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태국 언론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한국'과 '소프트파워'이다. 이는 지난 9월 10일, 블랙핑크의 태국인 멤버 '리사'가 솔로곡 <라리사>를 발표하며 공개한 뮤직비디오에서, 태국 전통 머리 장식인 '차다'와 태국 디자이너의 의상을 착용하고 자신의 고향인 태국 부리람주의 유적지인 파놈 룽 석상을 등장시킨 것이 시발점이 됐다. <라리사>는 발매 직후 전 세계 72개국 음원 차트 정상을 기록하고 뮤직비디오 또한 13일 만에 2억 뷰로 케이팝 여성 솔로 최단 기록을 갱신하는 등 큰 화제를 모았다. 또한 태국 문화를 등장시킨 것에 일부는 전통 머리 장식을 잘못 사용했다며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지만, 대부분 세계에 태국문화를 알리고 리사 자신이 태국인임을 당당히 드러냈다는 호의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가 “리사의 뮤직비디오 속 태국문화 적용이 태국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고 문화를 국제적으로 전파했다”고 9월 13일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태국 정부는 팬데믹 이전부터 태국 공예품, 음악, 공연 등 '소프트파워'를 활용한 창조경제(the creative economy) 및 문화관광에 대한 홍보를 실행하고 있다고 내세우면서 '한국'과 '소프트파워'가 각 언론의 화두가 되기 시작했다. 물론 쁘라윳 총리의 자화자찬식 발언에는 바로 역풍이 불었다. 《방콕포스트》는 “‘소프트파워’는 꿈일 뿐인가?(’Soft power’ just a dream?)”라는 제하의 사설에서 리사의 인기와 이를 칭찬한 쁘라윳 총리의 발언을 다루며 “쁘라윳 총리는 리사의 성공에 태국이 어떤 부분을 공헌했는지 묻지 않았다. 리사는 태국적인 것을 똑똑하게 이용했을 뿐, 스타가 되기까지 태국으로부터 어떤 문화적 자극도, 기반 지원도 주어지지 않았다. 리사로부터 영감을 받아 '창조경제' 정책을 자랑할 수는 있으나 또 다른 성공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정부가 검열에 익숙하고 젊은이들로 하여금 창조적인 생각을 하게끔 허용하지 않는 한 창조경제는 그저 꿈일 뿐으로, 젊은이들은 리사처럼 한국에서 성공하고 싶어할 것이다”라고 일갈했다. 다른 언론들의 반응도 “리사의 이번 성공은 한국-태국 소프트파워의 윈-윈 효과로 태국 소프트파워가 타 국가에 진출할 시 한국과 같이 좋은 협력 방식을 배워야 할 것(일간지 《내우나》 9월 17일자)”, “리사 외에도 여러 태국인 가수들이 케이팝 무대에서 선전 중으로, 앞으로 젊은이들의 잠재력을 개발하면 태국 또한 한국처럼 소프트파워 수출이 가능하다는 영감으로 작용하고 있음(일간지 《데일리뉴스》 9월 21일자)” 등 한국을 롤모델로 태국의 소프트파워를 성장시키자는 논지의 기사가 잇따라 보도되었다.
<'리사' 관련 한류가 가진 소프트파워를 분석한 방콕 포스트 기사 - 출처: 방콕 포스트>
공영방송 《PBS》는 9월 21일 이욱헌 태국대사와의 인터뷰 중 리사뿐만 아니라 방탄소년단의 유엔총회 연설 등 한류의 공공외교 활용에 대해 물었으며 이 대사는 “문화에 있어 쌍방향 협력과 의사소통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한국의 공공외교 정책은 문화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나라 국민들이 한국문화를 함께 즐기도록 초대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하였다. 또 다른 공영방송 《MCOT》는 10월 9일 저녁 뉴스에서 아예 ‘한국, 소프트파워 수출의 성공사례’를 주제로 이 대사를 인터뷰하며 한류가 어떻게 소프트파워가 될 수 있었는지, 외국 인재 융화를 위한 정부와 민간의 노력, 태국의 어떤 부분이 소프트파워 화 될 수 있는지, 양국의 소프트파워 협력 가능성 등을 집중적으로 묻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대사는 우수한 아티스트들의 등장과 연습생 등 한국식 트레이닝 시스템, 유튜브 및 소셜미디어 같은 IT의 발달로 빠른 문화전파 가능 등 기반 하에 한류가 소프트파워로 성장했으며 태국도 태국 음식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등 소프트파워의 잠재력이 상당하고 앞으로 민간 부문의 협력과 교류를 양국 정부가 적절히 지원한다면 양국 소프트파워 협력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한 지난 도쿄올림픽 및 패럴림픽에서 태국 선수들이 한국인 감독들의 지도하에 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따낸 것을 한-태 협력의 좋은 예로 들기도 했다. 10월에도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소프트파워의 롤모델인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한 태국 언론의 관심은 계속되고 있다. 10월 18일 《방콕포스트》는 “<오징어 게임>, K-쇼크(The Squid game K-shock)”라는 칼럼을 통해 “지난 9월 유엔총회에서 방탄소년단이 연설과 유엔본부를 무대로 한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며 100만 명의 생중계 시청자를 모은 데 이어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 사상 최대 시청자 기록을 세우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2019년 오스카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처럼 한국의 불평등과 쇠퇴한 기회를 다루며 자본주의의 병폐와 팬데믹 속 세계적인 불균형을 비판하고 있다. 또한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 인기를 누리듯 한국과 태국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 또한 자신들의 문화적 풍족함과 자국의 아름다운 풍경 등을 배경으로 세계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많은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지만 <오징어 게임>처럼 잔혹할 필요는 없다”고 보도했다.
<한국문화 성공의 비결을 집중보도한 PPTV 화면 - 출처: PPTV 보도 화면>
아예 ‘한류=소프트파워’라는 공식 하에 한류의 탄생 배경부터 정부 차원의 지원, 한류의 역사와 현재 등을 집중 보도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10월 13일 지상파 방송인 《PPTV》가 ‘한국문화, 세계 트렌드를 이끌다’라는 제목으로 문화 수출의 중심지가 되고 있는 한국문화 성공의 비결을 취재하며 과거 불행했던 전쟁의 역사를 지나 1997년 IMF를 계기로 대중문화 수출의 아이디어가 시작됐고 아티스트의 재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그룹별 이미지와 컨셉에 맞춘 트레이닝 시스템으로 케이팝이 크게 성장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케이팝 월드페스티벌’에서 좋아하는 케이팝 가수들의 커버댄스를 추는 세계 각국의 참가자들을 보여주며, 과거와 달리 현재 세계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미국 위주가 아닌 한국이라는 새 경쟁자를 맞이했으며 불과 10~20년 전에는 한국인 자신들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전달했다. 이렇게 이번 ‘리사’와 <오징어 게임>을 계기로 태국에서 한류와 한국문화는 ‘소프트파워’ 성공사례의 대표주자이자 태국과 태국문화가 본받아야 할 롤모델로 다시 격상하고 있다. 태국에서 한류 붐이 시작된 지 두 세기에 가까운 지금, 한류는 매번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며 현지 언론의 다양한 조명을 받고 있다. 이것이 바로 소프트파워가 가진 영향력이 아닌지,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 참고자료 《Bangkok Post》 (21. 9. 15.) <’Soft power’ just a dream?>, https://www.bangkokpost.com/opinion/opinion/2182035/soft-power-just-a-dream- 《PPTV》 (21. 10. 13.) <เจาะลึก! ความสำเร็จ “เกาหลีใต้” ส่งออกวัฒนธรรม ผงาดขึ้นเป็นกระแสนิยมทั่วโลก>, https://www.pptvhd36.com/news/%E0%B8%95%E0%B9%88%E0%B8%B2%E0%B8%87%E0%B8%9B%E0%B8%A3%E0%B8%B0%E0%B9%80%E0%B8%97%E0%B8%A8/158391 《Bangkok Post》 (21. 10. 18.) The Squid game K-shock, https://www.bangkokpost.com/opinion/opinion/2199491/the-squid-game-k-shock
성명 : 방지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태국/방콕 통신원] 약력 : 현) 태국 국립쫄라롱껀대학교 석사(동남아시아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