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말 스위스 영화제의 첫 주자인 제네바 블랙무비영화제(BlackMovie)에서는 한국 영화 다섯 편을 관객들에게 소개했다. 올해는 홍상수 감독의 <소설가의 영화>, <탑(Walk Up)>, 홍성은 감독의 <혼자 사는 사람들> 그리고 2023년 2월 한국에서의 개봉을 앞둔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가 소개됐다. 특히 정주리 감독은 이번 영화제에 초대돼 관객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우연찮게도 스위스 로잔에 위치한 시네마테크(Cinémathèque)에서는 2023년 1월의 시작을 한국 영화 시리즈로 열었다. 2000년부터 개봉된 23편의 한국 장편영화를 선보이는데 그중 정주리 감독은 시네마테크에 방문해 그녀의 영화를 소개했다. 영화 <다음 소희>는 스위스의 배급사 트리곤(Trigon Film)을 통해 일반 영화관에서도 점차적으로 개봉될 예정이다.
<정주리 감독의 영화 '다음 소희'- 출처: 제네바 블랙무비영화제(Black Movie Festival) 제공/트윈플러스파트너스>
영화 <다음 소희>는 한국 영화 최초로 지난해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에 선정돼 첫 선을 보였다. 프랑스, 독일, 영국, 일본, 중국, 캐나다 등 굵직굵직한 해외 영화제에서 빛나는 호평을 받았으며 이는 스위스 관객들에게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통신원은 영화가 꼬집는 대기업 취업에 대한 환상, 개선이 요구되는 노동 현실과 고용구조, 인센티브와 실적만을 강조하는 현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가족 등은 '과연 한국만의 현실일까?'라는 질문이 앞섰다. 이에 영화 <다음 소희>의 정주리 감독님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제네바 블랙무비영화제와 로잔 시네마테크에 초청된 정주리 감독 - 출처: 통신원 촬영>
감독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를 졸업하고 영화에 대한 공부를 더 하고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다시 입학해 석사과정까지 마쳤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단편영화 몇 편을 만들었고 2014년에는 영화 <도희야>로 첫 작품을 냈습니다. 8년이 지난 지금 두 번째 영화 <다음 소희>로 다시금 관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영화 <다음 소희>를 제작한 계기 2017년 초 전주의 한 콜센터에서 현장 실습으로 일하던 여학생이 5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언론에 노출은 됐으나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2020년 말 작품 제의를 받고서야 그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당시 기사들을 찾아보고 이슈가 된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나서야 구체적인 사실들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순수한 질문이 남았습니다. '왜 고등학생이 이런 곳에서 일을 하지?' 이 하나의 질문은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경험이 많은 성인도 견디기 힘든 극심한 노동을 아이들이 감당한다는 것, 그 일이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교육 제도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까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알아보고 싶었으며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이 영화의 이야기를 쓰고 완성해가는 과정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을 이해하고 우리 사회의 모습을 파악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온전한 이해의 끝에는 아무 상관 없는것 같았던 저도 이러한 일이 반복해서 발생하게 만드는 전체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이 남겨졌습니다. 감독님은 영화를 통해 어떤 말씀을 하시고 싶으셨나요? 영화를 통해 '어린 학생의 자살 사건'을 전하고자 한 것이 아닌 하나의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왜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는가'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형사의 등장으로 사건을 파헤치고 왜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는지 사건을 추적해 근본적인 문제점을 찾아가는 식으로 두 번째 파트를 구성한 것입니다. 관객들의 어떤 반응을 기대하며 작업하셨나요? 분명한 정치적 의도나 시급히 전달하고 싶은 사회적 메시지를 갖고 영화를 제작한 건 아닙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탐구가 결국 사회 시스템의 문제에 대한 이해로 나아갔을 뿐입니다. 영화를 제작 과정은 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겼던 사건들이 어떻게 저와 연관되어 있는지를 깨닫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논의는 영화 밖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저 최선을 다해 작품에 임했습니다. 한 아이의 비극적인 죽음을 들여다보고 그 죽음이 비단 그 아이에게만 그치지 않고 전후에도 반복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이해를 담고 싶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의도가 있었다면 이미 죽고 없는 그 아이 혹은 그분들이 잊히지 않고 영화 속 소희로 살아남기를 바랄 뿐입니다. 관객의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이름이 되면 좋겠네요.
<로잔 시네마테크의 좌석을 꽉 채운 영화 '다음 소희' - 출처: 로잔 시네마테크(Lausanne Cinémathèque) 제공>
영화를 본 해외 영화 관계자들의 반응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혹시 너무 한국의 현실적 문제를 다뤄 전달이 잘 안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과는 달리 칸영화제 첫 상영 때부터 많이들 공감하셨습니다. 자신들의 이야기로 받아 주시는 것을 보며 놀라기도 했습니다. 마치 각 사회 시스템의 문제점을 다시 들여다보는 듯했습니다. 영화 <다음 소희>는 어린 학생의 자살, 그리고 형사의 등장 이렇게 두 파트로 나뉩니다. 이는 굉장한 도전적인 시도였는데요. 이에 관련한 평가도 굉장히 좋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게 용기와 응원을 주고 있는 셈이죠. 저도 새삼 '영화에는 굉장한 힘이 있구나'라고 한 번 더 느끼고 있습니다. 스위스 영화 관계자들 중에는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이 주인공이거나 여성 감독들의 활동이 많지 않아 아쉽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하는데요. 최근 한국 영화계의 현실은 어떤가요? 제가 영화 <도희야>로 데뷔한 2014년 당시에 비해 지금은 여성 감독님들의 활동은 훨씬 많습니다. 다만 저예산 영화 혹은 독립영화 쪽에서 그 활동들이 두드러지죠. 다행히 지난 몇 년간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이 전국적으로 많이 늘어나면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늘었습니다. 혹시 본인이 영향을 받은 감독님 혹은 영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은연중 예술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책도 좋아해 많이 읽었는데 중학교 시절 아버지가 집에 비디오테이프를 쌓아 놓으시고 저녁마다 보시곤 하셨어요. 아마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영화를 많이 보신 것 같은데 저도 따라서 시청하면서 '나도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 나도 할 수 있겠다.'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막연하게 품었던 영화감독이라는 저의 꿈에 쐐기를 박은 거장들도 물론 계십니다. 로베르토 로셀리니, 이마무라 쇼헤이, 데이비드 린치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들을 보며 심오한 매력에 빠졌습니다. 물론 이창동 감독님을 빼놓을 수 없지요. 이창동 감독님께서는 천방지축 아무것도 몰랐던 저를 온전한 영화감독이 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이끌어주신 분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독립영화만 하실 예정이신가요? 아니면 다른 장르에 도전해 보고 싶으신가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SF장르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해당 장르에서 궁극적으로 다뤄지는 것은 '존재의 의미'라고 생각해서 도전해 보고 싶네요. 앞으로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다음 작품은 오랜 시간 기다리지 않고 선보이고 싶습니다. 이번 영화 홍보가 끝나는 대로 새로운 작품을 위해 또 작업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4년 이내에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 여러분께 선보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와 제 영화를 잊지 마시고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진출처 - 통신원 촬영 - 제네바 블랙무비영화제(Black Movie Festival) 제공 - 로잔 시네마테크(Lausanne Cinémathèque) 제공
성명 : 박소영[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스위스/프리부르 통신원] 약력 : 현) EBS 스위스 글로벌 리포터