 국립국악관현악단을 초청해 앙카라에서 한국 최고 수준의 전통 음악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튀르키예 관객들이 오늘 공연으로 어떤 반응을 보이고, 또 어떤 효과가 나타나길 기대하시나요?
튀르키예에서 초기 한류는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을 중심으로 성장했습니다. 이제는 국악도 K-콘텐츠의 한 장르로 한류의 성장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관련해 주목되는 현상이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영향으로 튀르키예 현지 한류 팬 사이에서 도입 부분에 나온 한국의 전통악기에 대한 관심이 실제로 많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문화원에서도 가을 학기부터 고급반까지 추가로 강좌를 개설할 계획인데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번 '코리안 사운드' 공연도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게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청년교육단원 박진희(거문고)

< 국립국악관현악단 청년교육단원 박진희(거문고)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번 공연의 청년 연주자로서 젊은 세대가 재해석한 국악의 음악적 특징이나 표현 방식이 튀르키예 관객에게 어떤 새로운 매력으로 전달될 것 같나요?
청년단원들은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자신들의 감각과 에너지를 작품에 불어넣고 있습니다. 리듬과 선율에 젊은 감각이 묻어나기 때문에 튀르키예 관객들이 공연을 통해 한국 고유의 정서, 현대적인 생동감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청년교육단원은 문화 외교관으로서 무대 위 연주를 통해 어떤 성장을 이루길 기대하십니까?
이번 무대는 단순한 연주를 넘어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문화 외교관으로서의 경험이 될 것입니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관객 앞에서 연주하는 순간, 음악의 보편성과 소통의 힘을 직접 체감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 경험은 예술가로서의 자신감을 한층 더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케이팝의 중독성 있는 멜로디나 한국 드라마의 극적 서사와는 달리 국악만이 가진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국악의 소리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온 삶과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빠르게 소비되는 것이 아닌 깊게 스며드는 울림과 여운이 바로 국악만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통해 한국의 신화나 샤머니즘 세계관을 접한 현지 팬들에게 국악 관현악이라는 장르를 통해 전하고 싶은 한국의 정신이 있다면요?
<시간의 색>은 전통 선율에 현대적인 편곡이 어우러지면서 과거와 현재가 함께 숨 쉬는 공존의 정신을 보여주고, <늴리리야>는 예로부터 모두가 함께 부르면서 흥을 나누던 곡입니다. 이번 무대에서는 관객과 하나가 돼 흥을 나누는 장면을 만들고자 합니다. 장구의 힘찬 장단과 대금의 바람 같은 숨결, 북의 강렬한 울림이 어우러질 때 한국의 정신 즉, 자연과 사람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세계와 조화를 이루려는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튀르키예 관객 제이넵

< 튀르키예 관객 제이넵 - 출처: 통신원 촬영 >

오늘 국악 관현악 공연은 어땠나요?
사실 저는 2008년 튀르키예에서 <대장금>이 방송됐을 때부터 한국 드라마를 꾸준하게 시청해 오고 있는데요. <대장금>을 너무 좋아해 자연스럽게 한국어와 한식을 배우게 됐고, 지금은 한국의 전통음악에도 관심이 생겨 기회가 될 때마다 공연을 찾고 있어요. 소셜미디어에서 "한국 최고 수준의 국립국악관현악단 공연"이라는 광고를 보고 이곳을 찾아왔는데 정말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공연에서 어떤 악기가 가장 기억에 남나요?
사실 악기 이름은 잘 알지는 못하는데요. 일렉 거문고 연주를 들을 때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공연할 때 보통 일반 거문고는 연주자 뒤에서 잘 보이지 않거나, 소리도 자연스럽게 드러나지 않는데 이번 '코리안 사운드' 공연에서는 거문고 연주가 가장 돋보였습니다. 기존 공연과는 다르게 강력한 일렉 거문고 소리가 전체 악기를 리드한다고 느껴졌습니다.
 2025 투어링 케이-아츠 '코리안 사운드' 공연 후 단체사진

< 2025 투어링 케이-아츠 '코리안 사운드' 공연 후 단체사진 - 출처: 통신원 촬영 >

2025년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울린 '코리안 사운드'는 주튀르키예한국문화원이 협력하고 국립국악관현악단 청년교육단원이 함께 만들어 낸 매우 뜻깊은 공연이었다. 튀르키예 대중들에게 국악 관현악이란 장르를 알리며 국악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 시간이었다. 다만 청년교육단원이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였음에도 현지 관객들과 좀 더 가깝게 호흡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공연장 1층과 2층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단원들과 눈빛을 나누며 공연의 여운을 함께 이어가기를 기대했다. 음악이라는 도구는 상대의 언어를 알지 못하더라도 연주자의 손짓이나 표정 하나에도 눈물을 흘리거나 웃는 등 관객과 하나가 되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청년교육단원이 앞으로도 무대 밖 더 넓은 세계에서 한국의 전통음악을 알리는 민간외교관의 역할을 해 나가길 기대한다. 그 과정에서 무대 안에서도 늘 관객들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청년 국악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사진 출처    
- 통신원 촬영

통신원 정보

성명 : 임병인[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튀르키예/이스탄불 통신원]
약력 : YTN world 해외 리포터, 민주평통 남유럽협의회 튀르키예 지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